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1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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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서 바라보면 모슬포는 바로 코앞이다. 배를 타면 10분 거리. 수영을 잘 하면 헤엄쳐 건너가고픈 욕심이 생길 만큼 가깝다. 다리 하나만 놓으면 훨씬 편해질 텐데. 처음 섬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안타까움에 만나는 삼촌마다 붙잡고 물었다.
“저기부터 여기까지 다리 놓으면 안 돼요?”
“사람도 하꼼(조금) 사는디 나라에서 놔 줄라고 하쿠과? 그리고 저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물살이 엄청 세영 공사가 쉽지 않주. 아니, 아예 불가능하다마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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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주민들은 장을 봐오거나 가벼운 짐 정도는 유람선 ‘블루레이호’에 싣고 타지만, 승용차나 트럭 등을 실을 순 없으므로 이럴 땐 바지선(barge船)이 제격이다. 한 달에 세 번 상동 항구에 나가면 짐을 가득 싣고 들어오는 바지선을 볼 수 있다. 경비는 지자체에서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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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살아가려면 생필품을 넉넉히 비축해두어야 한다. 가스, 난방기름, 생수는 기본 중 기본이다. 반찬을 만들다 가스가 떨어지거나, 한겨울에 보일러가 서거나, 먹을 물이 똑 떨어진다면? 허투루 생각할 수가 없다. 미리미리 쟁여놓아야 한다. 농사에 필요한 트랙터나 콤바인,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데 필요한 중장비, 새로 구입한 가전제품, 수확한 대량의 농산물을 실어 날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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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생활은 참 불편한 게 많다. 바지선으로 실어왔다 치자. 이번엔 설치하는 게 또 문제다. 인터넷선을 깔거나, 가구를 바꾸거나, 가전제품을 바꾸거나, 전동차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면 기사가 방문해야 하는데, 신청을 해도 부지하세월이다. 인부 일당도 올라간다. 베프가 싱크대를 바꾸고, 자막 나오는 텔레비전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니 참 오래도 걸리더라. 김동옥 삼촌이 청보리 수확할 때 콤바인이 고장 나 멈춰 버렸다. 모슬포에 연락해 기사를 부르고, 기다리고, 수리하고 하면서 며칠을 까먹는 걸 보았다. 비라도 내리면 어쩌나, 도매상과 약속한 기한을 어기면 어쩌나 농부는 속이 타 들어갔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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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섬에서 살아온 삼촌들은 위급상황이 닥쳐도 그러려니 한다. 몸에, 머리에 촌촌이 흐르는 시간이 새겨졌다. 어떤 일이든 서두르지 않는다. 상잠수급 젊은 해녀들도 마찬가지다. 뛰거나 빨리 걷는 걸 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그보다 어린, 피 끓는 청춘들은 이런 섬을 견뎌내기가 만만치 않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부지하세월을 참아내지 못해 큰뭍으로 나가 버린다. 그러니 섬은 느린 걸음들만 남아 느리게 세월이 흘러간다. 늘짝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