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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Jan 05. 2022

단골 미용실이 없어졌다

10년 넘게 표류했던 방송생활에 쉼표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 이야기 들었어? 원장님 그만두신대」


동생이 툭 던진 한 마디에 단톡방이 초토화됐다. 그 방은 나와 동생을 비롯해 친한 사람 몇 명이 모인 단체방인데, 오랜 시간 함께한 데다 생활 반경도 비슷해서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곳이다. 동생이 말한 '원장님'은 단골 미용실의 원장님을 뜻하고, 그 방의 모든 사람들이 몇 년째 찾고 있는 단골 가게이기도 했다.


「왜? 갑자기? 나 이제 어디 가라고?」

「아니 거기 장사 잘 되잖아 무슨 일이야」


인원수가 적은 방이지만 메시지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메시지를 받은 나 역시 충격받은 얼굴로 이게 무슨 일이야만 반복했다.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착한 미용실인데 이렇게 떠나가신다니, 방송계에서 일하면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자주 겪었지만 방송 외적인 상황에서도 이렇게 급격하게 이별을 겪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한 미용실은 1인 체제의 자그마한 가게로, 인상이 매우 좋고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남자 원장님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어떤 꼴을 하고 와도 혼내거나 클리닉을 강요하는 법이 없었고, 절대 안 어울릴게 분명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상담 후에 최대한 그 사람에게 맞게 해주는 곳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머리로 장난을 많이 치는데 어딜 가나 다 잘라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한숨이 꼬리표처럼 붙곤 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매우 섬세한 성격이라 커트만 해도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는데, 결과물이 항상 좋아서 원장님의 의견을 100% 신뢰하고 따르게 된다. 시술 시간이 길고 작은 공간이라 손님을 많이 받을 수 없어 예약제로 운영됐지만 우리를 비롯해 수많은 단골들이 찾는 곳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에도 큰 타격 없다고 했었다. 대략 일 년 전쯤에는 예약이 많아지면서 미용사 한 분이 더 들어왔으니 누가 봐도 장사가 잘 되는 곳은 맞았다.


요즘 같은 시기에 안정적인 돈벌이가 가능한 곳이 있는데, 그곳을 떠난다? 혹시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동생이 머리를 하며 물어본 결과 다행히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가족사업이 너무 잘 돼서 이쪽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신다는 거였다.


지금보다 더 잘돼서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축하하는 마음과 동시에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단골 미용실이 사라져서 걱정스러운 건가 싶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소식을 들은 주변 친구들은 부랴부랴 예약을 했고, 나는 몇 달 전에 이미 머리를 해서 더 이상 뭘 할 수 없는 상태라 우스갯소리로 마지막으로 가시기 전에 삭발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그래도 오랜 시간이어온 인연인데 이렇게 헤어지는 게 맞나, 일하시는 곳이라도 찾아가 볼까 고민하던 차에 원장님께 문자가 왔다. 그리고 그 문자에 축하드린다는 장문의 답장을 보내는 것으로 오랜 인연을 마무리했다.


원장님이 마지막 근무를 하는 날 저녁, 그분에게 받은 문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분이 보낸 문자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20년간 해왔던 미용업을 접고,

10년 넘게 단골이었던 손님들께 감사하며,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달라]


처음에는 마냥 아쉬웠는데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문장이 조금씩 달리 보였고 생각이 많아졌다.

오랜 시간 나의 업이라고 생각했고, 성과를 이뤄놓은 직업을 떠나 새로운 문을 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두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요즘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인지 원장님의 소식이 더 와닿았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얼마 전 12년 차 작가가 됐다. 2011년 3월에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이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일이지만 다소 얼떨결에 준비 없이 일을 시작했고, 악으로 버텼다. 무모하게 뛰어들어 나름 잘 적응했다 여겼지만, 준비 없이 뛰어들면서 생긴 묘한 어긋남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고 연차가 두 자리가 되면서부터는 근간이 흔들리는 느낌을 많이 받고 있었다.


한 업계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던데, 방송을 10년 넘게 하면서 웬만한 방송제작 공식에는 익숙해졌지만 전문가가 됐다는 느낌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자리를 잘 잡은 작가들이 있는 걸 보면 10년 넘도록 헤매고 있는 내가 부족한 거 아닐까? 벌써 몇 달째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데? 얼마 안 되는 모아둔 돈도 까먹고 있는 판국인데 이제라도 빨리 제2의 직업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지난 몇 달간 불안과 싸워오다 보니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지고 안 보이던 흰머리가 생겼었다. 여기에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원장님의 소식까지 더해지니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지난 몇 달간 몇 개의 프로그램에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 기회가 온 건 단 한 번 뿐이었다. 나머지는 내 이력서를 열어보고 연락도 하지 않았고, 몇 번 일자리가 들어오긴 했지만 조건이 안 맞아서 거절하거나 일을 하겠다고 한 후에도 제작이 중단돼서 '다시 연락 줄게'라는 말 이후로 감감무소식인 곳도 있었다. 한 마디로 더럽게 안 풀렸던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서, 새해를 맞이해서 이력서 내용도 수정할 겸 이력서를 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가 했던 일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력서는 지난 11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생방송, 교양, 시사, 뉴스를 거쳐 요리 토크쇼, 서바이벌, 해외 예능, 관찰 예능, 최근에는 스포츠까지.

어떻게든 더 나은 필모를 만들어보겠다고 노력했던 나의 역사들 말이다.


일이 간절하면 고르지 말고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난 몇 달간 몇 건의 일을 거절하며 매일 작가 단톡방을 살피고, 채용공고를 찾아본 데는 나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내가 항상 일자리를 구할 때마다 가졌던 단 하나의 철칙


[전에 해보지 않은 분야의 일을 하자]


이 철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언제 이 일을 그만둘지 모르겠지만, 그전까지 최대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일자리를 선택할 때 최우선으로 뒀던 가치는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창의력이 부족한 편이라 최대한 다양하게 많은 경험을 해둬야 어느 정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올랐을 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1인분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보통 교양이든 예능이든 한 분야를 시작하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잘 아는 일에 경험을 쌓으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루트가 많았고,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높은 연차를 구할수록 [지금 기획한 프로그램과 비슷한 방송 경력이 있는가]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이력서는 긍정적으로 보면 [다양한 경험]을 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진득하게 한 분야를 판 시간]이 없다는 게 된다. 물론 지금도 내 선택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를 몰랐던 것도 아니고, 다양함이 나의 무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경력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업계다 보니 연차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기회]의 문이 점점 줄어든다. 나에게도 적응될 문제라고 생각했고, 최대한 이 문이 닫히는 시간을 늦춰보고 싶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교양이나 예능이나 일해보니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적응하는 건 개인의 역량에 달렸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첫 시작이 앞으로의 10년을 결정짓는다는 건, 글쎄?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누군가에겐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력일지라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던 증거라 아쉽지는 않다. 그저 이제 [새로운 기회]보단 [나에게 오는 일]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데 조금 놀랐을 뿐.


지난해 가을, 가장 최근에 했던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에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마지노선이 딱 작년까지였다. 본능적으로 이제 해가 바뀌면 이제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보단, 가지고 있는 일에 깊이를 더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바꿔야 한다는 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는 백수로 새해를 맞이했다.


어쩌면 원장님의 소식이 연말에 들려온 건 운명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당장 새로운 도전을 하진 못하겠지만, 이제 시야를 조금 바꿀 때가 됐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으니 말이다. 지난 10년간 새로운 장르를 찾아다니며 이만큼 왔지만, 앞으로의 10년도 똑같은 것만 고집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생각으로 나를 이만큼 끌고 왔으면, 이제는 각도를 조금 틀어 생각의 확장을 필요가 있다. 원장님께 여쭤보진 못했지만 아마 그분도 이러한 사고의 전환을 거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는 아직 미성숙한 어른이기 때문에 지난 10년간의 생각과 차분히, 이별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다 보면 마지막 즈음엔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생방송, 교양, 시사 뉴스, 스튜디오 토크, 해외 촬영, 관찰 예능, 스포츠 예능까지

이것저것 해본 잡가의 방송국 표류기의 시작이다.



제가 방송일을 시작하고 최근 몇 달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힘들 때마다 '아직 어리니까'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아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캐리어를 들고 어디론가 떠났었거든요.


진지하게 내가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돌이켜보니 그 현실이 정말 적나라하고 아파서 여전히 힘들지만 제가 지난 10여 년간 거쳐온 일들을 잘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잘 정리해야 다음이 온다고.


미래의 내가 뭘 하고 있을지 도저히 감이 안 오지만 미래를 위한 도약으로 생각하고 잘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궁금하시면 많이 놀러 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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