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여정을 담은 그녀의 공간

엄마를 따라나선 길에 만난 '한 장의 동화'

by 예이린







우리 엄마에게는 사랑하는 산책로가 하나 있고,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들르는 카페가 있다. 휴학을 하고 내려온 내게 가끔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오던 길이었다. 그러면 나는 단칼에 거절하곤 했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할 거니까 굳이 운동에 또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오늘 내게 언니가 왔는데도 내 계획 때문에 바쁘다며 인정머리 없는 아이라 핀잔을 줬는데, 맞는 말이었다. 나는 나의 영역이 강한 사람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동그란 원 밖에서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야 한 걸음 더 들어올 수 있을까 눈치를 본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이 나라서 그저 인정하며, 때때로 미안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오늘은 스스로도 타박을 조금 주었다. 엄마를 따라나선 길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기에, 그리고 엄마가 사랑하는 그 공간이 내 마음을 몽실몽실하게 만들었기에.






엄마를 따라나서니 이런 산책길이 펼쳐져 있었다.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난 노오란 아이들도 있었다.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 "카페 가볼래? 다음에 가도 괜찮고." 이미 시간을 많이 뺏은 것은 아닐까 염려되어 선뜻 가자고 하지 않는 게다. "아니야. 온 김에 가보자!" 전혀 고민할 것 없다는 듯 즐겁게 답했다. 몇 개월을 거절하던 산책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행복을 주어 엄마에게 민망하고 미안했기 때문이다. 동네 사이에 있는 작은 산으로 가는 길 두 카페가 나란히 있었다. 그중 오른쪽에 있는 엄마가 사랑하는 공간에 들어서니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오랜만이네요!" 카페에 들어서서 이런 인사를 듣는 건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정겨워라.' 이런 생각을 하기도 잠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양쪽으로 늘어선 사진 6장이었다. 유명한 사진전에서, 에세이 글 한편에서 수많은 사진을 접했지만, 이토록 마음이 동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들과 아들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는 반짝인다.










"사진이 참 좋네요."

"우리 아들이 여행 다니며 찍은 거예요."









"엄마, 참 멋있게 사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



궁금해하는 내게 아주머니께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셨다. 아드님께서는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다니신다고, 그래서 그 사진들은 세계 곳곳을 담은 것이라고. 발파라이소 자석을 보고 "남미도 가셨군요." 그러니 몇 개월 정도 꽤 오래 있었다고 하셨다. 대학교 6년 과정 동안 방학이면 떠나셨단다. 아드님 사진에 나만 홀딱 반한 게 아니었는지, 작가들이 자신의 책에 사진을 실어도 되냐고 문의하기도 했단다. 최근에 동물병원을 개업해 이제 예전처럼 자유롭진 않을 거라 하신다. 그래도 병원 찾아오는 손님 애완동물들도 찍어주시는 것 같다고.



어머니의 공간이 아들의 여정을 품어주고 있었다. 찬란한 여행의 흔적들이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고즈넉한 공간에 오롯이 담겨있다.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 가슴 떨리는 신입생 아들부터, 이제는 여유가 생겨 소소한 것도 살뜰히 살폈을 사회인 아들까지 사진의 한편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오랜 세월 속 잘 성장한 아들의 어머니라는 자부심이 그녀에게 그토록 환한 미소를 선물했을지도 모른다. 한 편의 동화로 다가왔다. 그리고 애정 어린 손길에서 탄생한 그 사진에도 동화가 한 편씩 있는 듯했다. 피사체를 마음에 담지 않으면 찍지 못할 사진이었다. 이곳의 어머니와 아들이, 사진 속 어른과 아이와 동물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사진 한 장에도 동화가 하나씩 숨어 있는 것 같았다.



둘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왜 서로 그리 바라보고 있나요?



아드님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이 여행을 다녀와 건넨 기념품, 여행의 이야기가 한곳에 모여 소담스런 문양을 이룬다.
떨어져 있는 꽃잎마저 작품이 되는 곳, 그 따스함 속에 자란 이라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공간의 힘'을 느낄 때마다 언젠가 카페에 대한 글을 올리고자 분류하여 정리해두었다. 하지만 진짜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것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다. 오늘에서야 이 동화 같은 곳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이유를 알았다. 아주 아름다운 디자인도, 정성이 가득 담긴 소품도, 동화처럼 느껴지는 가족 이야기만큼 감동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있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지금 내가 글로 제대로 표현하고 있나 불안할 만큼 그곳에 담긴 세월의 흔적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엄마와도 더 따뜻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움과 향수의 입김이 분다'라는 가사가 흘러나와 마음을 훔쳤다. 여기 노래도 무지 좋다는 나에게 사장님 음악 감각이 남다르다고 하셨다. 다음 곡은 루시드폴의 고등어_였고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라는 가사가 고등어가 하는 말이라니 엄마는 깜짝 놀랐다. 나는 엄마가 어제 해준 아프리카 우분투 이야기가 참 따뜻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쓰레기를 처리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은 19세 소년 보얀 슬랫의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었다.



요즘 일기를 쓰며 하루에도 수만 가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해가 움직이는 동안 몇 번이고 여러 감정을 오간다. 신기할 정도로 다이내믹하다. 우주로 영역을 확장해보자면 그저 먼지 하나에 불과할 내가, 세상의 먼지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황홀하다.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슬픔도 두려움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쓰며 돌아보니 동화 같은 공간을 만난 이 시간은 두고두고 추억이 될 것이다. 엄마를 따라나서길 참 잘했다. 오늘 만난 동화는 아들의 여정은 사진에, 그 흔적은 어머니의 공간에 담긴 이야기였다.




엄마, 우리는 어떤 동화책 속 주인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