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주머니에 사랑이 차곡차곡

편히 쉬세요, 나의 할아버지

by 예이린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큰 장롱에서 할아버지 옷은 오른쪽 아래칸을 소박하게 채우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함께 상표를 맞추어가며 위아래가 세트인 양복을 하나 찾았다. 입관식을 위한 옷,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할 옷이었다. 와이셔츠의 구김을 지나칠 수 없었던 나는 다리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언니는 방문 너머에서 할머니의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느라 분주했고 나는 오롯이 혼자 할아버지 옷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욕심 없고 정갈했던 주인을 닮아 화려하지 않은 옛날 양복, 얼룩이 묻은 런닝, 투박한 속옷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듯 나의 다림질 솜씨는 영 어설프기만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에게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정성을 천자락에 담았고, 무심해보였던 구김은 어느새 사라져갔다.



욕심 없고 정갈했던 할아버지의 일상, 막내손녀는 그 모습을 몰래 카메라에 담곤 했다.




그리고 다림질을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다음 날 알게 되었다. 엄마는 옷들을 건네받자마자 양복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고 어쩜 골라도 이 양복을 골랐냐고 말했다. 엄마 손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십만 원 남짓한 돈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양복의 앞주머니는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위한 용돈을, 아니 말없이 전하던 사랑을 담아두던 비상금 보관함이었다. 투병 중이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간병하던 딸에게만 비밀을 살짝 알려주었고, 엄마는 양복을 보자마자 혹시나 하고 손을 넣어보았던 것이다.


암 진단을 받고 의사가 그만두기를 권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작은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셨다. 늙은 몸으로 격일 근무에 시달리며 타온 월급은 꼬박꼬박 할머니에게 드리고 늘 약간의 용돈만 받으셨다. 그나마도 다 쓰시지 않고 조금씩 모아 양복 주머니가 불룩해지면 부인 몰래 미션을 수행하시곤 했는데, 바로 두 손자녀석과 함께 살던 두 손녀에게 용돈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던 막내손녀는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왔지만 할아버지의 용돈은 끊기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엄마를 통해 계좌로 보내시던 돈은 하고 싶은 것 많고, 사고 싶은 것 많은 여대생에게 단비같은 것이었다. 어느 순간 다른 손주들이 직장인이 되어 할아버지 하고 싶은 것 하시라고 드린 돈마저 용돈 주머니에 머물렀다가 내 수중에 오기 시작했고, 요란스럽지 않게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전하던 사랑은 투병 중에도 이어졌다. 용돈은 곧 할아버지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하고 챙기신다는 확고한 믿음이었고 그 시절의 나를 여러 번 다독여주었다.






할아버지가 평온히 누워 있는 관 속에 그 양복을 넣어드렸다. 양복을 잘 입으시지 않아 다른 것들은 손 갈 일이 많이 없었겠지만, 용돈 주머니가 있던 그 양복만큼은 친숙하실 것 같아 다행이었다. 다만 입관식이 끝나고 관 속에 지폐 몇 장 넣어드리기도 한다는 말을 듣고 서글프기는 했다. 할아버지가 사랑을 차곡차곡 모으던 곳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용돈을 넣어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었다.


어리고 서툴러서, 처음이고 경황이 없어서, 마지막까지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마음이 송구스럽다. 그리고 이제는 까먹을 때쯤 입금되던 할아버지의 용돈도, 할아버지가 제자리에서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는 안도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하늘을 향해 미소지을 수 있다. 이제 내 눈에는 세상 모든 양복 주머니가 할아버지 마음을 담던 사랑주머니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장례식 내내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고, 끝까지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렸다.






글을 쓰다가 그렇게 주신 돈을 나는 참 쉽게 써버렸다고 슬퍼하니 친구는 그게 기쁨일 분이셨을 거라고 했습니다. '내가 번 돈으로 내 손녀딸 맛난 거 먹었겠구나.'하고 좋아하셨을 거라는 그녀의 말이 어쭙잖은 위로로 남지 않고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옷장 문을 열고, 익숙한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고, 손녀에게 돈을 건네던 순간은 할아버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뒤늦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서야 곰곰히 생각하고, 그 인자한 미소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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