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엄마와 꼬마 아들이 앞서 걸어갔다. 티셔츠 색깔이 같았다. 아침에 보았던 웨딩드레스와 아기 턱시도보다 예뻤다. 꼬마는 엄마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지며 걸었다. 키가 작아 손을 뻗으면 엄마의 허벅지나 엉덩이였던 것이다. 엄마의 피부를 만지는 게 좋은 듯했다. 나무를 감싸듯 엄마 왼쪽 다리를 안기도 했다. 엄청 귀여웠다.
엉덩이나 허벅지를 만지는 행위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뇌리에 박혔었다. 그러한 기사와 영상을 넘쳐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엄마 다리를 만지는 아들을 보고 엄청난 고정관념이었다는 걸 알았다. 같은 행동도 저토록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생각했다. 주체가 아이, 그리고 동시에 아들이었다. 그러자 불순함으로 느껴지던 무언가도 순수함으로 바뀌었다.
미소 지으며 걸어가다 신호등에서 멈춰 섰다. 나란히 서서 흘깃흘깃 아이를 보았다. 바가지 머리에 개구쟁이 외모였다. 어머니는 내게 길을 물었다. 밝은 사람이었다. 물어본 곳의 방향은 같았는데 급한지 다시금 앞서갔다. 몇 발자국 걷다가 아들은 안아달라고 칭얼댔다. 꽤 큰 아이인데 번쩍 안아주었다. 나는 그다음의 모습을 보며 행복한 관객이 되었다.
아들은 엄마 품에서 마음껏 장난쳤다. 엄마는 기꺼이 받아주었다. 그 자체가 즐거움인 듯했다. 둘은 함께 동요도 불렀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소리였다. 아들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엄마에게 폭 안겼다가를 반복했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잊기 싫어서였다. 곧 팔이 떨어질 것 같다며 엄마는 아이를 벤치 위에 내려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앞서 집으로 오느라 더 이상 그들의 놀이를 볼 수 없었다.
일기를 쓰며 사랑스러운 엄마와 아들을 다시 보았다. 그들의 영상이 떠올랐고, 그것은 나를 20살의 어느 때로 이끌었다. 멋있는 노신사와의 만남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에 머물렀었다. 그곳은 작은 마을이었다. 또한 순례길의 도착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냈다는 환희를, 그간의 감동을 나누는 벅찬 곳이었다.
어느 날 밤 혼자 산책을 나섰다. 어두웠다. 조명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요한 그곳에서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 말을 걸었다. 배가 볼록 튀어나온 아저씨였다. 낯선 사람이 많은 동네였다. 그러나 대부분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고생한 흔적이 보이는 이들이었다. 롱원피스를 입고 산책 나온 동양인 여자는 신기할 만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신기해했다. 하지만 의사소통에 충분한 실력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했던 것은 그의 배려 덕분이었다. 속도는 느리게, 단어는 쉽게 말해주었다. 어쩌면 배려만큼이나 자신의 삶을 알려주려는 의지가 묻어 있었을지도.
그늘 결혼과 이혼, 재혼 경험이 있었다. 아주 사랑했다고 그랬다. 두 여자 모두 자신과의 나이 차이가 같다며 신기해했다. 이어 이곳을 매일 산책한다고 했다. 그리고 항상 그곳에 멈춘다고. 이유를 물으니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짚었다. 작은 건물이었다. 저곳이 첫째 딸이 태어난 곳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 마을을, 그 공원을, 그리고 그 지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 했다.
배불뚝이 노신사를 만난 공원에서 본 부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늙고 싶다고 생각했다.
화려하다_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생활 따위가 보통 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거나 사치스럽다'이다. 수려하다_는 '빼어나게 아름답다'이며 '빼어난' 것은 '여럿 가운데서 두드러지는' 무엇이다. 엄마와 아들, 노신사와 노부부의 삶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두드러지게 인상 깊었다. 그들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운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화려하기보다 수려하게 살고 싶다. 3년 전 산티아고에도, 오늘날 해운대에도 있는 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