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꾼 적 없는 것들이 꿈처럼 찾아올 때가 있다. 상희언니의 결혼식에서 축사하던 날이 그랬다. 조그마한 몸과 그에 어울리는 앙증맞은 손을 지닌 사람, 그와 다르게 마음은 무척 깊고 넓어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하고 정말 무엇이든 해주던 이였다. 그런 사람이 처음으로 내게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걸 말한 것이었기에, 거절은 내 선택지에 없었다.
그해 여름이 가을로 이어지는 동안 틈틈이 구상했다. 영상을 찾아보고 다른 이의 원고를 살피고, 우리의 지난날을 톺아보았다. 대학교 동기로 만나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었다. 함께 보낸 생일이 많았고, 타국에 있던 시기에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축사는 구태여 그 시간을 살피게 했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채로 그 기억을 담았다. 언니도 엉엉 울었다고 했다. 식장에서 눈물이 날까 봐 우리는 서로 눈을 보지 않기로, 혹시 보게 된다면 긴팔원숭이를 떠올리기로 약속했다.
“오늘 가장 사랑스러운 신부 상희 언니, 언니가 스물하나, 내가 스무 살일 때 만나 어느새 십일 년이 지나 있네. 돌아보면 언니는 내게 처음을 아주 많이 건넨 사람이었어.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미역국을 끓여준 것도, 화장품을 잘 모를 때 반짝이는 고급 립스틱을 사준 것도, 우리 할아버지 장례식에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한달음에 와준 것도, 한참을 지나 우리 할머니의 장례까지 챙긴 것도, 모두 언니가 처음이었어. 그리고 언니는 그렇게 잘해주면서도 늘 더해주지 못해 진심으로 아쉬워했지.
그런 언니 정성이 너무 하얗고 고와서 어떻게 이런 마음으로 커왔을까 신기했어. 언젠가 언니가 이야기했었지. 주변 사람을 잘 챙기게 되는 이유를 짚어보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준비물을 두 개, 세 개씩 챙겨준 게 기억났다고. 혹시 안 가져온 친구가 있으면 주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야. 그래서 꼭 한 번은 어머니를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쁜 날 만날 수 있어 마음이 참 좋아.
상희언니 어머니, 언니를 그렇게 키워주셔서, 그런 인연이 곁에 있어서 이십 대에 꼭 한겨울같이 힘든 순간이 찾아와도 덜 시리고, 오히려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이제 동반자를 만나 일구어갈 언니의 삼십 대에는 제가 처음을 더 많이 선물하고, 혹시 어려움을 마주하면 여동생처럼 언니의 이야기를 꼭 들어줄게요.”
글을 쓰며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어울리는 단어에 생각을 담아내던, 나를 향하던 작은 습관이, 다른 이를 향할 때 선물이 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우리의 시간이 글 속에서 꽃으로 피어났고 두 사람을 축복하는 꽃잎이 되어 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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