달리기에 좋은 날이다.

달리기에 관한 나의 생각

by 나비
20200914_183442.jpg

작게 스치는 바람에 어디선가 날아온 가을향이 난다. 어디서부터 왔을까?서쪽 나라에서 분명 온 것인데 그 바람이 반갑다. 작년에 왔던 그 가을바람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내 그 바람은 멈추고 푸른 하늘과 구름이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다.


가을의 하늘은 높다. 하늘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이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추분.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오늘이 지나면 밤이 길어진다. 언제 낮이 길어졌나 모르겠다. 여름이 짧은지 인생이 짧은지 또한 모르겠다. 이제는 뜨거운 태양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일부러라도 햇볕을 쬐기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세수도 안 하고 길을 나섰다. 이유는 아는 사람 안 만나려고 빨리 걷기 때문에 운동 효과가 좋을 것 같아서. 혹여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기라도 하면 알아볼 수도 없고 운동 효과도 좋고 일석이조일 것이란 생각에.

어제 먹은 삼겹살이 뱃속에서 소화가 안 되어 들어있기 때문에 몸은 무겁지만 마음은 가볍다.

운동하기 좋은 날이다.


달렸다. 뱃속에 있는 것들이 소화되도록.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아스팔트에서는 조금 빠르게 걷고 흙길에서는 달렸다. 아침부터 누가 안 보도록 빠르게 하지만 빠르지 않다는 걸 안다. 마음만 빠르다.


달리기는 해방이고 놀이이고 어린 시절이다. 즐겁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할 때의 마음이 된다. 가끔 점프도 한다. 마음은 한껏 도약해보지만 관절이 걱정돼 살살 도약한다. 도약이라기보다는 그냥 신나서 폴짝 뛰는 정도이다. 그래도 그런 내 모습이 웃긴다.


풀에게 나무에게 인사한다. "안녕, 안녕. 나 빠르지, 부럽지. 너희들은 달릴 수 없잖아." 하며 내게 스치는 것들을 골리는 재미가 좋다. 하지만 풀, 나무, 꽃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나에게 관심이 없다. 새 한 마리가 머리 위에서 나를 골린다. "넌 날 수 없잖아. 부럽지!" 한 마디 외치고 달아나버린다.


달리는 것은 시원하고 상쾌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힘들다.

인생도 달리기이다. 힘들다. 하지만 재미도 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힘들고 고통이다.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기거나 보람된 일을 하면 즐겁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다.


단거리 코스 인생은 짧은 시일 내에 성과를 내야 하는 일들인데 스피드와 순발력. 민첩성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일처리를 재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스피드와 여러 종류의 일들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순발력과 민첩성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일도 몇 시간 만에 해야 하는 단거리 달리기이다. 하지만 단거리는 실수가 많다. 오타와 싸워야 하며 앞뒤가 맞지 않은 말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장거리 인생은 오랜 시간 동안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지구력과 인내심과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빨리 달리면 뒤로 갈수록 힘들어지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며 오래 달릴 수 있는 체력과 수도 없이 멈추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하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삶도 수도 없이 그만두고 싶고 결혼 생활도 수없이 그만두고 싶다. 그만두고 싶은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완급 조절도 필요하다. 쉬어야 할 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쉬어야 하며 체력을 위해 내 몸을 끊임없이 돌봐야 한다. 한마디로 장거리 달리기는 몸과 마음이 잘 단련되어야 한다.

이여 달리기도 있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며 자신이 잘났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를 돌봐주고 잘 이해해야 한다. 혼자만 실력이 좋다고 되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센터 운영을 함께 하고 있는 데 마치 이여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사무실 출근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가 있기 때문이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뢰를 넘어서 늘 맞추고 조율하는건 쉽지 않고 어렵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각자의 일을 잘 분담하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일을 많이 한 것을 내세우면 안 된다. 해결책으로는 대화. 불만을 이야기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다. 함께 일하는 건 힘들다. 하지만 혼자 일해도 힘들다.


달리기는 인생이다. 모든 인생을 반영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재미있는 것이다. 인생에 유머가 빠진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심심할까?

숨이 차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그냥 웃으면 힘들었다가 잊어버린다. 다리가 아파 쉬고 싶어도 내 허리가 개미가 되지는 않겠지만 날씬해지리라는 생각이 즐겁다. 달리기는 재미있고 인생도 재미있다.


달리기는 그렇지만 외롭기도 하다. 단거리도 장거리도 이여달리기도 결국에는 혼자 해내는 것이다.


인생은 항상 예상 밖이라는 것. 멀리서 긴가민가 했는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손짓을 한다. 이리로 오라고. 헉. 이른 아침에 산에서 아는 사람라니. 멋쩍게 가까이 갔더니 아이들 생태 수업하려고 미리 와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봐서 좋긴 했지만 민망했다.

이런 예상 밖의 일들은 살면서 많이 일어난다. 미리 철저히 준비한다고 실수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달리기를 열심히 연습해도 1등을 하는 건 쉽지 않고 인생을 열심히 산다고 모두 다 인정받는 삶을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수는 안 했어도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하는 내 모습이 좋다. 그냥 좋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