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없어요, 같이 없어도 괜찮아요.
꿈 :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꿈이라는 말 참 많이 들어보셨지요? 작년 초겨울 한 토크콘서트를 다녀왔어요.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하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꿈을 펼쳐온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사람들이 모였기에 '꿈'은 단연 화두였습니다. 밤이 깊어가며 모두가 본인의 꿈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이 시작되었어요. 한 분이 '꿈이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으시더군요.
예전에 친언니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언니가 고등학생이던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꿈에 대해 한 명씩 발표를 했고, 한 친구가 꿈이 없다며 울었습니다. 이윽고 많은 학생들이 그 모습에 공감하여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고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반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같은 고민을 지닌 분들이 앞에 계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 마음 한 부분을 어루만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은 의견이 있어요. 저는 좋은 사회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안정적인 삶을 원해서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러 사회적 상황에 의해 지나치게 많은 젊은이들이 비슷한 길을 택한다는 것이 문제인 거죠.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한쪽에서는 더 많이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 사람이 태어나 큰 꿈 없이, 큰 열정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면 그게 과연 가치가 낮은 삶일까요? 그 사람의 삶에 큰 꿈이 등장한다면 가치가 더 높아질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꿈 없이 살았지만 주위에 항상 따뜻한 온기를 지닌 사람을 보았어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좇아 열정을 쏟아붓지 않았지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면 상대방이 온 세상의 전부인 양 들어주는 사람을 보았어요. 꿈이 없다고 고민하지 않아도, 울지 않아도 돼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무엇이든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 그대로 정말 소중하고 빛나는 사람이에요. 적어도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누군가 꿈을 잡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꿈을 잡기보다 꿈에 잡혔던 것 같아요. 15살에 세상의 아픈 이야기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마음이 쓰였습니다. 자꾸만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영상을 찾고, 인터뷰를 찾고, 책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참 화가 났어요. 왜 아무 죄 없는 꽃다운 나이의 소녀가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아야 하며, 피임기구를 쓰지 않겠다는 손님에게 빌면서 돈을 벌어야 하냐고, 왜 아이들이 어른이 만든 전쟁 속에서 적군의 피를 마셔가며 두려움을 잊고 사람을 죽여야 하냐고, 도대체 왜 그렇냐고. 무엇이든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꿈은 어린 마음에 굳게 자리 잡았어요. 4,5년이 지나며 아이들에게 '문화예술'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다는 목표가 잡혔어요. 우선 스스로 춤과 음악, 영화를 비롯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콜롬비아 '몸의 학교'와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 최영환 씨의 'Brush with hope' 등은 문화예술 분야의 가능성을 입증해주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꿈이 커가는 동시에 저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예쁜 옷을 사면, 밤새 즐겁게 놀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돕겠다는 제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제 꿈과 관련 없는 분야는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꿈을 향해 가는 길만으로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았으니까요. 왜곡된 꿈의 개념이 저를 많이 옥죄이고 있었어요. 당연히 온전한 행복과도 멀어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깨달은 후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던 습관적인 기부를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나와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요. 2년쯤 지나니, 이제야, 이유 없이 느껴지던 죄책감이 사라진 것 같아요.
꿈은 참 좋은 거예요. 남미에 가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문화예술교육으로 희망을 주겠다는 꿈에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 찼어요. 덕분에 저는 문화예술분야의 해외봉사와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의 대학생활 중 가장 반짝이고 소중한 시간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꿈이 저를 지배해 '카르페 디엠' 없이 네모난 상자 속에 자신을 넣어둔 시간도 있었습니다. 단순한 꿈의 무게가 아니었어요. 꿈을 잡지 못하고 '꿈에 잡힌 시간'이었지요.
토크콘서트에서 만나 가장 많이 소통한 조원들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섣불리 무엇이라도 설정하려는 건 정말 문제인 것 같다.', '누군가와 나눌 꿈에 앞서 자기 스스로의 온전한 행복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꿈, 지금 당장 없어도 돼요. 저도 없어요. 같이 없어도 괜찮아요.
다만, 그래도 굳이 처음 만난 사람이 "꿈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하고 싶은 답변이 있어요. 이 기나긴 이야기를 설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아마 바뀌겠지만, 지금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도전하는 거예요. 무엇인가 도전할 때 집중력도 최고고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거든요. 힘들어도 웃음이 나요. 그러다가 전문분야로 삼고 싶은 일을 만나면 그건 다른 어떤 도전에서보다 열심히 임하고 싶어요. 그래서 언젠가 직업과는 관련 없는 도전 분야 앞에서 헤매는 청춘에게 괜찮다고, 다 해봐도 자기 자리를 찾아올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