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불러주어 좋은 말, 애인아.

by 예이린


오랜만에 좋아하는 이들을 보러 갈 생각에 이 옷에 어떤 귀걸이가 더 이뻐보일까, 이것저것 껴보고 있는데 엄마가 봉투를 건넸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할아버지께서 화장대에 내 용돈봉투를 올려놓아 감동했다면서.


학창시절에는 구두쇠 할머니 몰래 손에 쥐어주던, 대학생이 되고서는 몇 달에 한 번 잊을 때쯤 엄마를 통해 계좌이체를 시켜주던 그 용돈들.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 싫다며 여전히 일을 하시고 월급은 할머니께 드리고서 용돈을 받아 쓰시는 남편이기에, 당신이 조금씩 포기하며 막내 손녀에게 봉투를 내민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처음으로 손수 손녀이름까지 쓰신 봉투를 보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되짚어 봤지만 유치원 때부터 함께 살았는데 당신 글씨를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엄마한테 "할아버지 글 아셔?" 라는 바보같은 질문도 했다. 나한테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니 그 집단의 공통점을 대입해서 바라보고는, 어떤 분이신지조차 잘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철없는 손녀는 착한 언니가 꼼꼼히 챙긴 어버이날을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다. 또한 그 막내는 오늘 과외학생 둘에게 꽤 비싼치킨을 사주고, 표를 예매해주겠으니 주말에 둘이 영화보러 가라고 말했다. 어른인 척 아랫사람을 챙기고 자신이 조금은 좋은 사람이라 여기던 어리석음, 마음이 미어져 왈칵 울게 되었던 걸까.






위화의 인생_이라는 소설을 가장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름대로 힘들어 전학을 가겠다고 우겼을 때, 딱 한 번 할아버지께서 나를 혼내며 말씀하셨다. '나보다 젊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고개를 숙이며 살아왔는지 아느냐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가 그리 힘들어 말썽을 피우냐고.'


그 세월이 모두 떠올라 오늘 이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도 똑같을 거라는 걸 안다. 낮잠을 깊게 자면 새벽 6시가 되도록 잠이 들지 않는다. 그럴 때면 가족이 모두 잠들었을 때 혼자서만 듣는 소리가 있다. 그렇기에 세 번쯤 울리면 할아버지께서 잠을 깨시기에 충분한 알람 소리. 내가 야식을 먹고 귀찮아 남겨둔 설거지를 하시느라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 침대에서 한 번 일어나 "일어나셨어요." 살갑게 인사하면 될 것을 어색해서 굳이 그러지 않는다. 그냥 침대의 온기 속에 머물며,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지겨운 반복을 덤덤히, 너무나도 덤덤히 또 살아가시는구나, 느낄 뿐이었다. 앞으로도 아마 나는 그럴 것이다.


5월에는 과외학생 중 세 명이나 생일을 맞이했다. 곧 자기 생일이라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애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선물해줄까, 어떤 이야기를 편지에 쓸까 고민할 뿐 축하받고 싶은 욕심은 나지 않았다. 받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이었다. 필요한 걸 묻는 질문에도 딱히 욕심나는 게 없었다. 12시 땡하고서 누가 축하한다고 챙겨줄까 궁금해했던 내가 이번 생일에 왜 이토록 별 느낌이 안 드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랬다.


그런데 5월 6일을 30분쯤 앞두고 받은 할아버지의 마음에, 평소에 날 부르시듯이 '애인'이라 쓰신 정겨움에, 누구도 못 따라갈 위트로 '할버지가'라는 줄임말을 쓰시는 귀여움에, 태어나 처음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서 놀러간다고 기대했던 밤에 눈이 팅팅 부을만큼 울어버렸다.


오늘은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애인아'라 부르던 습관이 특히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