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몰라서 그런 것을'

부모도 어렵고 서툴고 잘 모를 수 있다는 것

by 예이린






하루는 과외 학생이 엄마와 싸운 이야기를 했다. 딱딱한 표정으로 쌓여있던 감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어쩜 그리 비슷할까. 다행히 먼저 겪었던 일이라 몇 마디 건넬 수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따뜻해졌고, 얼마 후 어머니 화장대에 편지를 올려놓았다며 고마움을 전해왔다.



아이에게 전한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도 어렵고 서툴고 모르지 않을까?'였다. 나 또한 예전에는 엄마가 뭐든 옳은 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인데'라는 잔인한 기준을 들이밀었다. 나는 어리고 틀릴 수도 있지만, 엄마는 엄마니까 늘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엄마 품에서 클 때 그건 참 당연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부모님의 교육관을 인터뷰하는 과제를 하면서였다. 멀어서 만날 수는 없고, 전화로 하기에도 어색했다. 부랴부랴 10가지 질문지를 만들어 이메일을 보냈다. 엄마에게서 받은 답장에는 나를 키우며 지녔던 기준, 기쁨,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붙잡은 것은 미안함을 담아 덧붙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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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두서 없이 적어서 도움이 될런지 모르겄다.

너희들 키울 때보다 지금에 와서야 후회하는 부분이 더 많다.


엄마도 몰라서 그런 것을

미안해.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야기하면서

어린 시절 엄마가 힘들게던 거 다 풀자.


사랑스런 우리 작은 딸

힘들면 힘들다고 하고

혼자 씩씩한 척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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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몰라서 그런 것을.' 사무치는 말이었다. 혼자서 자매를 키워냈다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엄마였다. 후회를 하는 줄 몰랐다. 딸을 힘들게 했다고 여기는 줄도 몰랐다. 무엇보다 엄마가 '몰랐다'고 고백할 줄은 정말 몰랐다. 당장 메일을 읽는 순간에도 모르는 게 그토록 많던 딸은 어리석게도 엄마만은 다 아는 줄 알았다.



그때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꽤나 혼란스러웠다. 때마다 아이를 위해서 포용해야 하는 건지, 강건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아이를 대하는 일은 기계나 프로그램을 다룰 때처럼 메뉴얼이 있는 게 아니니까. 메일을 읽은 후로는 아이들을 대하는 게 서툰 순간마다 엄마가 떠올랐다. 고작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 제자를 대하는 내가 이러는데 엄마는 오죽했을까 싶었다.








응답하라 1988_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첫째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는 어떻게 키우고, 막내는 어떻게 사람 맹글어야 하는지 몰라서…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녀…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긍께 우리 딸이 쪼까 봐줘”







수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며 첫째를 겨우 키워낸 우리 엄마. 그런데 둘째인 나는 또 언니랑 많이 달라서 그녀의 속을 태웠다. 부모라는 게 참 얄궃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엄마인 사람은 없는데 자식은 처음부터 그들을 부모로만 바라본다. 엄마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걸 겨우 시작했을 때는 나 하나 책임지는 것도 버거웠다. 그래서 엄마에게 고생했다고 위로 한 번 못하고, 잘해냈다고 인정 한 번 못하고 수년이 흘렀다.







기차 창가로 노란 햇살이 눈에 닿자 방울방울 흩어진다. 엄마 덕에 이 온기와 눈부심을 느낀다.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해준 부모님. 우리 자식들의 역할은 생애 처음으로 기꺼이 부모가 되어준 그들을 힘껏 이해하는 게 아닐까. 부모라는 무거운 단어 대신에 잘 몰랐던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