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워서 좋군, 아마도?
집 근처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
시내 외곽에 있는 넓은 단층짜리 카페인데 SNS나 포털에 분위기 좋은 카페라고 검색하다 보면 알고리즘에 꽤 뜨는 곳이다.
집 근처라곤 하지만 이곳에 온 횟수는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다. 차로 오면 10여분이면 올 수 있지만, 걷거나 대중교통으로 오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어서 얼마 전까진 혼자 오기 꽤 까다로운 곳에 속했다. 일 년 전만 해도 이 카페에 오고 싶어도 차가 있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있을 때나, 그것도 겨우 상대의 마음이 동하는지 확인한 후에야 오자고 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이 문제는 차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사실 이건 문제의 축에도 안 든다. 더 큰 문제는 운영 시간이었다.
월요일을 제외한 6일, 그나마도 늦은 오전에 열어 이른 저녁에 문을 닫기 때문에 은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평일은 일하느라 당연히 못 가고, 주말에도 '오랜만에 그 카페에 갈까?'하고 생각하다가도 문 닫는 시간을 계산하다 이내 포기하고 집 근처에 다른 카페에 가는 일이 대다수였다.
이렇게 요건을 하나 둘 빼다 보니 결국 갈 마음이 들었다가도 포기하는 날이 부지기수였고, 자연히 이 카페를 찾는 횟수도 적어졌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불만이 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카페 한 번 가기 까다롭다며 외면할 만도 한데, 희한하게 주기적으로 이곳이 생각나면 언제 갈 수 있을지 날짜를 가늠해보고, 한 번도 이 카페를 안 와본 친구에게는 '너랑 같이 가면 좋을 텐데 거기 진짜 좋아'라고 말하곤 했다.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 묻는 다면, 사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찾아오기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도 좋고, 큰 창이 있어서 좋고, 그 창에서 쏟아지는 햇빛도 좋고, 층고가 넓어서 소리가 웅웅 울리는 편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에 가면 생각보다 소음이 크지 않아서 좋다. 손님이 많아지고 소음이 조금 커져도 괜찮았다.
일이 있든, 없든. 카톡이 울리든, 울리지 않든 항상 마음이 바쁜 나에게는 제격인 공간이다.
일이 바쁘면 바빠서, 없으면 없어서 늘 마음이 시끄러운데, 커피 한잔 시켜놓고 통창 아래 생긴 그림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속 잡음이 조금 줄어든다.
물론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하지만, 최대한 잡념을 끊고 노래도 듣지 않고 주변 소음과 그림자에 집중하며 의식적으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최근 하던 일이 갑자기 멈췄다.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재개하는지도 모르겠는 이상한 상황에 갇힌 상태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수의 윗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논의 중인데,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이야기가 몇 번 반복되고 나니 매우 지친 상태다.
마음이 답답하니 누군가와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마땅한 상대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푸념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가 생각해도 답 없는 이 상황에 대해 말해봐야 서로 할 말이 없을 테니 점점 입을 다물게 된다.
하지만 태초에 속이 시끄러운 사람에게 문제 상황을 안고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건 최상급의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서 날짜를 보면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날짜에 뭘 하고 있어야 했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데란 생각부터 든다. 일부러 안 보던 드라마나 예능을 찾아보며 웃고, 운동을 하다가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무엇보다 계속 이야기 중이라며 정확하게 정리를 해주지 않고 기다려달란 말만 반복하니 신뢰감이 바닥을 쳐버렸다. 최소한의 예의로 일단 무슨 결론을 가져올지 기다려보자 하고 있지만, 다시 일이 재개된다고 해도 전만큼의 에너지와 신뢰를 가지고 일하진 못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드는데, 어떤 게 옳은 선택인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오랜만에 그 카페를 찾았다.
여전한 조용함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지켜보며 생각을 멈추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로 정신없었어야 할 이 시간에 가고 싶어도 못 오던 카페에 오다니.
평화롭고 좋군.
이란 말이 바로 따라붙진 않지만, 의식적으로 되뇌고 있다.
평화로워,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 이런 경험도 하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림자만 쳐다보다 퇴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