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처리해야 할 건이 많아요. 앞에 30건 정도가 밀려있어서 차례대로 하면 내일 오후에나 될 것 같아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한마디를 더 했다.
"우리가 매우 급하거든요. 저희꺼는 간단하니까 빨리 검토해주면 안 될까요?"
"아니 이렇게 전화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볼 수 있어요. 자꾸 전화하면 더 늦어진다고요.
그리고 제가 날밤이라도 새서 처리할 테니 자꾸 전화하지 마세요."
나는 한순간 진상이 되었다. 안 되는 일을 되게 해 달라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날을 샌다고 하니 아침에 법원 문 열자마자 바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끊었다.
마음이 급했고 한마디로 우리는 똥줄이 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법원 등기 민원실로 갔다. 밤샘 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기 때문에 일처리가 끝났을 거라 예상했다.
"안녕하세요?ㅇㅇ 협동조합에서 왔는데요?" 역시나 마르고 사무적인 담당계장은 나를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아니 아직 안됐어요. 자꾸 이렇게 찾아오고, 전화하면 일을 못해요. 돌아가 있으면 끝나면 바로 연락할게요"
이제는 조금 예민해진 계장의 말에 힘없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포기하고 그래 이제 기다리자. 전화해준다니.
점심이 다 되어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신경은 계속 전화기에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 법원 등기했던 시간과 비슷해지려고 할 즈음 안 되겠다 싶어 전화를 했다. 그제야 다 되었으니 오라고 했다. 언제 다 되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한없이 기다리다간 큰일 날 뻔했다. 등기서에는 이전 사무소 주소위에 밑줄이 쫙쫙 그어져 있었고 그 이래에 새로운 주소가 씌여 있었다. 주소는 181에서 182로 숫자 하나만 바뀌었다. 이 숫자 하나때문에 돌아 돌아 왔다.
바로 세무서로 향했다. 얼마 전에 갖추어진 여러 서류들을 창구에 내밀었다. 간단히 서류 작성하고 꼼꼼히 담당자가 확인 후 사업자 등록번호가 선명하게 찍힌등록증을 내밀었다. 하지만 한 가지 설립신고서 주소가 아직 수정이 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따뜻한 미소로 추후에 서류 보완하면 된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 그 자리에서 담당 직원에게 절이라고 하고 싶었다. 이렇게 자상할 수가. 드디어 사업자등록이 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임원 카톡방에 공유하였다. 모두 축하한다고 애썼다며 기뻐했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잠시 빠르게 또 움직여야 했다.
그전에 설립신고서 변경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에 담당 일자리 창출과 에 전화했더니 회의록, 회의 사진 등등 몇 가지 서류가 필요하고 또 시간이 이틀 정도 소요된다는 말에 그냥 어이없어 웃고 말았다. 나는 한동안 그냥 어이없이, 그냥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정신을 잠시 놓았다. 또 서류와 또 기다려야 한다니.
일단 설립신고서 주소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가까운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입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법원 등기와 사업자 등록을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결말은 반드시 온다. 조급한 마음으로 며칠 동안 마음 졸였지만 시간이 돼야 해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바심이라는 마음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앞으로 나의 삶에 협동조합 설립 고군분투기가 얼마나 영향을 끼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이었다. 몇 년 전에 갔던 인도 여행기도 나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은 없는 듯 하지만 평범하지 않는, 남들이 쉽게 경험해보지 않는 일련의 것들이 차곡차곡 모아져서 나만의 특별한 삶이 된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다. 재미있는 일이다.
또한 어려움을 겪고 난 후 이루어 낸 것들이 비록 성과도 적고, 볼품없이 초라할 지 언정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반증이며 평소에 조금 흐트러져도, 조금 게을러도, 조금 실수해도 괜찮다는 명분이 생겼다. " 나도 열심히 산 적이 있었어!" 하며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큰소리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
우리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많은 미래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지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했다면 그것으로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