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결제는 안 아까워도 TV수신료는 아까워요

MBC·KBS의 적은 넷플릭스가 아니에요. 잘못 보신거 같은데?

by 심미금


초등학생 시절, 나는 새벽 6시에 하루를 시작했다. 일요일 한정으로.

전날 무엇을 했든 몇 시에 잤든 상관없이 6시가 되면 꼭 눈이 떠졌는데, 매번 큰 오차 없는 정확도를 자랑해서 내 머릿속 어딘가에 기상 코드가 입력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름 꽤 합리적인 의심이었던 것이, 정작 학교를 가는 날에는 오전 8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도 일어나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잠귀는 밝은 편이라 알람 소리가 울리면 벌떡 일어났지만, 10분 뒤로 맞춰놓고 다시 토막잠을 자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리고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나 자신과 치르는 내적 갈등 중 가장 오래된 의제이기도 하다. 돈과 강제성(예를 들어 회사 업무)이 부여되지 않는 이상 내가 이 싸움에서 이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이런 평범한 초딩이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이유는 단 하나, TV였다.

우리 가족은 매주 토요일마다 거실에 이부자리를 깔고 함께 자곤 했는데, 부모님은 꼭 TV에 방영되는 영화를 보여주셨다. IMF 직격탄을 맞은 후 평일 대부분의 시간을 생업을 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이 자녀들과 유대감을 갖고 기본 교양을 키워줄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편한 방법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이 주말에 함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역시 구관이 명관이군'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님도 생각 못한 부작용이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언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두 딸이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을 봐야 했다는 점이었다. 사방이 고요한 새벽 6시, 부모님이 TV 소리를 듣고 깨는 순간 채널권을 박탈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며 TV를 켬과 동시에 엄지손가락으로 빠르게 볼륨을 줄이는 현란한 손 스킬을 익혔고, 동생은 아무리 소리가 작아도 TV가 켜졌다는 사실을 육감으로 감지하는 능력과 TV가 켜지고 10분 안에 일어나는 기술을 연마했다.


지금처럼 채널이 많은 시기도 아니었고,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콘텐츠는 전무한 시절이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채널은 지상파 3사와 EBS 정도였다.


채널은 적어도 볼만한 프로는 충분히 많았는데, 「디즈니 만화동산」 「사랑의 스튜디오」 「좋은 친구들」 「노희지의 꼬마 요리」 등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니 한 프로그램이 끝나기 무섭게 채널을 돌리는 게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방송은 복권 방송이었다. 예쁘게 입은 언니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돌림판을 등진 상태로 서있다가 '준비하시고 쏘세요'란 구령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최고의 명장면이었는데, 경쾌한 손놀림과 함께 날아가는 화살. 움직임이 멈춘 돌림판에 다가가 화살이 꽂힌 숫자를 상단으로 돌려 보여주며 숫자를 말해주던 미소까지! 어린 내 눈에는 완벽 그 자체였다.


다른 방송은 아이템, 출연자에 따라 웃음의 기복이 있었지만, 복권 방송의 패턴은 너무도 단순하고, 변함이 없고, 유쾌했기 때문에 즐거움의 기복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검색해보니 방영시간이 오전 11시로 뜨는데, 내가 새벽에 본 화면은 재방송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매주 일요일 새벽 6시부터 시작된 나의 TV 관람 기는 만화, 예능, 교양, 퀴즈쇼 등을 넘나들며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일요일은 부모님도 너그러워지는 편이라 평소보다 잔소리가 덜했고, 평일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방송됐기 때문에 볼 것도 많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어린 시절의 일요일 아침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한 기사 때문이었다. 어제 공개된 KBS 2019 경영평가에 대한 기사였는데, 내용 중에 TV수신료 합리화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얼마길래 합리화를 이야기하지?'하고 찾아봤다가 1981년부터 40년째 동결이라는 tmi까지 접해버렸다.




내가 고사리손으로 현란하게 TV 음량을 줄이고 채널을 돌리던 시기의 TV수신료 가격은 2500원

그리고 KBS에 채널을 맞춘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지금의 TV수신료 가격도 2500원




이쯤 되면 물가가 올라도 오르지 않는 것 목록에 내 월급 옆자리를 수신료에게 줘도 될 것 같다.


TV수신료는 국민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고, 방송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국민의 돈으로 방송국이 운영되고 프로그램이 제작된다는 사실은 알지만,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받는 월급, 우리 팀의 제작비가 어디에서 왔는지 근원을 일일이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기사를 보고 나니 왜 KBS가 주기적으로 수신료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얼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수신료는 40년째 동결이니 정상화 추진에 대해 말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시대가 바뀌면 현시대에 맞는 조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세월이 흐른 것만으로 [합당한 가격]을 논할 수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것 무엇 때문일까?




TV수신료에 대해 방송국과 국민의 생각은 적나라하게 다르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에 TV수신료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TV수신료 해지」가 제일 상단에 뜬다. 그리고 TV수신료를 해지하는 방법, 부당 징수된 돈 받아내기 등이 꿀팁으로 뜬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방송국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양쪽의 체감온도가 다른 것은 현재 진행형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한 달 전 박성제 MBC 사장이 MBC의 TV수신료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MBC도 공영방송의 성격이 있는 만큼 KBS, EBS처럼 수신료 등 공적재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MBC가 공직선거법, 정당법 등에서는 공영방송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공적재원 관련 정책에서는 민영방송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달 부산에서 있을 한국방송학회 학술대회에서도 수신료에 대한 입장을 또 내놓겠다고 밝혔는데, 나름 논리적인 이 발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큰 공감을 못 사고 있다는 뜻이다.



한 언론학 박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영방송 ‘공백기’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이제 공영방송 없이도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JTBC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봤고 드라마는 tvN에서 봤다. 지금은 KBS가 수신료를 가져가는 것도 부정적인 분위기”라며 현재 MBC의 수신료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방송사보다 잘 만들거나, 그게 어렵다면 공영방송으로서 차별화된 콘텐츠로 수신료 지원의 당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



오늘 본 TV수신료 관련 기사에서 가장 공감 갔던 대목이다. 제대로 되고 차별화된 콘텐츠, 지상파 방송만이 할 수 있는 채널 특색을 더 살린 다음에 수신료에 대해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공감하고 귀를 열지 않을까?


방송국에서 주는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나조차도

'저 돈이 내 프로그램 제작비에 제대로 반영되기나 할까? 제작 환경이 달리지 진 않을 것 같은데? 수신료를 높이면 누가 좋은 거야?’란 생각부터 드니 TV를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은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상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동안 그 대체제들이 생겨났고, TV 앞에 앉아 편성표를 보던 사람들은 이미 다른 플랫폼으로 떠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국에 적자가 생겼으니 수신료를 올리자부터 말하면 적은 금액에 동감하던 사람들 마저도 '글쎄?''나는 TV를 안 보는데 꼭 내야 하나?'란 반응이 나올지 않을까 싶다.


TV보다는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내가 원하는 영상만 골라보게 된 세상에서 TV수신료는 구시대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첫 수신료 부과가 60여년 전에 있었으니, 제대로 된 가격 설정을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된 논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논의를 피하면서 생긴 부작용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멤버십은 베이직, 스탠다드, 프리미엄으로 나뉜다. 가장 비싼 것이 14,500원이고 가장 저렴한 베이직 요금제도 한 달에 9,500원으로 무료 행사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적은 가격은 아니다. 요금제에 따라 접속 인원이 달라지는데, 한 아이디에 최대 접속 가능한 인원이 모여 금액을 나눠서 지불하는 게 대부분이다.


가장 비싼 프리미엄은 동시 4명 접속이 가능하니 한 사람당 3,625원씩 내는 셈이 된다. 나는 지금 친구와 스탠다드 요금제를 함께 쓰고 있는데 매달 6,000원을 내고 있다. 조만간 인원 두 명을 더 모아서 가장 높은 요금제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단순 비교로 놓고 보자면, TV수신료 2,500원과 가장 비싼 프리미엄 요금제 14,500원의 차액은 12,000원.

1년을 놓고 보면 144,000원이라는 금액 차이가 생긴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가끔 일하다 보면(특히 본사 부장님들 위주로) TV수신료는 비싸다고 하면서 더 비싼 넷플릭스는 다들 결제해서 본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런 가격 차이가 있다고 해도 단순 비교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장 비싼 요금제의 경우 동시 4명 접속에 풀 HD, UHD(4K) 화질 제공, 4대의 스마트폰 혹은 태블릿 피씨에서 콘텐츠 저장이 가능하다.


내가 원하는 영상을 원하는 때에 스트리밍 해서 볼 수 있고, 미리 저장을 해두면 인터넷이 없는 곳(EX. 비행기)에서도 편하게 꺼내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여러 명이 함께 쓰면 가격도 3,000원대로 낮아진다.

4명이 쓰는 가격대로 재산정해서 비교하면 TV수신료와의 1년 격차는 13,500원에 불과하다.


가격 대비 콘텐츠를 비교하면 이 가격차는 거의 무의미해 보인다. 넷플릭스의 경우 아직 국내 제작은 드라마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비교가 어렵지만, 지상파와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콘텐츠를 놓고 비교해보면 내용, 제작 퀄리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입장에서 보면 과감하고 다양한 주제, 충분한 자료조사가 가능한 시간, 편집과 후반 작업에 공을 들일 여유가 느껴진다. 굉장히 부러운 지점이다.


사실 방송일을 하면서 가장 불만이 많은 것을 꼽으라면, 턱없이 적은 제작비와 부족한 제작 시간이다.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아이템을 찾고 회의를 하고 기획을 해서 써본 일은 거의 드물다. 내가 생방송과 예능 위주로 일해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만들어내기엔 시간과 제작비가 부족하단 사실을 부족하는 작가는 없을 거라고 본다.


인력 = 제작비이기 때문에 최대한 인력을 줄이고 타이트한 시간 내에 방송을 만들어 내게 한다.


'이번에 일주일 만에 방송 만들었잖아'란 말이 자랑거리 아닌 자랑거리가 되는 곳이다. 실질적인 제작 인원들은 방송제작 동안 정상적인 삶은커녕 일에 함몰돼 잘 시간도 부족하고, 마감 시간에 급급하게 일하다 보니 퀄리티는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국 숙직실에서 살면서 일해도 모자랄 때가 많다.


넷플릭스 제작 프로그램에서 일해본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작비나 기획 시간이 좀 더 여유로운 편이라고 들었다. (방송국 제작환경에 비하면 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물론 그곳이라고 천국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요점은 방송국 제작 시스템이 수익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너무 인력을 옥죄고, 정규직(심지어 신입이 아닌 이미 한 자리하신 분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휙휙 갈아버리는 부속품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방송작가 친구를 만났다가 내부에서 소리 없이 프리랜서 작가들을 갈아치우는 행태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단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 계속 일해도 될지 회의감이 든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일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고 언제 잘릴지 불안해하는 상황에서 좋은 퀄리티가 나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퀄리티 하락으로 이어지고 시청자들은 외면하고, TV수신료를 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문제 아닐까?


모바일, 웹으로 TV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시청률표는 무의미해진 지 오래지만, 아직도 많은 방송국에서 시청률표로 프로그램을 판단한다. 소수점 뒷자리까지 체크하고 코너별 그래프 하락을 그려놓고 철퇴를 내리는데, 이렇게 나노 단위로 분석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청률을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시청률=광고수익이니 그 조건에 따라 만들다 보면 자극만이 남는다. 문제는 방송법과 심의가 있으니 자극적인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함만이 남아버린다.


이런데도 방송국을 위해 TV수신료를 올리자고만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든 국민들이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나도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자 소비자이다 보니 잘 만든 콘텐츠에 대해서는 더 잘 만들 수 있게 들어가는 지원이 아깝지 않다. 그 '잘 만듦'이 수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면 그만이다.


나는 수많은 무료 음원 어플을 두고 벅스만 10년째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UI가 예쁘다.

음원이 플레이되는 화면이 예쁘고, 잠금화면에서 보이는 화면도 예쁘고, 가사 창도 예쁘다. 그래서 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도 그냥 쓴다. 다른 저렴한 어플도 많지만 매일 쓰기 때문에 내 손에 익숙하고, 예쁘고, 마음에 들면 그냥 쓴다. 내 선택이니 말이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최고의 스타 펭수를 탄생시킨 EBS의 경우가 그렇다.

현재 수신료를 받는 두 채널 중 하나인 EBS는 교육방송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따르고 있다. 초중고 교육과정 방송을 양산하고 있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제작한다. 그리고 자체 생산한 국산 캐릭터들을 아낌없이 활용하며 「자이언트 펭 tv」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자이언트 펭 tv」에서 EBS아육대(아이돌 육상대회)를 제작한 적이 있는데,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었다. 30대들이 어릴 때 보던 익숙한 캐릭터와 펭수처럼 요즘 핫한 신규 캐릭터까지 한 자리에 모아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EBS 오리지널 캐릭터 간의 서열과 군기가 유머 코드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그냥 캐릭터 하나가 인기를 끈 것뿐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펭수의 등장 이후 다 죽어가던 EBS를 펭수가 끌고 간다고 할 만큼 인기가 좋다. 펭수 얼굴만 있으면 날개 돋친 듯이 상품들이 팔리고, EBS는 딱딱한 교육방송이라는 이미지에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보던 캐릭터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변화했다. 나름대로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가고 있고 제대로 길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KBS는 「개그콘서트」의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장기 휴방을 결정했다. 오늘(6월 3일) 마지막 녹화를 기점으로 휴방에 들어가는데, 언제 돌아오는지 어떻게 재단 장할 것인지에 대해 전해진 바는 없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없어지는 것이 맞다고 하기엔, 21년간 KBS의 간판 노릇이 되었던 프로그램에 잔혹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개그콘서트」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에 폐지한다는 말은 한 명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느낌이다. 스포츠에서도 프랜차이즈 스타를 푸대접하기 시작하면 팬들이 떠나가기 마련이다. KBS가 오래된 간판 프로그램들을 떠나보낸 것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말이다.




TV수신료 이야기가 나와서 KBS를 대표적으로 이야기했을 뿐이지, 수신료를 받기 원하는 MBC의 상황도 다를 것이 없다. MBC가 국민의 수신료를 받고자 한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기사를 보다가 한 관계자의 말이 인용된 것을 보았다.

해외 OTT에 공영방송이 스러지면 누가 5·18 특집 방송을 할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실제 내 귀로 듣지 못했으니 정말 누군가가 했던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영방송이란 말을 볼모로 잡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TV수신료 문제를 비롯한 공영방송이 처한 수많은 위기는 해외 플랫폼 때문이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공영방송의 공백 기간을 만들고,

시청률과 광고수익을 이유로 단순한 숫자 가치로만 판단할 수 없는 프로그램들을 폐지하고,

방송제작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스태프들을 부품처럼 활용하고,

좋은 퀄리티의 방송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하지 않고,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적응하려는 노력보단 60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켜달라고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서가 잘못됐단 내 판단이 이상한 걸까?




수신료를 더 높이고자 한다면, 국민과 대화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지상파의 가장 큰 메리트는 TV만 있다면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채널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시청률이 낮다 예전보다 위상이 떨어졌다 해도 지상파에 나오고, 그 내용이 화제가 될 만한 거리라면 모두가 앞다퉈 기사를 쓰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캡처해서 나른다.


아직은 KBS, MBC가 말하면 사람들이 기꺼이 나르고 소비하고 대화를 해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의 애정이 있을 때 먼저 대화의 장을 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로 인해 제작환경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졌으면 하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TV수신료가 처음 국민에게 부과된 시점은 1963년.

6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제대로 대화해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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