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마음에 하는 일
내 삶에 햇살같은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 사회에 나와 처음 만났던 연인, 그와 이별하던 날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여름에 다정했던 그는 이듬해에도 한결같이 살갑고 사랑스러웠다. 그럼에도 어느날부터 헷갈렸다. 함께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편해진 내 모습을 보며 꽤 오랜 시간 평범한 권태기일까 고민하였다. 결국 시간을 갖자는 말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그와 정말 그만하여도 괜찮을까 고민이 이어지던 어느 새벽에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잠에서 깨어 다정하게 전화를 받았고, 그간 마음이 힘들어 혼자 운전을 하여 전국을 돌았다고 했다. 늘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얼마 후 나의 고민은 이별이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마지막이라는 순간이 왔을 때 미안함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원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그를 위하는 척 말했다. 그리고 “아니야, 그래도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는 대답을 들었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잘 몰랐기에, 참 많이 긴장한 채로 약속 장소에 갔다.
강이 보이는 카페에는 예쁜 햇살이 들었고,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히 전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 굳어 있던 어깨, 표정, 마음이 조금씩 풀려갔다. '그동안 많이 의지했다'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마음, '결혼하고 싶었는데 너가 그렇지 않아 속상했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나라면 자존심 때문에 전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진심. 그리고 이 사람을 다시 못 봐도 괜찮을까 맘 졸이며 고민하던 내 시간마저 어루만지는 한 마디.
말하기 힘들었겠다. 사람 연을 끊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덕분에 진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이별의 순간에 겁이 나는 마음 대신 솔직함만 자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어떤 존재였는지 말할 수 있었다. 그 사람도 몰랐던 부분이 있는지 "정말?"하고 묻기도 하였다. 우리는 눈물을 조금씩 보였고, 마지막에는 응원을 건넸고, 그 후로 한번도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날 처음 따뜻한 이별을 배웠다.
그날은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전하고 싶던 오롯한 것을 왜곡 없이 전한 날이기도 하다. 상대가 햇살을 비춘 덕에 어디로 튈 줄 몰랐던 내 마음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었다. 함께 탑을 쌓아올리고서 각자의 방향으로 가야 하는 두 사람의 아픔은 남김없이 주고받은 진심이 토닥여주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