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손녀 때문에 아내한테 혼난 남편 이야기>
막내손녀 : 할머니 결혼사진 있어요?
할머니 : 하도 오래돼서 없어졌다.
막내손녀 :응? 왜 없어. 챙겨야지~
할머니 : 그때 족두리 쓰고 이래이래 인사하고 했는데
막내손녀 : 아, 전통혼례?
할머니 : 그랬지 뭐. 옛날 식으로 했지. 근데 와?
막내손녀 : 제주도 가서 할무니할아버지 웨딩사진 찍자.
할머니 : 그래 하하 아이고.
할아버지 : 말라꼬. 영정사진이나 찍어놔야지.
할머니 : 할배는 손녀가 해준다는데 왜 그래. 찍자 하면 찍으면 되지.
막내손녀 : 할아버지 나비넥타이 중절모 사고, 할머니 꽃머리띠랑 부케만 사면 돼요. 할머니 흰 옷 있어요?
할머니 : 그래. 윗도리랑 아랫도리랑 다 있다
막내손녀 : 할아버지 반팔 와이셔츠는?
할아버지 : 아 그래그래 있다
중학교 때까지 살던 주택은 문과 현관 상이에 복도처럼 된 공간이 있었다. 왼쪽에는 수돗가가 오른쪽에는 현관이 자리 잡았던 공간. 짧은 치마를 입은 날이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수돗가에 앉아 계실 때 얼른 나가라며 망을 봐주셨다. 그래도 걸리는 날이면 젊은 애들 다 그리 입는다며, 예쁜데 뭘 그러냐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잔소리도 심술도 괴팍함도 잔뜩 탑재한 할머니를 미워할 때가 더 많지만, 오늘도 할머니는 예전처럼 내 편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혼났지만 그 덕분에 막내손녀는 두 분 웨딩사진 액자 만들어드릴 생각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남자정장점도 처음 가보고 부케를 만드는 내내 새 신부부 마냥 설렜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고 왔다 갔다 하느라 발가락이 아팠지만, 내가 샀던 그 어느 생화보다 향기 없는 이 조화가 더 예뻤다. 할아버지는 튀는 분홍색 넥타이에 손사래를 치실지 모르지만, 손녀 고집 못 이기고 결국 멋쟁이 영감님이 될 것이다. 오늘은 천국을 헤엄치는 날인가 보다. 꽃머리띠랑 중절모는 어떤 거 사지?
2016년 5월 30일
그렇게 시작되었다. 웨딩 사진을 조금씩 준비했다. 바쁜 나날 시간을 내어 할아버지 셔츠를 사고, 사이즈가 맞지 않아 사이즈를 바꾸고, 모자를 사고, 화관을 사고, 할머니께 어울리지 않아 다른 것으로 바꾸고. 그 모든 순간에 기쁨이 차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참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부부로서 두 사람을 사진에 담을 생각에 어쩌면 손녀가 더 들떠 있었다. 그리고 6월 19일 촬영한 사진에 여전히 나는 설렌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고 사랑이라 그럴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잃어버린 결혼식 사진에서보다 많이 늙으셨을 게다. 하지만 그 세월 속 함께 다져온 시간이 담긴 노부부의 모습이 틀림없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 뉴스에서 보도하는 이혼율도 높다. 그러한 세상을 맞이해 살아가는 내가 가장 가까운 노부부를 보며 느낀 감정은 '경이'였다. 당연하게 여기던 두 분의 세월이 이제야 놀랍게 다가왔다. 때로는 옥신각신하지만 늘 서로를 먼저 챙긴다. 여전히 한 침대에서 잠이 들고, 누군가 아파하면 가장 먼저 눈치를 채는 것도 서로이다.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아이를 낳아 손자와 손녀가 한 분 씩 부축하며 걸어가는 세월 동안 늘 함께 있었던 두 분. 할아버지는 나와 걸어가다가 뒤를 슬쩍 보시더니 할머니께 가 가방을 받아오셨다. 밥을 먹을 때면 서로의 접시에 반찬을 주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건강에 맞는 것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씹으실 만한 것을. 나는 두 분의 반이나마 닮아 살아갈 수 있을까, 조용히 생각했다.
노부부를 사진에 담아서, 사진 속 이토록 아름다운 두 사람이 나의 사람들이라서 감사하다. 자꾸만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자꾸만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