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자 씨는 ‘가파도해녀촌’을 운영한다. 하동의 ‘블루’ 근처에 있어 오가며 들여다본다. 홍해삼·소라·거북손·멍게 등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싱싱한 해산물모듬과 성게비빔밥, 해물라면이 메뉴판에 보인다. 또 있다. 짜장과 짬뽕이 땡기는 손님을 위해 해물짜장과 해물짬뽕도 내놓는다. 손님이 원하면 숯불을 피워 즉석에서 뿔소라를 구워 주기도 한다. 그녀의 식당 바깥 테이블에서는 해산물모듬에 한라산이나 청보리막걸리를 기울이는 가족 단위 방문객을 쉽사리 볼 수 있다.
2
그녀와 나는 4월의 어느 날, 넘실대는 청보리밭 아래에서 처음 말을 텄다. 배를 타러 가느라 중앙로를 걷는데, 뒤에서 전동차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다. 몇 번 눈인사를 나눈 수자 씨였다. 그녀도 외출 길인지 평소와 달리 화장을 뽀얗게 했다. 섬사람 같지 않은 흰 피부, 통통한 몸매, 선한 웃음. 60대 중반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전동차의 속력을 줄이며 물었다.
“어디 감수꽈?”
“네, 모슬포에 사우나하러 가요.”
“기?(그래) 그럼 ‘산방산탄산온천’ 한 번 가봅주게. 물이 잘도 좋아.”
“아, 그래요?”
그때까지는 모슬포오일장 근처 ‘대정맑은해수사우나’를 다녔는데, 이후로 탄산온천의 매력에 푸욱 빠져들었다. 만날 때마다 온천에 다녀왔느냐로 시작해서 섬 생활이 어떤지 안부를 물어 준다.
3
내가 새벽 산책길을 나서면 벌써 바깥 테이블을 닦으며 하루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운동 가멘?” 새벽을 깨우는 힘찬 목소리에 웃음을 실어 나를 반긴다. “우리 식당 와서 밥 한번 먹어 봅서양?” 그래 궁금해서 들렀다. 면보다 밥이 건강에 좋으니 짬뽕밥을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나온 음식을 보고 놀랐다. 짬뽕엔 특별히 추가했는지, 대접 위의 해산물이 쏟아질 지경이고, 공기밥도 고봉밥이다. 다른 손님에겐 안 내주는 배추김치와 파김치를 한 보시기씩 식탁에 내려놓는데, 고춧가루 색깔이 선명해 먹음직스럽다. ‘어휴, 저걸 어떻게 다 먹지?’ 어찌어찌 배를 두들기며 다 먹었다. 이후로 단골이 되어 그 집의 메뉴를 골고루 시식 중이다.
4
가파도는 육지와 떨어진 섬의 특성상 대부분 친인척으로 연결되는데, 수자 씨는 나의 베프 조카다. 누군가 점심 먹을 곳을 소개해달라고 청하면 베프는 ‘가파도해녀촌’을 알려준다. 큰뭍에서 친척 여럿이 갑자기 들이닥치면 데려가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한다. 적적할 때면 놀러 가 송키(푸성귀)를 함께 다듬으며 일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으니 쉬엄쉬엄 하라고 충고를 한다. 아이들도 다 자라 제 갈 길을 갔고, 혼자 몸으로 그리 바지런을 떨지 않아도 될 듯한데,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들을 것 같지는 않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