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눈을 떴는데 나의 부모님이 유명인사라면? 태어났는데 부모가 없다면? 태어나고 커보니 내가 이민자의 자녀라면?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출생이야말로 랜덤이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슬로건이 가장 명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예이다. '인간실격'의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는 그 시대의 그 누구보다 '실존'했고 인간 그 자체의 면모를 보여준 작가가 아닐까 싶다.
모든 문학책이 그렇겠지만 이 책은 특히나 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짙은 책들이다. 그래서 독서를 하기 전후로, 작가의 생애를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실격. 제목이 그야말로 일본문학답긴 하다. 하지만 왜 실격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사용했을까? '실격'이란 말 그대로 자격을 잃는다는 뜻이다. 작품을 한 번 읽는 것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이 글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생애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것을 눈여겨 봐야 할 것 같다. 실제로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부유했던 자신의 출생 배경을 싫어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당시 유명했던 사조에 따라 본인의 삶에 더욱 허무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인간실격은 여리고 부끄럼 많은 화자의 전기를 시간의 흐름대로 써냈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즉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와 같은 원초적인 물음 아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 시기의 소설들은 국경을 불문하고 공통점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을 겪어가는 화자들의 삶에 대한 자세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다는 것이다. 몸도 약하고, 화자를 둘러싼 여성들이 왜 자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소위 요즘 말하는 끼를 흘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상대방에게 본인이 하고자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작품 안에서나 실제로나 솔직한 사람들은 미움을 받거나, 삶이 힘들어지곤 한다.
사실 이 작품을 효용론적 관점에서 독자에게 긍정적인 교훈을 준다고는 볼 수 없다. 단지 작품과 작가의 우울한 감정을 전달할 뿐이다. 그래서 표현론적 관점에 따라 기술을 해 보았다. 표현론적 관점이란 문학작품을 작가 자신과 연관지어서 보는 것이다. 인간실격이야말로 표현론적 관점에서는 작가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시대적인 경향으로 보았을 때도 가치를 가진다. 지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며 역설적으로 본인의 존재가치를 확립해나가고자 하는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의 독창성을 그리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주인공인 요조는 반기독교 정서를 가진 인물이다. 이것은 이 인물의 개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기독교관과 그 당시의 일본 정서에 대해 반대되는 입장이다. 이러한 파괴적이고 신선한 시도는 다자이 오사무의 개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요인과 더불어 작가의 서늘하고도 자조적인 문체는 표현론적 관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본인이 시도한 자살 행위뿐만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 나오는 자살 시도 행위, 약물과 같은 요소들은 나약한 인간을 보여줌과 동시에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 신에 대한 인간의 물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관철해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전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퇴행의 과정을 보여준다. 위협이 되는 존재에게 그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에너지 분출 대상이 요조 본인이다.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전위의 형식을 띠지만, 오히려 본인의 존재 즉, 출생 이전으로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퇴행의 성격도 띤다.
어쨌거나 결국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겸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