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온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다면 어떨까?

아픔도 슬픔도 코로나도 없는 것 같은 TV 속 세상

by 심미금



올해 들어 촬영 소품 리스트에 없던 준비물이 생겼다.



손소독제, 체온계, 마스크, 관계자 리스트



손소독제는 큰 사이즈 여러 개를 준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 이를테면 스튜디오 입구, 대기실, 분장실 등에 구비해두고 이곳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든지 쓸 수 있게 하고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체온을 재서 기록하는 하는 것은 통과의례가 되었다.


모두의 필수품이 된 마스크는 항상 여분을 챙겨두고 혹시라도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쓸 수 있게 한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여분까지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다.


조금 앓는 소리같지만 마스크를 끼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기는 쉽지 않다. 촬영장에 따라 다르지만 실내여도 냉난방이 잘 안 되는 곳이 의외로 많고 에어컨이 구형일 경우 소리가 커서 오디오에 겹치기 때문에 촬영 직전에 꺼야한다. 요즘처럼 더위에 습기까지 더해진 시기에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든다. 물론 촬영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촬영팀의 고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필수 촬영 인원 외에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도 최대한 막는다. 애초에 방송 스튜디오 자체가 접근이 쉽진 않지만 가끔 참관, 홍보 등을 이유로 외부 인원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촬영 관계자 리스트가 이미 있기 때문에 그 외에 방문자에게는 '코로나 때문에 외부 인원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는 정중한 말로 방문을 거절하는 게 올여름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되었다.


나름 철저하게 방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촬영장은 코로나 노출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고 확진자가 줄었던 6-7월에도 어느 제작팀에서, 편집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왔기 때문에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쇄적으로 터진 방송계의 코로나 감염 사태로 대부분의 촬영이 취소됐다.

촬영은 물론이고 회의, 답사, 편성 조차 일시 정지되었고 내가 일하는 프로그램도 예외는 아니라 촬영 직전에 모든 것이 올스톱되었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사라지지도 않는구나



마스크 안에서 바쁜 여름을 보낸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다시 일시 정지되었다. 지난봄 이후로 두 번째다.


물론 수도권 집중 사태에 따른 일시적인 변화일 뿐이며 나보다 생업에 직접적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나니 불만을 가질 생각은 없지만 최근 사태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방송 현장의 코로나 감염 우려는 이미 예견된 사태이기도 하다. 방송사가 달라도 촬영장과 종합편집실은 같은 곳일 확률이 높고 매주 다양한 프로그램 촬영에 참여하는 인원이 넘쳐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안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채널은 달라도 모든 방송은 연결되어 있고

불특정 다수가 만드는 연쇄 반응을 걱정했다.

모두가 같은 걱정을 했고 비슷한 예방책을 지침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예견된 걱정이 어느 정도 현실화된 지금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연예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촬영한다면?’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어차피 2020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 생각해보는 게 큰 문제가 될까 싶다.


상상은 자유고 당장 이번 주 촬영이 취소된 나는 한 주 치 월급이 빵꾸가 났지만 그 빈 공간만큼 엉뚱한 생각을 해볼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가끔 웹서핑을 하다 보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연예인과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지적을 보곤 한다.

손소독제를 사용하고, 자막으로 고지를 계속해도 러닝타임 내내 보이는 연예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코로나 문제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니 요즘처럼 날카로운 시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지적이라고 본다.


최근 드라마를 중심으로 코로나 감염 사태가 발생하면서 CJENM, KBS, JTBC 등 방송국에서는 이번 달까지 드라마와 예능 야외 촬영을 중단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더 이상의 확산 사태를 막겠다는 의지로 사전 촬영이 된 방송들은 무리 없이 방송 본을 내보내고 재편성이 필요한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편성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화면 속 연예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고, 현실 세계에서는 코로나를 이유로 제작을 일시 중단하고.

과연 9월에 촬영이 재개된다면? 연예인들이 마스크를 쓴 채 등장할까?


내 생각엔 제작과정에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겠지만 방송 내내 출연자가 마스크를 쓰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대표상품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둔다. 혹은 ‘가장 강하게 어필하고 싶은 것’이 차지하기도 한다.


나이키 매장 입구에 신상 운동화가 있는 것도, 구글 메인화면에 검색창이 있는 것도 모두 대표상품이자 어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한 이미지를 배치해둔 것이다. 그리고 방송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 공식을 정확히 따르고 있다.


지난 주말 첫 방송된 [놀면 뭐하니 환불 원정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공개될 때 나온 포스터에는 환불 원정대 4인의 모습만 등장했다. 심지어 이미 데뷔한 걸그룹인 듯 안정적이고 포스 넘치는 모습이었고 [놀면 뭐하니]의 메인이자 지미유라는 새로운 부캐로 변신한 유재석의 사진은 따로 공개됐다.

(방송 후에 공개된 사진부터는 함께한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겉모습은 쎄 보이지만 속은 여린 언니들
이미 가요계를 평정한 레전드들의 만남
유재석의 새로운 부캐는?



환불 원정대 프로젝트가 하고 싶은 말이 딱 이거다. 그래서 4명이 함께한 사진과 유재석의 부캐 공개가 따로 이뤄진 것이다.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는 대중의 관심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면 강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호기심을 유발하고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가장 좋은 아이템은 바로 연예인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해두고 '궁금하면 와서 보세요'라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대표상품을 가리는 일을 어떻게 할까.


제작자뿐 아니라 연예인들도 자신이 상품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TV에 얼굴을 보이고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을 위해 촬영 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는다. 제작진이 촬영 준비를 위해 움직이는 시간과 동일하다.


얼굴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라니.

대표상품을 가리고 세일즈를 하란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특정 미션이나 컨셉이 있는 게 아니고는(그렇다고 해도 최대한 짧은 시간만) 얼굴을 가린 채 TV에 나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쓰는 모습이 나온다고 해도 그로 인해 들어가는 헤어, 메이크업 수정 시간을 생각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촬영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튜디오, 장비 대여비를 비롯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제작진이 더 조심하자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TV 밖 촬영장에는 얽힌 문제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많다.






그리고 여러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돼 모두가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또 하나의 문제가 남는다.



과연 시청자들이 연예인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고 싶어 할까?



사람들이 TV 프로그램을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잊고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


요즘처럼 특히 야외활동이 제한되고 직업,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는 더더욱이 현실의 팍팍함을 잊고 웃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TV 화면 속 세상은 어느 정도 평화로운 시대를 반영한다. 심지어 코로나에 관련된 방송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면서 얻는 정보와 재미에 집중하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도 불편함과 불안감에 시달렸는데, TV에서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만 등장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청자들이 참을성 있게 봐줄까 싶다.


불가능은 없으니 시도는 할 수 있다 쳐도 '얼마나' 유지할 것이냐 이야기되면 그건 또 다른 문제다.

대중들은 마스크를 쓴 연예인의 얼굴을 얼마나 봐줄까?

언제까지 마스크를 쓰고, 어디서는 마스크를 벗어도 되고, 이런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나?

마스크를 쓴 연예인이 보여주는 재미는 몇 프로나 전달될까?


그리고 제작진에게도 새로운 숙제가 생긴다.


일단 마스크를 쓰면 음성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는데 마스크 안에서 소리가 웅웅 울리기 때문에 깨끗한 음질을 수음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깨끗한 화질, 음성의 중요성은 평소에는 느끼기 힘들지만 이게 한 번 깨졌을 때 오는 피로감은 생각보다 크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어도 기본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금방 외면받는다.


재미 면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한국형 예능의 특징은 세세한 감정을 캐치해 전달하는 데 있다. 출연자의 말 하나, 눈빛 하나, 표정 하나로 재미를 잡아내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개개인마다 카메라가 붙는다.


지난주 [런닝맨]에서는 가로, 세로 4m 이상의 거대한 세트에서 게임이 진행됐다. 다이빙대를 지나 최대한 멀리 스티커를 붙이고 오면 되는 간단한 게임이니 큰 그림만으로도 편집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방송에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찍은 멤버들의 얼굴이 교차 편집됐다. 표정, 눈빛, 헬멧 위에 달린 고프로를 이용해 게임하는 사람의 시점까지 보여주며 고지대에서 게임하는 두려움을 재미로 승화시켰다.


큰 세트만 봐서는 높이도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마음도 잘 공감되지 않는다. 다이빙대에 오르기 전 갈등하는 이광수의 눈빛과 표정이 보이고 시점 카메라로 보는 흔들리는 다이빙대와 높이, 다른 멤버들의 웃는 얼굴이 보여야 '무섭겠다'라는 공감대가 생기며 웃을 수 있게 된다.


작은 세트로 바꿔도 이야기는 똑같다.

[환불 원정대]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한 이효리와 유재석이 첫 만나는 장면에서 서로를 처음 보는 듯 스캔하는 장면이 나왔다. 짧은 타이밍이지만 웃음을 참는 표정과 어떻게 콘셉트를 이어갈 것인지 스캔하는 눈빛이 얼마나 재미를 주었는지는 지표가 말해준다.

지난주 [환불 원정대] 첫 방송은 프로그램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유두래곤과 린다지에서 지미유와 아무개로 변신한 두 사람의 얼굴에 마스크가 씌워져 있었다면?

그럼에도 프로 방송인인 그들은 재미를 만들어 냈겠지만, 한계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여러모로 시대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단 생각은 드는데

결론은 뾰족한 수 없이 똑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 같아서 여러모로 착잡하다.


가장 좋은 건 습기도, 소리 수음도, 얼굴을 보는 것에도 문제없는 투명 마스크가 개발되는 것인데 꽤나 먼 과학의 영역의 이야기니 제외하고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의견을 생각해보자면 지금의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게 그나마 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야외,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프로그램은 포맷을 바꿔 최소한의 인원을 만나는 것으로 변경하고 출입 명단 관리, 손소독제, 마스크 등의 사용, 출연자들도 방송에 영향을 주지 않는 최후의 선까지 마스크를 쓰다 촬영에 임하는 방식 등으로 서로 할 수 있는 보호수단을 최대한 늘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메시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획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미 뉴스에서 개인위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으니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는 아이템화 콘텐츠화시켜서 '요즘 이게 유행인데 몰랐어?'란 방향으로 전개해보면 어린 학생들에게는 더 잘 어필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공항 사진에 찍힌 아이돌들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에서 아이돌 마스크가 유행한 것처럼 말이다.


TV 속 세상은 코로나가 없는 느낌이 든다는 말에 동의한다. 너무 크고 중대한 문제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으니 밖에선 조심하고 안에선 이야기하지 않는 게 현명하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있는 시점이라면 이야기를 바꿔봐야 할 것 같다.


온택트, 라이브 방송 같은 시도들이 이런 시대의 흐름에 정면 대응한 것이듯

파급력이 큰 방송일수록 이에 대해 고민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누구 한 명이 잘한다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모두가 손발, 마음까지 합쳐야 하는 단체 줄넘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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