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고 프랑스 시장 마케팅을 담당하라고요?

토종한국인이 독일 회사의 유럽 마케팅 매니저가 되기까지

by yein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모두 한국에서 다녔고, 외국물은 맛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 독일 땅에서, 독일 회사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한국 시장도 아닌, 아시아 시장도 아닌 유럽 시장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 하나를 품고-현실적으 로 가장 가능해 보였고, 하지만 또 그마저도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꿈꾸며 살던 한국 여대생 이었던 내가, 지금의 이런 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독일에 왔을 때 나의 독일어 실력은 제로였다.

정말 말 그대로 제로.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구텐탁(Guten Tag, 좋은 하루)",

"구텐 모르겐(Guten Morgen, 좋은 아침)".

처음 독일에 와서 첫 몇년은 독일어 공부에만 집중했다.

초초기초반인 A1에서 C1 과정까지 이수한 뒤 직장을 알아 봤다.


독일에서는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경력이 있다고 해도 그 것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회사가 많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같이 독일어를 듣던 친구들 중에서도, 이미 경력 이 있음에도 독일에 와서 아우스빌둥 (Ausbildung, 직업학교에 다니며 회사에서 실습을 병행하는 직업교육)을 선택한 경우를 몇몇 보았다.


나는 그간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제로부터 다시 시작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회사는 독일에서 나의 경력을 인정해 주는 한국 회사였다. 한국에서 이름을 들으면 모르는 사람 이 없는 브랜드였지만, 독일 법인은 달랑 3명으로 구성된 작은 사무실이었다.

마케팅은 당연히 나 혼자였다. 아니, 마케팅뿐만 아니라 고객 지원 업무, 심지어 매출 기록까지 내 일이었다.


독일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을 조금씩 익혀 가면서 독일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에 점차 감이 오기 시작했다. 독일 소비자는 무엇에 반응하는지, 어떤 메시지에 신뢰를 느끼는지, 어떤 포인트에서 지갑을 여는지.

그러던 중 한 프로젝트가 제대로 터져서 세일즈가 눈덩이 굴러가듯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게 되자 프랑스 마케팅을 시작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 왔다. 일단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독일이야, 그래도 그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체감한 것들을 기반으로 이 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마케팅을 펼 칠 수 있었지. 하지만 프랑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과연 가능할까?"


가능했다.

하지만 마케팅 전략이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프랑스 시장과 독일 시장은 전혀 다 른 시장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이래서 독일 사람들 이랑 프랑스 사람들이 서로 안 좋아하는 건가 봐"라고 말 할 정도로, 두 나라 사람들의 성향은 꽤 달랐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유럽에 사는 누군가는 한국·중국·일 본이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얼마나 다른지.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성공한 전략을 프랑스에서 그대 로 사용할 수 없었다.

너무나 명백히 보였다.

독일에서 성공한 전략을 계속 고수하다 보면 결국 프랑스 시장은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마케팅 일을 하다 보면 어느 한 전략이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세일즈에서 큰 성과를 내면, 그 전략을 계속 고수하고 싶어진다.

그 방식을 벗어나 다른 것을 시도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마케팅과 비즈니스의 성패가 갈 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잘 되는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느냐, 아니면 기존 전략에만 기대어 같은 마케팅을 계속 반복 하느냐.

뇌로는 답이 뻔히 보이지만, 마음은 후자를 선택하고 싶 어진다.


새로운 시도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위험 부담이 따르 며, 무엇보다 두렵기 때문이다.

마케팅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커리어도,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항상 하던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살 것인가.


토종 한국인으로서, 완벽하지 않은 독일어로 독일 회사에 서 유럽 시장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다 보면 당연히 힘들 때 가 많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훌쩍 성장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오 늘도 다시 한 걸음 나아가 본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능력치를 차곡차곡 쌓은 사람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불가능해 보이고 어려워 보이는 도 전들 앞에서,

이전보다는 조금 덜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고 믿는다.

모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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