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밥 먹여 주나?

feat. 유튜브 시작한 남편

by yein

남편이 유튜브를 다시 시작했다.


코로나 때 몇 개 올리고 포기했던 요리 유튜브 채널이 꾸준히 조회수가 나와서, 죽은 계정으로 방치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쓰던 편집 프로그램은 몇 년 사이 구식이 되어 버렸고, 요즘 많이 쓴다는 CapCut으로 편집하기로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편집을 시작하기도 전에 남편은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기 싫다고 했다.


왜?

예전에 올렸던 영상 인트로에 항상 들어가던 로고 효과음, 화면 전환 효과, 글씨체 등이 CapCut에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CapCut에는 더 다양한 효과, 효과음, 폰트, 색상, 배경을 무료로 쓸 수 있는데 그걸 활용하면 되지 않아?

안된단다. 예전이랑 똑같아야 한다는 거다.


왜?

그게 내 채널의 브랜딩이니까. 자신만의 브랜딩이 바뀌는 게 싫다고 했다.


허허허…

미안하지만 헛웃음이 나왔다.


저기… 미안한데… 사람들은 우리 채널의 로고가 뭔지, 인트로에서 어떤 색상의 글씨를 썼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거야. 우리는 아직 작은 채널이고, 올린 영상도 몇 개 없고, 몇 년 동안 업로드도 하지 않았으니까.

잘 생각해 봐. 네가 벤치마킹하겠다고 봤던 요리 채널들. 그 채널들의 로고가 기억나니? 로고 색상이 뭐였는지 기억해? 아니, 그 전에 채널 이름은 기억나?


남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마케팅을 전혀 모르던 시절, 대학을 막 졸업하고 블로그를 시작할 때 나 역시 그랬으니까.

블로그 이름을 뭘로 할지, 프로필 사진은 어떻게 할지, 폰트는 무엇을 쓸지.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니, 이런 고민은 해야 하는 것이 당연히 맞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남편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편은 브랜딩을 ‘겉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만 정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고. 폰트. 시작적인 무드, 분위기 등


물론 그것들도 브랜딩의 일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브랜딩은 단순히 ‘예쁜 로고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떠오르고, 억지로 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만드는 어떤 특별함을 사람들 머릿속에 심어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특별함은 시각적인 디자인일 수도 있지만, 제품 자체일 수도 있고, 그 제품이 주는 가치일 수도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나 회사의 철학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특별함’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특별함은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방향을 초반부터 좀 더 쉽고 명확하게 잡아갈 수 있다.

몇 개월 동안 고심해서 나름 나만의 특별함을 정의한 뒤 시작해 보면 금방 알게 된다.

현실은 내가 상상하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은 내가 의도한 방식 그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브랜딩은 완벽하게 정의한 뒤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발견하고 다듬어 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남편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로고나 인트로가 아니다.

한 편의 영상,

서툴러도 올리는 용기,

그리고 꾸준히 쌓이는 콘텐츠다.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성공을 반복하며 고민하다 보면, 나만의 콘텐츠와 나만의 브랜딩이 만들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브랜드는 없다.

계속 만들고, 반응을 보고, 수정하면서 다듬고 뾰족해지는 것이다.

처음에 정한 것을 철저히 고집한다면, 그 비즈니스는 나만 좋아하는, 나 혼자 열성 팬인 비즈니스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로고, 폰트, 브랜드 이미지가 브랜딩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만든 뒤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찾아보기를.

애플, 버버리, 인스타그램의 로고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이들은 로고가 계속 바뀌었으니 제대로 정립한 브랜딩 없이 비즈니스를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비즈니스는 실패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로고가 바뀌었으니 이 회사의 브랜딩이 바뀌었네’가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과 타깃 고객, 제품, 그리고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이 먼저 바뀌고, 그 변화된 메시지가 시각적으로 드러난 결과 중 하나가 로고일 뿐이다.


브랜딩이 밥을 먹여 주나?

본질에 집중한 브랜딩은 밥을 먹여준다.


하지만 본질이 아닌 그저 겉으로 있어 보이는 것들에만 집착하는 브랜딩은 밥을 먹여 주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