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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Nov 19. 2020

헷갈림의 처방전

산에 가는 이유

하늘에서 비가 무겁고 나직하게 내린다. 흡사 겨울을 닮았다.

내리는 비에 봄이의 사료가 젖어가고 젖은 사료처럼 앞마당에 떨어진 낙엽이 젖어든다.

슬슬 겨울이 올 것이다.

미리 와서 시끄럽게 구는 오리 떼들 안에서, 실내의 따뜻한 온기 속에

따스한 보온 물통에 담긴 차에서 겨울은 그리움이 수증기 되어 날아다닌다.


하지만 겨울이 올진 의문이다.

날씨가 봄 같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따뜻함에 겨울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땅도 얼지 않으며

집 앞마당에 한 여름 동안 붉은 들꽃은 아직도 지지 않고 있다.

오늘은 가을비인지 겨울비인지 헷갈리는 날이다.


헷갈린다.

작년에도 눈이 거의 오지 않는 따뜻한 날씨였는지, 눈이 오긴 왔는지. 추웠는지.


비가 개인 하늘을 바라봤다.

밤하늘도 푸르다는 걸, 차갑게 푸르던 하늘이 낮인지 밤인지.

밤하늘에  하나씩 반짝이며 보이는 별들이 움직이는지 아니면 온 우주가 움직이는지,

서쪽 하늘에 달려 있는 밝게 빛나는 초승달은 오래전 불 꺼진 조명 가게 천장에 달려 있었던 그 달인지.

고개를 들어 보는 내가 하늘을 보는 건지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는 건지 모르는 날이다.



오늘은 작은 오해가 생겼다.

상담했던 학교에서 아이들에 대한 상담내용을 보내달라는 말에

담당 샘에게 직접 보내드리고

서류 담당하는 샘에게는 "개인정보가 들어 있어 그냥 학교 샘에게 바로 보냈어요."

왜 말도 없이 보냈냐며 화를 냈다.

개인정보가 들어 있고, 민감한 부분이 있기에,

아무리 담당이라고 해도 상담한 내용이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실행에 옮겼는데 아무리 그래도 절차가 중요하다며 화를 내서 순간 복잡해졌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원칙이 중요한지, 내 신념이 중요한지.

그렇게 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담당하는 샘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얘기하면 허락했을 건데.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네."

라는 말에 불신이 깊게 우리 사이에 드리워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리 얘기했다면 분명 거절했을 것이고 나의 신념은 지켜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믿음이라는 건 무엇일까?

나 자신 안에 사람에 대한 신뢰는 어디까지 일까?

헷갈릴 때가 아주 많이 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 대한 나의 신뢰와 또한 반대로 동료가 나에 대한 신뢰도 쉽지 않고 확신도 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신념이란 무엇일까?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신이 생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목이 더 중요하며

나의 신념보다

다른 사람보다 더 특이하다고, 다른 사람보다 이상하다고 생각될 까 봐 두려운 것이 항상

나의 내면에 꿈틀대고 있다.




지금이 겨울인지 가을인지 헷갈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 계절의 일상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별이 나를 보는지 내가 별을 보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우니까.

하늘이 밤이 되어도 푸른지 안 푸른지 보다는

하늘은 언제나 내 머리 위에 변하지 않고 있으며 언제나 아침이 오기 때문에.


나도 헷갈리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고

고민하고 갈등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이유이며

신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갈길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불신도 있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삶은 복잡하다.

자연은 단순하다.

사람은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복잡할 때 자연에 가면 단순해지고 단순해지면 복잡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일은 산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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