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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Dec 01. 2021

억지로 심박수를 올리는 건에 관하여

너무 빨리 뛰면 안 될 것 같지만 해보면 의외로 괜찮아요


심장이 빨리 뛰면 정말 불편하다.

드라마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로맨스가 시작되고,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는 화려한 액션이 이어지지만 대한민국의 지극히 평범한 내 삶에서는 영 성가신 일일 뿐이다. 심박수가 빨라진다고 특별한 일이 일어난 적도 없고, 의식하지 못하던 일을 갑자기 의식하기 시작하면 모든 스텝이 꼬이는 기분이 들어 불편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심장이 격하게 뛸 일이 잘 없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심박수에 대해 크게 신경 써본 적이 없다. 원래 잘 놀라는 편도 아니고, 이제는 새로운 경험보단 이미 경험해본 일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예전에는 10만큼 심장이 뛸 일도 7 정도로 줄어들었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모든 게 익숙한 공간에서 일정한 루틴으로 이어지는 것도 한 몫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심장이 빠르게 뛸 상황을 의식적으로 피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심장이 빠르게 뛸 상황을 외면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어릴 때는 공포영화가 무서워도 궁금하면 일단 봤는데, 요즘에는 공포 영화는커녕 OTT 콘텐츠 특유의 자극적이고 쫄리는 류의 작품은 궁금해도 잘 안 본다. 누군가가 같이 보자고 하는 경우에는 보긴 하는데 나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잘 없고, 스토리가 정말 궁금한 경우에는 인터넷의 스포 글이나 잔인한 장면이 삭제된 요약본을 보게 된다.


막상 보면 또 잘 보는데, 다음에 비슷한 선택지가 왔을 때는 또 의식적으로 피하는 걸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쫄리는 상황이 어지간히 싫은 감각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은 온라인에서 번져 오프라인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해보려 할 때 항상 제동을 거는 장치가 된다. 처음 낯선 곳에 갔을 때 느끼는 긴장감, 어색함, 불편함 등 생각만 해도 심박수가 뛰고 쥐어짜는 느낌이 드는 상황을 떠올리면 '하지 말자'라는 생각부터 퍼뜩 든다.


코로나 이전 몇 년간은 혼자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일 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불편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면역이 좀 됐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잠깐 노출되자마자 본능이 튀어나와 버린다.


원래 나는 심박수가 빠르게 뛰는 상황을 불편해했지. 나에게 심박수가 빨리 뛴다는 것은 설렘보단 불안, 공포, 하기 싫은, 외면하고 싶은 일의 전초가 많았어.


불편한 감정은 딱 질색이기 때문에 적당히 잘 외면하며 살아왔는데,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편해졌나?


이 대답에 바로 답할 수 없는 건 분명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박수가 빠르게 뛰는 게 싫으면 그렇지 않은 상황이면 좋아야 하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안 나온다는 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생각해보면 나는 원체 감정 기복이 심한 타입이다. 타고나길 고요한 성품인 친구가 있는데 심박수가 빠르게 널뛰는 상황을 만들지 않지만 그 상황이 원래 자신의 성향과 맞기 때문에 고요한 상황을 긍정적이고 안정적으로 느끼며 유지한다.


반면 원래 파도처럼 요동치는 타입인 나에게 고요한 상황은 서서히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의미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파도가 쳐야 하는데 그 폭이 좁아져있으니 1자로 쭉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서서히 내려가는 느낌.


타고 난 기복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심박수의 격렬한 파도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좋아하기라도 하던가 왜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싫다'라는 감정부터 드는 걸까?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두근 댄 후에 기분 좋았던 경험은 정녕 없었나 궁금해졌다. 그래서 또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봤다. 나에게 남는 건 시간뿐이니까.



예전 글에서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방송작가가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고, 얼떨결에 방송작가가 되자마자 생방송을 해야 했다. 한순간에 매일 저녁 밥상머리에 앉아 가족과 보던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되었고, 첫날은 너무 긴장하다 못해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펑펑 울었었다.


아마 그 눈물의 의미는 그간의 긴장, 걱정과 더불어 꿈을 이뤘다는 기쁨과 처음 느껴보는 생방송의 짜릿함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첫 방송을 무사히 끝낸 아름다운 추억만 떠올리고 다음 컷으로 넘길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인생은 지루한 모노드라마이므로 그 후에도 나는 벌벌 떨며 1년 반 넘게 생방송을 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를 데려다 급히 생방송을 할 정도의 환경이라면 막내가 이 세계에 적응할 수 있게 친절하게 알려주며 차근차근 업무를 배워나가는 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나는 일을 하면서도 매주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 같은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어리숙한 막내를 안타까워했지만 물리적으로 자신의 일도 바빴던 선배들은 벼랑에 새끼를 떨어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어미 사자처럼 나를 매주 심박수의 구렁텅이로 밀고 다시 끌어올려주고를 반복했다.


아무리 일을 하며 방송 시스템에 익숙해진다 해도 생방송에 적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는데, 방송 하루 전날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해서 생방송 직전에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상황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때 심장뿐 아니라 사람의 몸 여기저기 맥박이 있어서 다 같이 힘을 합쳐 온 몸을 울리만큼 쿵쿵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쯤 되면 심박수가 격하게 뛰면 어느 부위에서 가장 격렬하게 느껴지는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심박수가 절정일 때는 손 끝, 발 끝에서 심박수를 느꼈다. 스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하나에 온 몸의 피가 다 몰려서 쾅쾅 대다가 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따기라도 한 것처럼 피가 싸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몸안에서 심박수에 따라 피가 밀물 썰물처럼 이동하는 그런 느낌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게 맞는지 모를 격한 신체 반응에 그야말로 토할 지경이었다.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을 매주 느껴야 했는데, 이런 상황을 6개월 정도 겪고 나서야 아주 조금 익숙해져서 겉으로는 덤덤해 보이는 척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물론 힘든 만큼 짜릿함과 즐거움도 크다. 참 희한하게도 방송이 끝나고 온에어 불빛이 꺼지고 나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할 일을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함과 오늘도 잘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생방송을 경험해본 작가끼리는 생방송만의 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해하기 쉬운 예로 들자면 번지점프나 엄청 무서운 놀이기구가 끝나고 난 후에 느끼는 홀가분함, 즐거움, '또 할 수 있겠는데?' 하는 약간의 오만함이 더해진 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이때의 경험으로 심박수가 격하게 뛰는 상황을 견디고 나면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단 걸 인식했다. 하지만 고통받은 시간에 비해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워낙 찰나라 긍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기는 쉽지 않았고, 생방송을 그만둔 후로 비슷한 경험이 일상에는 잘 없다 보니 긍정적인 인식은 아주 빠르게 휘발되어 버렸다.


좋았던 기억을 되새기는 것보다 망각하는 게 더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케케묵은 경험을 꺼내놓고 나니,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졌다. 다시 과거의 추억으로 둘까? 지난 10년간 적당히 외면하며 살아왔고 나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만 제외하고 적당히 긴장되는 상황을 피하며 살면 될 것 같은데.


이대로 나쁘지 않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나쁘지 않은 걸까?


지금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불편한 감정을 남겨두는 건 불편하다. 특정 감정에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 두고 마냥 외면해서 마음이 편하면 몰라도 결국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온 게 아닌가?


그래서 강력한 심박수에 다른 이미지를 남겨보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웬 크로스핏인가 싶겠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터 관심 있었지만 워낙 강도 높은 운동이라 차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그런 만큼 잃어버린(?) 심박수를 올리는 최고의 적임자란 생각이 들었다. 워낙 인싸 운동이란 이미지가 있어서 과연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을(새로운 환경 적응 + 격한 운동 + 인싸 무리) 총집합해놓은 곳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뭔가 될 것 같았다.


'나름 2년간 헬스도 했고 그 전에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 봤으니까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무료 체험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날은 아무것도 못하고 집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하루를 버렸다. 심장이 뛰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았고 땀이 눈앞을 가리는 경험은 지금까지 했던 운동과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도 되는 걸까 싶은 강도에 놀랐고, 심박수를 찾겠다고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심장을 내어주고 오는 참사를 겪을 뻔했다.


"본인 체력에 맞게 난이도는 낮춰도 되지만 와드는 다 하셔야 해요"


첫 수업 날 지쳐 나가떨어지기 직전인 나를 붙잡아 일으키며 트레이너가 한 말이었다. 크로스핏은 그날 해야 해는 운동 루틴이 정해져 있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운동을 완수하는 것이 목표인 운동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쉽게 포기하게 두지 않았다. 죽을 것 같단 내 말에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고 답하며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트레이너를 보며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감마저 들었다.


첫날 운동을 끝내고, 도망갈 힘도 없어서 센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발 끝까지는 아니지만 머리를 쾅쾅 울리는 심박수를 느끼며 '내가 왜 그랬을까.'만 되풀이했던 것 같다. 온몸에 진동이 오는 것을 느끼며 살살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풀어주다 보니 서서히 심박수가 줄어들고 시야가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좀 극단적이지만 평소에는 도달하지 못할 극한까지 찍고 내려오는 경험은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버 조금 보태서 방송을 마치고 나서 손발 끝으로 피가 싹 빠져나가고 쾌감이 돌던 그때의 느낌이라 후들후들 떨면서 정식 등록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벌써 한 달 넘게 운동을 다니며, 죽기 살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예전에 글로 쓴 적 있는 한 달에 100km 달리기 챌린지도 아직 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이 끝나고 난 후에는 집 근처 공원을 걷고 뛰며 30분 이상 유산소를 하려고 노력한다.

여담이지만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먹기 때문에 살이 빠지진 않고 몸은 더 커지고 있다.


아무튼 심장이 뛰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주기적으로 심박수를 올리는 시간을 갖다 보니 예상대로 불편하다는 감정 외에 새로운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선 기분이 우울하거나 다운되는 시간이 줄었다. 앞서 말했듯이 원래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라 심박수가 일정한 상황이 유지되다 보면 평온한 것이 아니라 완만한 곡선으로 하락하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의식 못할 정도로 아주 천천히 감정 하락을 못다보면 자연스럽게 우울해지고 기분이 다운되곤 했다.


딱 그 타이밍에 운동을 하면 심박수가 미친 듯이 널뛰느라 감정 하락의 맥을 끊게 된다. 떨어지던 마음이 다시 최고점을 찍고 나면 운동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높은 곳을 유지하게 된다. 한 번 끊긴(?) 우울감은 잘 유지되지 않아서 다시 원래의 우울함을 이어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운동을 그만큼 하고 오면 커피를 들이부어도 잠이 잘 오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 침체된 기분을 느낄 시간이 매우 줄어든다. 우울함도 느끼려면 시간이 많아야 한다.


그리고 심박수가 격하게 뛰는 상황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고, 그다음에 오는 감정이 부정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운동 갈 시간이 다가오면 숨이 턱 막히고 괜히 배가 아프고 가기 싫어진다. 센터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지만 스스로 심박수를 올려보겠다고 다짐한 만큼 억지로 나를 끌고 가는 걸 반복하다 보니 심박수가 격하게 뛰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몸이 깨닫는 중인 것 같다.


예전에는 최선을 다해 외면했다면, 지금은 그렇다고 딱히 엄청 긍정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고 나면 나쁘지 않으니까. 좀 더 해보자'하고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무작정 싫어하고 불편해하던 때를 생각하면 심박수가 널뛰는 와중에도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생겼다는 게 매우 놀라울 따름이다.


매일 격하게 운동을 하고 멍하니 앉아 심박수가 뛰는 걸 느끼고 있으면, 심박수가 격하게 뛰면 죽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절정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구 나하는 확신이 쌓인다. 물론 30년을 넘게 외면하며 살았다 보니 센터 문을 나서면 까먹을 만큼 약한 인식이긴 한데, 똑같은 상황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심박수가 격하게 뛰는 다른 상황이 생겨도 '괜찮아 안 죽어'를 되뇌게 된다.


크로스핏으로 만들어내는 강도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떨까?

나는 다시 원래대로 심박수가 격하게 뛰는 상황을 피하고, 익숙한 심박수 강도를 찾으려 할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억지로 심박수를 끌어올리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는데 집중해도 될 것 같다. 극한의 상황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겠지.


세상은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들, 경험해야 할 것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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