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이 건네준 무수한 꽃잎들

치유기(2) 꽃잎 하나하나에 깃든 그녀의 위로법

by 예이린














다시 미소를 찾고 24시간이 지났을 즈음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백합 언니였다. 주소를 물었다. 뜬금없이 책을 두 권 보내주겠다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사람'의 주인공 그녀. 그 글을 알려주었을 때 내 브런치를 구독한 그녀는 일명 '눈팅족'이었나 보다. 아무런 표도 내지 않아 몰랐는데 늘 올라오자마자 읽었다고 그랬다. 덕분에 아끼는 동생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았던 것이다. 뭐 때문에 힘든지도 모르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느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엮은 책과 이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지금 달려와 꼭 안아주고 싶다는 그녀의 다음 말에 헬스장 탈의실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꽃 같은 사람이어도 옆에 있을 거고,
악취를 풍겨도 옆에 있을 거야.



















세상만사 원망스럽던 순간 브런치에 올렸던 문구. '꽃 같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꽃은 무슨, 요즘은취나 안 풍기면 다행이다.' 엄마에게 함께 있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고서 스스로를 혼냈던 날이다. 옆사람한테 그리 못되게 굴어 혼자 있으니 편하냐고,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렇게 못난 자아를 마주하고서 쓴 표현이었다. 진심이었다. 나조차 그런 악취를 견디지 못해 유체 이탈이라고 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근데 언니는 어떤 모습이든지 곁에 있겠다고 했다.


이어진 이야기도 짓이겨진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졌다. 사람이 한결같이 밝고 예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건 성인군자뿐이라며 욕도 해보고 감정도 풀고 펑펑 울고 소리도 지르는 게 사람답다고. 좋을 때가 있으면 힘들 때가 있는 법이라며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하다 말고 옛날 사람들이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을 만들어낸 게 신기하다며 조잘대는 귀여운 그녀.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사는 다 똑같은 것 같다고 했다. 현대의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의 그들도 이랬겠지, 안심할 수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섣부른 위로는 싫다며 예쁜 일상을 전해주었다. 낯선 땅에서 모든 것이 서툰 그녀는 실수투성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카드키를 찍고 통과하는 정문에서 매일 왼쪽, 오른쪽이 헷갈려 경비아저씨랑 웃는다고 했다. 그 순간이 드라마처럼 떠올랐다. 백합 드라마의 다음 장면은 강의실이었다. 교환학생인 언니는 과제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여 수업이 끝나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교수님이 무서워 어렵게 질문을 건넸고, 그는 귀엽고 환한 웃음으로 환영한다며 두 팔 벌려 안아주었다.















언니는 그렇게 대해야 하는 사람이야!!!
그 머나먼 땅에서 만났구나!!!















정말로 언니는 그런 사람이야. 당신은 그렇게 대해야 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깊은 포옹만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야. 그러기에도 바쁜 사람이야. 언니는 비행기 태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언니, 정말 언니는 그런 사람이야. 언니, 나보고 작은 천사라 해주었었지. 실은 엄마한테 못됐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어. 그럼에도 나의 어떤 점이 그런 말을 언니에게서 꺼냈는지 잘 알아. 언니한테는 평생 천사하고 싶다. 버스에서 진정한 위로법을 알았다는 메모를 했어. 나는 이번에 아무런 위로도 들리지 않을 만큼 힘든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배웠어. 진짜 고통스러웠는데 힘들 때 언니에게 그 말을 건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좋더라. 다행라며 감사했어. 오랜만에 세상에 대고 원망 말고 감사를 외쳤어. 고마워.



















그녀의 이메일 마지막 줄. 만날 수 없어, 통화할 수 없어 색깔과 크기와 느낌표로 마음을 전해온 그녀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언니, 나 그 수렁에서 폴짝 뛰어 올라왔어 :)























그녀의 '다가옴'은 늘 옳았다. 이메일 속 그녀의 일상은 세상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 곳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이 세계 말고 저 세계도 있었다. 다른 세계를 그리며 희망을 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이라며 보내준 두 책 중 한 권을 펼쳤다. 가슴에 꼭 품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왜 힘든지, 왜 아픈지 다 아는 사람이 택한 책 같았다. 모든 것에 통달했다고 생각했던 날 겨우 29페이지를 읽고 얕은 정돈임을 깨달았다. '많이 정리했지만 아직도 한참 남았구나.' 조금씩, 천천히 돌아보며 살아가야겠다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얼마 전 친구의 고민에 답할 수 있는 것도 언니 덕분이었다. 자신의 친구가 이별했는데 함께 있어줘야 할지, 그냥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랬다. 나는 말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말하되, 혼자 있고 싶으면 그리하라고 덧붙이면 어떨까?" 백합 같은 그녀가 그랬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이별을 했을 때 연락이 왔다. 만나자고 하면서 혹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면 말해달라고 그랬다. 그리고 그 방식은 다른 어떤 것보다 마음을 편하게 했다.













진짜 상대가 필요한 것을 해주겠다는 마음은 어디서 배운 걸까?
신기한 사람이야, 곁에 머무르며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
























그녀만의 '다가옴'은 꽃잎이 되어 마음을 어루만졌다. 폭풍이 지나가고 햇살 아래 있는 지금도 그 꽃잎을 한 장씩 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