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귀한 건데"

젖은 편지를 닦고 또 닦던 선생님의 모습

by 예이린













'선생님'이라는 세 글자에 담기에 넘치는 사람이 있다. 올해도 겨울의 시작점에 그가 태어난 날이 찾아다. 선물에 대해 여쭈어도,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답을 안 하시리라. 가까이 있을 때만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직접 만든 요리로 마음을 정했고, 희미한 아침시간 서툰 솜씨로 도시락을 채웠다. '딸'이라 부르는 제자에게서 받은 일곱 번째 깜짝생일선물. 빨간 종이도시락을 든 선생님은 상기된 얼굴이었다. 우리는 함께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그런데 도시락에 끼워둔 편지가 보이지 않았다. "어? 편지는요?" "응? 편지가 있었어?" "네. 어디 갔지." "오다가 떨어트렸나? 있어봐, 내가 가보고 올게." 주문을 하고 나도 택시에서 내려 걸어온 길을 살폈다. 진회색 땅에 초록빛 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꾸물꾸물한 날씨에 괜히 작은 편지 하나 찾겠다고 헛걸음 하실까 마음이 쓰였다. 하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안 보이면 그만 오시라고 편지는 또 써드리겠다고.



그런데 신호음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기다렸다. 손에 편지봉투를 들고 돌아온 선생님은 기쁨보다 속상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서둘러 의자에 앉으셨고, 휴지를 뽁뽁뽁 뽑아 닦기 시작하셨다. 오전에 비가 와 땅이 젖어 있었다. 엉성하게 끼워놨던 편지지가 웅덩이에 빠진 모양이었다. 편지봉투 부분마다 진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물에 젖은 종이를 닦는 건 당연지사니까 가만히 지켜보는데 좀 이상했다. 선생님이 열심히, 너무 열심히 닦으셨다. "아이고, 이거 안에까지 젖은 건 아니겠지. 괜찮으려나." 이런 말만 되풀이하면서. "선생님 그만하세요. 젖을 수도 있죠. 그만 닦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내 말도 안 들리시는 듯 "아이고... 이게 얼마나 귀한 건데."하시며 인상을 쓰셨다. 내 귀에는 마치 너는 이게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는 의미로 와 닿았다. 그렇게 진짜 보물이라도 망가진 듯한 표정으로 닦고, 또 닦고.



꾸며낼 수 없는 진정성이 있다. 선생님의 표정이 그러했다. 꽤 오래전 손편지를 드렸던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어리석게도 스쳐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한 마디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젖은 편지를 애지중지 다루셨다. 복잡한 세상에 물들어가며 제맘대로 보물을 규정지어왔던 나는 어리둥절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보물 같은 선생님 곁에서 보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난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 영상에 시간과 공기와 온도와 향기까지 담아두고픈 모습. 그러한 장면들은 작은 빛으로 모여 있다가, 문득 가로등처럼 환한 빛을 내어준다. 우리는 어두운 길목마다 그 빛으로 얼마든지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다. 골목길마다 높은 가로등을 여러 개 세워준 이로부터 또 하나의 빛을 선물 받은 날 마음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이라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