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이냐 자기 복제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튜브 알고리즘 세계는 오묘하다.
어플을 켜면 등장하는 메인화면에는 다양한 주제의 영상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내 관심사와 연결된 영상부터 알고리즘에 기반해 '관심 가지 않니?' 하며 추천해주는 영상까지 다양하다.
더 희한한 점은 어떨 땐 볼게 너무 많아서 피드를 타고 넘어가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는데 어떨 땐 아무리 재로딩을 해도 볼 게 없다.
얼마 전 유튜브 메인 화면을 무한 재로딩하며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방황하던 중 한 영상을 발견했다.
광희가 회사 대표를 만나 시청자들을 위해 딜을 하다는 것이 주요 포맷인 [네고왕]
요즘 가장 핫하다는 영상을 그간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①몇 년간 급 증가한 연예인들의 유튜브 콘텐츠에 질림
②소위 말하는 [워크맨] st 영상들은 더더욱 질림
그 어느 분야보다 유행에 민감한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하나가 떴다고 자기 개성을 버리고 우르르 유행을 좇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유행을 언급하며 적당히 내 스타일화 시키는 정도면 몰라도 원래 콘텐츠가 가진 개성까지 묵살하고 유행을 따르는 행태는 너무 몰개성적이고 지루하다. 물론 콘텐츠 제작자들이 고민을 안 한다기보다는 돈을 주는 쪽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을 강요할 테니 자본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거겠지만은.
사실 [네고왕]에 대해 잘 모를 때는 흔하디 흔한 [워크맨] 스타일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썸네일부터 어디서 만난 적 있는, 이미 예전에 본 것 같은 이 영상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요즘 인기 있다는데 뭔지 보기나 해보자'하고 영상을 틀었다.
1인 체제인 [주인공이] 심지어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을 듯 말 듯] 캐릭터의 출연자가, 어떤 [미션을 받고], 그곳으로 찾아가는 길에 만난 시민들과 [직설 토크]를 하고 회사 [내부에 침투해 헤집어 놓고] 내부를 살펴보며 자연스럽게 그 회사를 [홍보]하는 콘셉트
여기에 심지어 빠른 편집 속도, 구성, 자막(워크맨이 만들어낸 명조체 혁명)까지 존똑인 이 영상은 유쾌 그 자체였다. 유행이라고 그냥 따라 했기에는 연출자 본연의 스타일이 너무 느껴져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워크맨]을 만든 고동완 피디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역시 원작자가 다르긴 하구나'
떡볶이에 온갖 조미료를 쏟아부어도 중학생 때 친구들과 먹던 그 맛은 못 내고
god 노래를 그렇게 많이 듣고 노래방에서 따라 불렀어도 데니 오빠의 서정적인 랩의 맛은 절대 안 난다.
원작자만 가질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확실히 있다.
요즘 자막을 쓰다 보면 가장 많이 애용하는 것이 명조체 말 자막인데 아무리 해도 유튜브에서 보던 그 맛은 안 나서 '예능 작가는 재미없고 교양 작가는 교양이 없다'는 작가 친구들의 농담이 머릿속을 맴돌곤 하는데 내가 원작자가 아니기 때문인가 하는 쓸 데 없는 생각까지 갔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콘텐츠 제작자가 어떠한 스타일을 유행시키면 수많은 ST가 생겨나고 원작자 역시 자신의 강점을 살려 그 방향으로 발전하기 마련인데 어떨 땐 '그 사람의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떨 땐 '자기 복제'라고 이야기를 듣는다.
'스타일'과 '자기 복제'의 기준선은 무엇일까?
콘텐츠의 내용? 진행방식? 그도 아니면 그냥 '재미있다'와 '재미없다'의 차이?
누군가에게 자기 복제라는 말이 붙는다면, 일단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먹혔다는 뜻이다.
영화든 예능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뭐든지 간에 그 사람이 한 과거의 무언가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런 것은 그 사람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인식에 강하게 박힌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매우 어려운 이 전제조건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참신함, 대중의 관심
'자기 복제'라는 말을 듣고 있는 무언가의 첫 등장을 생각해보자.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가수는 장범준, 예능으로는 tvN 간판 나영석 표 예능이 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내놓는다면, 대중은 물론이고 평론가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것이다. 음원이라면 발매일을, 방송이라면 첫 방송 날짜를 기다리며 이들의 과거 업적과 기대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것이고 뚜껑을 엶과 동시에 기사가 쏟아질 것이다. 너도나도 마이크를 하나씩 붙잡고 목소리를 높이며 기대 이상일 땐 찬사를, 기대보다 낮을 때는 부정적인 평가와 자신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혹평을 낼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사라지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든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성공이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그렇다고 악플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어떤 결과물을 내놨을 때 관심받기란 생각보다 매우 매우 힘들다. 콘텐츠의 핵심은 대중의 관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간 내가 했던 방송들을 생각하면... 음... 눈물이 차오르니 이 야기는 접고.
이런 관심의 시작은 어디부터였을까?
대중에게 강렬한 각인을 준 첫 등장, 참신함에 있다.
지금은 익숙하고 흔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콘텐츠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매우 참신했고, 참신하지 못해도 새롭게 포장하는 능력이 있었고, 즐거움을 주었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버스커버스커가 슈스케에 나올 때 독특한 창법으로 호불호가 갈렸어도 '벚꽃엔딩'으로 매년 '벚꽃 연금'을 받고 있고 나영석이 kbs에서 tvN으로 옮긴 후 '1박 2일'만 못하다 혹평은 들었어도 기어코 성공시킨 '꽃보다 할배'는 해외에서 판권을 사서 제작하기까지 했다.
과거에 비슷한 아이템은 있었어도 자신의 스타일로 참신한 재미와 유행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기 복제'의 기본 조건이다. 내 스타일로 만들어낸 이 콘텐츠들이 성공하고 유행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내 아이템이 먹히니 당사자는 대중의 관심을 더 강화하게 되고, 유행의 흐름을 따라가는 후발주자들이 생긴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중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캐치해내는 능력도 빠른 편인지라 하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금세 곳곳에 비슷한 콘텐츠들이 생겨난다. 특히 방송 영상 콘텐츠가 그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순식간에 늘어난 유입량에 대중들은 금방 질려한다. 너도 나도 따라 하다 보면 후발주자는 물론이고 원작이 가지고 있던 재미마저 흔들리게 된다. 이럴 때 원작자는 영광과 동시에 피해를 받는다.
내 오리지널 콘텐츠가 대박 나서 유행했는데, 원래 내가 하던 것을 더 강화해서 들고 나왔더니 '너 그거 하던 거잖아. 너무 똑같은 게 많아서 질리는데 참신한 거 없니?'라고 나오면 얼마나 짜증 날까.
아무튼 자기 복제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위한 전제조건은 이러하다.
앞서 이야기한 [워크맨]과 [네고왕]의 사례만 봐도 먼저 고동완 피디가 장성규를 데리고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성공했고 큰 유행을 일으키고 난 후에 자신의 스타일을 강화시킨 [네고왕]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면 이해된다. 먹히는 콘텐츠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데 대박 나면 사골 나올 때까지 우려먹어야지. 매우 부럽다.
그렇다고 '자기 복제'라고 바라보기만 하는 시선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하나가 유행하면 모두가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원작자가 억울해만 하며 지금 먹히는 콘텐츠만 고집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도 끊임없이 노력이 필요하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살려며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많은 제작자들이 '자기 복제', '자기 스타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내 콘텐츠가 먹히는, 나의 강점을 캐치하고 흐름에 따라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야 계속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 야외 버라이어티를 만들다가 갑자기 휴먼다큐를 할 수도 없고 어떤 콘텐츠든 원작자의 쪼는 남기 마련이다. 그 '쪼'가 있어야 그걸 좋아하는 고객들이 계속 나를 찾아주는 거고.
그럼 '자기 복제'와 내 쪼를 이어가는 '연장선'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이건 누군가 정의할 수 없는 문제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냐의 차이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잘 나가고 있을 때는 알기 힘든 문제다. 쏟아지는 관심을 받으며 지금의 방식을 유지하기도 벅찬데 변화까지 어떻게 생각하겠어. 하지만 조금 주변이 정리되고 주의를 기울여보면 알 수 있다.
계속 콘텐츠를 생산하다 보면 매번 위로 치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곡선을 그리게 된다. 조금 더 잘 되는 때가 있고 생각보다 반응이 없을 때도 있고. 이때 이 변화의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한데, 상황에 따라 고민하고 변화를 꾀하며 움직이는 것과 같은 방식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보는 사람도 민감하게 캐치하지만 만드는 사람은 모를 수가 없다.
다만, 어찌해야 할지 몰라 곧 나아지겠지란 생각으로 본능적으로 외면할 뿐.
영원히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해도 언제나 사랑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소수의 천재에게, 아니 살아생전엔 빛을 못 봤지만 그 사람이 죽고 몇 백 년 뒤에 가치를 인정받는 문학작품, 미술품, 음악에나 적용되는 말 같다. 사실 그것도 후세가 그 작가의 가치를 알아볼 즈음에는 이미 콘텐츠가 다 나와있는 상태니 해석을 붙이는 거지 만드는 사람은 한 작품마다 머리를 쥐어짜고 아주 미칠 지경이었을 거다.
조금씩 바꿔보고 이것도 안 되면 다르게 옮겨보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궤도를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바뀌는 것이 없어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콘텐츠를 만드느냐 아니냐는 질적인 면에서도 큰 차이를 만든다. 늘 이야기하지만 소비자를 속여서 먹힐 거였으면 방송국에 24시간 불이 켜있고 콘텐츠 제작사들이 밥먹듯이 야근할 필요도 없다.
[네고왕]이 [워크맨]의 그림자 뒤에 있을지,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는 이어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워크맨]이 처음 나왔을 때도 [와썹맨]을 따라 한다는 지적이 많았고(심지어 같은 스튜디오에서 만드는데) 결국 두 채널이 각자의 스타일을 인정받았듯이, [네고왕]이 해결해나가야 할 가장 첫 번째 관문이 이 문제다. 두 번째는 내 스타일은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지, 연장선에 대한 고민과 콘텐츠만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구성 방향 생각할 때는 관심도 안 갖다가 회의 때 불쑥 들어와서 '뭐 새로운 거 없어?' '섹시한 걸 만들란 말이야'하고 떠드는 부장님이 된 느낌이라 매우 극혐이다. 나보다 탄탄대로인 사람을 왜 걱정하는가 싶으면서도 나 역시 다른 콘텐츠를 볼 때는 이런 시선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이렇게 다방면으로 분석하는 시선을 가져보려고 노력해야 내 콘텐츠가 먹혔을 때 '자기 복제'가 아닌 쪼를 가지고 '연장선'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