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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지 Jan 30. 2024

06. 낙하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것에는 방향이 없어요.”

“그나저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탐정은 밝은 톤으로 주제 전환을 시도했다.

“처음엔 당신의 꿈이 매우 단조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니네요. 이렇게 반짝거리고 따뜻한 곳인데, 왜 몰랐을까요?”


탐정의 물음에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 꿈속 세계에 대해 나는 탐정보다도 아는 게 없다. 내가 대답이 없자 탐정은 혼잣말을 이어갔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온통 남색빛뿐이었는데, 꼭꼭 숨겨져 있어서 그랬나?”

그리고는 슬쩍 내 반응을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왜 숨겨놨어요?”

“제가요?”

나도 여기에 처음 왔는데 어떻게 아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문득 나도 궁금해졌다. 걸을 때마다 한 발자국씩 눈길에 흔적이 남겨지는 것을 멍하니 보면서 왜 그럴까 생각에 빠졌다.


“제가 숨겨놓은 거라기보단, 몰랐던 것에 가깝지 않을까요? 제가 꿈속 세계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갇혔을 때에도 당신이 오기 전까지 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어요. 딱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몰랐던 거죠 뭐.”

“왜요? 왜 둘러보지 않았어요?”

“길을 잃었을 땐 일단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고, 또, 음..”

난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내려다가 말았다.

“그냥 뭐, 익숙한 게 좋은 거니까요. 새로운 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새로운 건 신나지 않아요?”

“새로운 건 무섭죠.”

“그러면 새로운 걸 익숙한 것으로 바꾸면 되잖아요.”

“그건-”

‘말이 쉽지.’라는 말이 목젖까지 나왔다가 어린애를 상대로 뭘 하는 건가 싶어서 작은 한숨만 내뱉고 말은 삼켰다. 


새로운 것이 기대되고 설렜던 때도 있었다. 새로움을 익숙함으로 바꿔나가는 시간이 즐거웠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것이란 불확실한 것일 뿐이고, 새로움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것은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이전의 나를 부정하고 다음의 나로 변화시켜야 하는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내가 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 속에서 나는 반딧불이와 반딧불이를 쫓는 내 발걸음에 집중했다. 걸을수록 길에 쌓인 눈이 점점 얇아지는 게 느껴졌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것에는 방향이 없어요.”

탐정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좋은 쪽이라든가, 나쁜 쪽이라든가 하는 거 말이에요. 변화는 그냥 변화일 뿐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어요.”


탐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새로 디딘 발아래로 얇아지던 눈길에 살짝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내 몸이 아래로 강하게 끌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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