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회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지만, 사실 개신교 교회는 균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비교적 보편적이고 단일한 체계를 유지하는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 교회는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뒤 심지어 지금도 끊임없이 분화되고 있는 수많은 교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처럼 사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신자 누구나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설을 채택하고 있기에 더욱이 이런 분열은 필연적이다.
많은 개신교회가 사회 이슈마다 극우적인 목소리를 내며 교인들의 여론을 선동하며, 또 많은 사람들은 이런 개신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한다. 한때 개독교라는 멸시적인 호칭이 인터넷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개신교회는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교파간의 개성이 다르며, 심지어 같은 교파라 해도 교회간의 개성이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 개신교에서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로회의 경우, 교세가 큰 것들만 봐도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통합),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 등이 있고, 여기에 고신, 합신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교파들을 계산하면 열 손가락을 다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들은 어떤 이슈에서는 뜻을 같이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슈에서는 서로 경쟁한다.
하물며 한국과 같이 교파간의 교리 차이에 신도들이 그리 관심이 없고, (특히 대형 교회의) 목사를 중심으로 응집하는 경향을 보이며, 한 사람의 신도가 이사를 가면서 장로회에 나갔다가 감리회에 나갔다가 침례회에 나갔다가(...)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 심지어 하나의 교파로 묶여있는 경우에도, 교파의 이름으로 개개의 교회를 대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사랑의교회나 여의도순복음교회 같은 초대형 교회, 일부 대형 교회의 문제를 두고 개신교회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사실 부당한 일이다. 거기엔 단일한 체계도 없고, 교리에 대한 충성이나 대단한 소속감도 없다. 초대형 교회조차도 말 그대로 그저 신자가 많은 교회일 뿐, 결코 개신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
문제는 사회 쟁점을 두고 이들이 보이는 단합된 목소리다. 기독자유당 원내진입 시도에서 볼 수 있듯 개신교회는 최근 동성애와 이슬람 확산을 막기 위해 총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건 결코 일부의 시도가 아니다. 다음 기사를 살펴보자.
예장합동·통합·고신·감리회 교단장, "동성애·이슬람 확산, 한국교회 위기", 뉴스앤조이
이 자리는 장로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합동, 통합, 고신은 물론 감리회 교단장까지 나선 자리였다. 특히 합동, 통합, 감리회는 한국 개신교회의 3대 교단이라 불리며 그만큼 교세가 큰 교단이다.
"동성애는 넓게 보면 인류 생존과 연관이 있다. 동성애자를 방치하면 종족이 멸절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합동)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된 차별 금지 사유 중 '성적 지향'이 있다. 이 부분은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 (통합)
"동성애는 질병의 원인이 되고 경제적 손실의 이유도 된다. 한국 사회를 좀먹는다." (고신)
"소수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다수를 역차별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려야 한다." (감리회)
한국의 합동, 통합, 고신, 감리회는 모두 사회 이슈는 물론 교리 해석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고로, 차라리 오직 성경에 입각하여 반대하는 것이라면 이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비과학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심지어 비종교적인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합동의 "동성애자를 방치하면 종족이 멸절"된다는 발언은 지극히 비과학적인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이고, 고신의 "질병의 원인이 된다"나 감리회의 "다수를 역차별하고 있다"는 발언은 지극히 비윤리적이고 비종교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갈렸다.
"이슬람은 오일 머니 등을 통해 한국을 잠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교회는 그들의 선교 활동을 막는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합동)
"기독인이 타 종교인을 대하듯, 이슬람교인도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통합)
"이슬람교인이 한국 인구의 10%가 되면 나라를 전복하려고 설칠 것이다." (고신)
"종교는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인류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테러는 있을 수 없다." (감리회)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일컬어지는 고신의 입장은 대단히 과격하다. 합동의 입장은 그보단 온건하지만 여전히 비논리적이다. 한편 감리회의 입장은 (개신교회 치고는) 비교적 온건한 편이며, 통합의 입장은 결국 이슬람교도들도 복음화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나온 얘기긴 하지만 종교의 굴레 안에서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편이다.
합동은 할랄, 동성애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미나를 개최하고 10만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움직임이 대단히 활발하다. 통합, 고신 등도 교단이 공식적으로, 혹 반 공식적으로 동성애 등에 대한 확고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감리회는 국내 최초로 동성애에 찬성하는 목회자를 징계하도록 교회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예장합동 사회부, 할랄·동성애 반대 전국 세미나, 뉴스앤조이
합동측, 동성애 조장 입법 반대 10만 서명 국회 재출, 크리스천투데이
예장통합 총회장 성명서 발표, "동성애, 하나님 뜻 어긋난 타락", 뉴스코리아
"동성애 합법화되지 않은 성결한 선진국 이뤄야", 크리스천스탠다드
기독교대한감리회 "동성애 찬성 목회자 징계" 첫 명시, 매일신문
개신교회가 다양한 교파로 구성되며 교회 각각의 개성 또한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이슈에서 개신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묶여 비판받는 것이 대강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교파 중에서도 특히 수위를 다투는 대형교단들이 사회 이슈에서 대체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는데다, 이 과정에서 반과학적인 주장은 물론 이미 논박되어 가치가 없어진 주장, 비윤리적이고 비종교적이기까지 한 주장을 서슴치않고 내뱉는다는 것이다.
기독자유당은 이런 개신교회의 문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정당이다. 이 블로그에서도 기독자유당의 주장이 거짓과 선동, 근거 없는 혐오에 기반할 뿐 아니라, 비과학적, 비논리적, 비윤리적이며, 정책의 질도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기독교와 기독당: 혐오의 종교, 혐오의 정치, 이 블로그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기독자유당/기독민주당 정책 읽어보기, 이 블로그
물론 기독자유당은 이번에 정당득표율 2.63%에 그쳐 원내진입에 실패한만큼 그들의 주장이 개신교 교인 각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예수교장로회 통합을 회원교단으로 두고 한국 보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이 기독자유당 지지 발언을 하는 등, 이를 결코 개신교 일부라거나 소수 세력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기총·한교연 총무들도 기독자유당 위해 결의, 크리스천투데이
신도 개개인이, 교회 각각이 아무리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이처럼 개신교회를 대표하는 단체 또는 교단이 비합리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준다면 결국 그게 개신교회 전체의 이미지로 굳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기독자유당과 같이 마타도어를 일관된 전략으로 삼는 종교집단이 원내 진입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비판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개신교회를 대표하는 협의체 중 하나가 지지를 표명할 정도라면 두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교단이 이런 건 아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등이 대표적이다. 기장은 장로회의 교파 중 하나이며, 교회협은 합동 등이 소속된 교회 연합체인데, 둘 다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들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통합, 기장, 감리회 등의 교단이나 한교연 등의 연합체를 보수적이라 칭하고, 기장이나 교회협 등은 진보적이라 칭한다. 하지만 이는 종교적인 교리 해석을 어찌 하느냐에 따른 구분에 가깝고, 사회적으로 보자면, 사실 전자는 극단적인 보수에 가깝고 후자가 온건 보수 / 진보를 아우르는 쪽이라 분류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장은 흔히 진보적인 교단으로 분류되지만, 성 소수자를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목회에서 성 소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연구하자는 안건조차도 "동성애 찬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으니 기각하자" "찬반 양측의 원성을 살 것" "연구가 필요하다면 신학연구소에서 조용히 하라" 는 등의 주장을 내세워 기각한 바 있다.
[기장 3] 성 소수자 목회 지침 마련 연구 방안 기각, 뉴스앤조이
게다가 기장의 교세는 작다. 대표적인 장로회 교단인 합동과 통합이 270~280만 명 규모의 교세를 자랑하는 것과 달리 기장은 30만 명 남짓의 교인이 있을 분이다. 감리회의 150만 교인까지 합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으로 일컬어지며, 권력자에 비판적이고 소수자에 우호적이고, 심지어 여성 사제를 배출하는 교단도 있다. 사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진보' 교인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회다. 그러나 세계적인 영향력과 별개로 한국에선 그 교세가 매우 미약하여 이들의 목소리를 교회를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하기엔 어렵다. 일부 개신교회 역시 '퀴어 신학'을 강조하는 등 소수자 보호에 힘쓰고 있으나 그 세는 더욱 미약하며 주류 교단에 의해 이단 수준으로 취급받는다.
합리적인 교단도 있다. 하지만 소수다. 과반이 안 된다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교세가 약하다. 교회 일각에서 나오는 합리적인 목소리는 비합리적인 마타도어에 모두 묻히고 만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초대형 교회조차도 신자 수가 많은 교회일 뿐 결코 개신교회를 대표하지 않는다. 단일한 체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대형 교회들이 뭉쳐 대형 교단을 형성하고, 이 대형 교단들이 뭉쳐 대형 협의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메시지를 설파한다. 이런 상황에 어찌 각각의 교회는 그저 개별적인 교회일 뿐이며, 비합리적인 목소리는 그저 일부의 목소리일 뿐이라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교회는 스스로 오명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단순히 교회를 비난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성공회를 비롯한 진보적인 교단에 힘을 싣고, 퀴어 신학과 같은 비주류 신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불가능한 대안이다. 이건 종교다. 비종교인이 그런 과업에 힘을 쓸 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 종교의 내부인들은, 보수 교단의 지배적인 마타도어에 무젖고 있다. 신보다 목사의 말을 더 신실히 따르는 그들을 설득해 신앙 속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길 기대하는 것도 무리지 싶다. 다시 되새기건데, 이건 종교니까. 결국 결론은, "안 될거야, 아마"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