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리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보통의 하루 사이 알록달록 채색된 순간들이다. 특별한 곳에 가지 않아도 귀여운 조카 연이와 옷을 맞춰 입을 때면 그렇다. 언니의 프로필 사진 속 형부와 연이는 양말까지 세트로 입은 모습이고, 언니에게는 연이와 똑같은 커플 운동화가 있다. 가족사진을 찍던 날에는 모두 베이지색 옷을 찾았다. 나를 유난스럽게 보다가도 이내 따라주는 귀여운 가족과 맞춤을 쌓아왔고, 또 쌓아가고 있다.
처음은 채도가 조금 낮은 민트색이었다. 언니가 보여주는 옷이 예뻐 연이에게 선물한 후 비슷한 원피스를 우연히 발견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색인데 연이와 함께 입은 모습이 상상되어 언니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거 입고 연이한테 가면 이모랑 조카 커플룩인가?” 물으니 언니는 너무 예쁘다며 자신도 같은 색 블라우스를 입겠다고 했다. 덕분에 봄과 여름 사이, 하늘과 잔디색을 조금씩 섞어놓은 듯한 옷을 입고 함께 했다. 옷을 맞춰 입은 게 좋아 보였는지 형부는 그날 우리 사진을 참 많이 찍어줬다.
그해 가을은 소라색이었다. 당시 즐겨 입던 트위드 투피스가 있었다. 조카에게도 비슷한 색이 있으면 가져와달라고 했다. 언니도 함께 입고 싶은데 비슷한 옷이 없다고 하여 내 것을 하나 더 챙겼다. 우리 셋의 맞춤이라 엄마는 딸 둘과 손자가 세트로 입은 걸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어느새 연이의 하늘색 상의, 베이지색 하의와 어울릴 만한 조끼를 입고 나왔다. 꼬마는 할머니, 엄마, 이모 누구의 옆에 있어도 꼭 어울렸다. 그날 거리에서 마주한 많은 이들이 우리 가족을 보고 다정한 시선을 보냈다.
오늘도 언니와 나는 연이의 옷을 고른다. 이거다 싶었는데 사이즈가 없어서, 저게 좋겠다 했는데 배송이 오래 걸려서 줄줄이 탈락한다. 검정은 여름이라 더위를 많이 타는 연이가 힘들 것 같고, 멜빵은 입고 벗기가 어렵겠지. 그렇게 오전을 통으로 고민해야 하면서도, 조그마한 옷은 보는 마음마저 귀엽게 만든다. 샌들까지 사주려고 하자, 언니는 자기도 조카 하고 싶다며 농담을 건넨다. 과정도 행복하기만 하다.
조금은 번거롭지만, 조금 더 빛날 순간을 위해, 구태여 옷을 찾고 맞춰 입는 일. 연이는 언젠가 낯간지럽다며 더 이상 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가족과의 시간보다 친구랑 노는 시간이 더 좋은 자연스러운 때가 찾아오겠지. 그래서 이모는 젊고 너는 어린 이 시간들이 아주 소중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찬란한 때라는 걸 되새기며, 누가 봐도 연결 고리가 있다는 듯 닮은 옷차림으로 함께할 이번 만남도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