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장만하고 준비할 때에는 바쁘다고 오지 않았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삿날은 일 년에 한 번이지만 이 런 날 빼고는 점점 모두 모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술 한잔 걸쳐 벌써 얼굴이 벌게진 아주버님이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중대 발표를 한다고 한다.
"올해까지만 제사를 드리고 내년부터는 명절 때에 같이 한 번만 드린다."
그 발단은 어머니께서 혼자 준비하는 게 힘이 부치다고 한 말에
그럼 모두 바쁘니 이번 기회에 다 정리하겠노라고.
상의 같은 건 엿장수에게 팔아먹었는지 옆에 있는 다른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큰아들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와 모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가족은 없다.
정말 가족이 있는 걸까?
일 년에 몇 번 모이지는 않는 데다 모일 때마다 감정들이 격해질 때가 많았다.
그건 가족 안에 억눌려 있던 수많은 감정들과 해결되지 않았던 감정들의 표현이였다.
기름진 음식에 배가 부르고 모두 긴장이 약간씩 풀어지면 또 그 안에 음주까지 들어가면 누군가 서운했던 일을 꺼내고 굴비 엮이듯 엮여 있던 감정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면 이제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하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아주버님이 화를 냈고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신세가 서러운 건지, 가족들에게 서운한 건지, 큰아들로서 힘들다고 하는지 헷갈리는 말을 하며 눈물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시누이가 "그만해. 술 먹었으면 집에 가"라는 말로 등 떠밀며 나가는 걸로 일단락이 되었다.
패턴은 만날 때마다 항상 비슷하다.
가족 중에 어른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더 자신의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협해지고 고집이 세지고 눈물이 많아졌다. 좀 더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져야 하는데 여전히 가르치고 훈계하고 자식을 비난한다.
서로를 위하기는 한 걸까? 모두 각자의 생활에 바빠 안부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살았는데 한 번 만나면 모두 서운하다고 한다. 서로 연락 좀 하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뿐이란 걸, 말 뿐이란 걸 모두는 알고 있다.
오히려 옆집에 사는 이웃 언니가, 내 친구들이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내가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명이고 스무명인 자식들은 두 분의 부모를 모시기는 힘들지만 한 부모는 두 명이고 열명이고 자녀를 키운다는 말이 있다.
시댁에는 어머님 혼자 오랜 세월을 사셨다.
하지만 이제는 편하게 밥상을 받을 나이에 여전히 음식을 준비하고 식구들 모이게 하고 밥을 먹인다.
이제는 해주는 밥을 드셔야 하는 데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이다.
우리 집도 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선뜻 나서서 모신다는 말을 못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녀들이 장성을 해도 독립이 안되었고
부모를 모시고 돌봐줘야 할 나이에도 다 큰 성인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몰라 주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고 가족도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우리는 친구나 동료에게는 정성을 기울인다. 선물을 사주기도 하고 간간히 식사도 하면서 안부를 묻기도 하며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노력하지만 가족은 그것에 절반도 노력하지 않는다.
또한 가족 안에서의 따뜻함과 인정과 정이 갈수록 느껴지기가 힘들다.
예전에 한 지붕 아래에서 추울 때는 서로 붙어서 잤고, 더울 때는 서로 등목해준다며 장난치고 개울가서 놀았다.
남자 형제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칼싸움이며 전쟁놀이.딱지놀이 등 온 동네방네를 돌아다니며 놀았다.
여자 형제들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인형놀이등으로 재미있게 놀았다.
또한 가난하고 힘들었어도 수제비 한 그릇에 행복했었던 때를 생각한다면,
오랜 세월 삶에 찌들어 살았어도 가족 안에서는 용납되고 수용되며
사랑이 넘치는 곳이 돼야 하는 건 아날까?
어쩌면 아주버님도 실패의 연속된 삶에서의 위로받고 싶은 마음으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들 앞에서의 부끄러움이 술 안에 녹아 자신의 민낯이 들켜질 까 봐 오히려 화를 낸 것이고
우리 모두가 알듯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화를 내는 아이.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이해받고 싶어 가엷은 새 한 마리가 어미 둥지로 회귀한 것이다.
이제는 모두 가족 안에서
"네가 제일 큰 형이니까 형 노릇 해야지, 네가 장남이잖아, 너는 우리 집 맏딸이야"
라는 말보다는 형도 동생도 모두 다 똑같은 형제, 자매이고 모두 똑같이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서로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피하지 말고 사랑의 마음을 갖고 대한다면 가족 안에서의 골이 깊은 갈등도 어느새 치유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이제 진짜 가족이 되어야 한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탁 트인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H.G.We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