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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예인 Jan 16. 2018

마녀의 게으른 법정

엄청 늦은 '마녀의 법정' 2화 리뷰

정려원의 성취


아이즈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려원, 두려움에 맞서다‘. 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통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정려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성범죄라는 주제를 다룬 무거운 드라마에서 복합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냈으며, 수상소감을 말하며 ‘여성’ 배우로서의 목소리를 냈다 – 고 합니다.


그 성취에 함께 감동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마녀의 법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요. 여러 언론의 상찬을 듣고 챙겨보았는데, 극초반부터 너무 황당한 스토리 진행으로 맥이 다 빠졌던 탓입니다. 



마녀의 게으른 법정


‘마녀의 법정’ 2화. 정려원이 분한 마이듬 검사가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로 발령받은 뒤 처음으로 벌이는 법정 싸움이 그려집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여성 교수가 남성 담당 대학원생에게 성폭행(미수)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사중 오히려 여성 교수가 이 남자 대학원생을 성폭행 시도했다는 증거가 발견됩니다. 검찰은 이에 교수를 피의자로 입건합니다.


그러나 정작 성폭행 시도의 증거를 검찰 측은 공개하지 못합니다. 이 증거란 당시 상황이 우연히 녹음된 통화 녹음 파일인데, 이 통화 상대가 대학원생의 동성 연인이거든요. 이 대학원생은 동성애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동성애자임이 드러날 경우 앞으로 대학원 생활에 불이익이 따를 것을 염려해 검찰 측에 이 증거를 절대 공개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한 것입니다.


증거가 없어 수세에 몰리는 검찰. 이에 마이듬은 이 대학원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교수의 변호인 측에 슬쩍 흘립니다(!).


여기서부터 뭔가 이상해죠. 응? 그걸 왜? 변호인이 그걸 알아서 뭘 어쩌라고? 이 대학원생이 동성애자라면 이 대학원생이 여성 교수를 성폭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동성애자의 뜻이 뭔데요. 변호인 입장에선 당연히 숨겨야 할 정보입니다. 검찰이 그걸 변호인에게 흘려서 뭘 어쩌라는 걸까요?


그런데 이 변호인이 대단합니다. 법정에서 그걸 깝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여자한테 강간당하는 동성애자도 있습니까? 만약 증인(주: 대학원생)이 이성을 좋아하는 일반적인 남자라면, 여자에게 성적인 제안을 받았을 때, 남자로서 그 상황을 즐기거나, 아니면 본인이 가진 물리적인 힘으로 얼마든지 여자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증인은, 애초부터 여자를 싫어하는 게이니까, 무고한 피고에게 강간죄를 뒤집어 씌운 거 아닙니까!”


… 이거 개그콘서트였나요.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로 시청자의 혼을 빼놓는지로 경쟁하는 중인가요… 너무 황당한 논리라 반박할 의미조차 찾을 수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아무말대잔치를 벌였습니다. 제가 굳이 까지 않아도 다들 황당할 테니 굳이 논평은 생략합니다.


여하튼 마이듬이 재빨리 나섭니다. 사실 대학원생을 아웃팅하지 않기 위해 숨겨뒀던 증거가 있는데, 변호인 측에서 이미 아웃팅을 했으므로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며 문제의 녹음 파일을 꺼내들지요. 네, 그렇게 이기긴 하는데… 이기긴 하는데요. 이게 도대체 뭡니까. 이거 법정물이라면서요. 그것도 성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라면서요. 정말 수준이 이렇게 떨어져도 되는 겁니까. 



웰메이드


웰메이드 드라마라고들 하죠. 이 드라마에도 그런 명찰이 붙었고, 많은 매체는 입체적 ‘여성’ 캐릭터 마이듬을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웰메이드 정말 맞나요?


한 이삼십 화 쯤 진행되다 보니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니고, 생방처럼 쪽대본에 시달리던 것도 아니고. 무려 이게 첫 법정 에피소드입니다.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웠으니 괜찮은 건가요? 딱히 뭘 고발하는지도 알 수 없는 주제의식, 성범죄를 소재로 내세웠음에도 성(Gender)에 대해 지극히 얄팍한 이해…


‘여성’ 담론은 분명 현시대에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입니다. 가장 절실한 목표 중 하나이지요. 하지만 때로 미디어를 보면… 때로는 일종의 유행처럼 소비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하게 돼요. 쿨한 담론. 우리편 담론. 뜯어보고 따져보는 대신, 그냥 옳다쿠나 하고 공유하는 쿨한 이야기. 이 황당한 드라마에 쏟아진 상찬처럼 말이죠.


드라마에 완벽한 올바름을 요구하고 싶진 않습니다. 완벽하게 현실을 투영하길 원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허구헌날 팀장님 본부장님 실장님만 나오면 좀 그렇지만.) 그냥, 적어도 최소한의 만듦새는 좀 있었으면 하는 겁니다. 하물며 웰메이드란 딱지를 붙일 거라면요. 뭔가 대단한 성취처럼 묘사할 것이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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