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54

새로운 가구를 들이며

by yeji

작은 원룸에 내 키를 넘는 선반을 2개나 들였다. 이 집에서 3년 반을 지내는 동안 서랍 한켠에만 있던 책들이 이제는 선반을 채우고 옷장을 채우고 책상에도 쌓이고 있었다. 성향상 다른 건 빨리 정리하는데 책은 읽을 때의 감정과 기억이 묻어있는 탓에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후폭풍으로 책들이 방안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고민하다 11월 초 깔끔한 흰색 SUS 선반을 샀고, 거진 2달 만에 반가운 배송을 받았다.

배송을 받은 후 방안의 구조를 바꿨다. 일이 안 될 때면 방안의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새로운 레이아웃을 시도해 보는 걸 좋아한다. 이번엔 랙에 있던 자리에 작은 책 읽기용 책상을 하나 더 두었다. 다른 용도로 쓰이던 것을 본래의 용도로 다시 살린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모니터가 앞에 있어 일 생각이 자꾸 나던 참이다. 방은 더 비좁아졌지만 덕분에 가방 거치대로 쓰이던 의자 하나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가구를 들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 중에 다시 되새긴 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정리하는 방법을 또 까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리를 하려면 일단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꺼내놓는다. 거기서 내가 가져갈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류해야 한다. 그리고 가져갈 것만 남겨서 유지한다.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게 정리하는 방법이다. 이걸 불과 작년까지도 잘 알고 있었는데, 올해가 되니까 또 까먹은 기분이다.

스스로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정리를 할 때마다 매 순간순간의 나는 얼마나 주저하는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린다. 주저하고 언젠가 쓰겠지 하고 남겨둔 작은 것들이 모여서 모든 것을 어지럽게 한다. 불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정리할 때마다 그 무엇도 버리지 못하는 나를 보게 된다. 선반을 들이면서 정리를 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붙잡고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한다. 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연말까지 집 정리를 해야겠다. 조금 더 가벼워지고 싶다. 2025년의 묵은 것들을 2026년까지 데려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려면 모든 걸 꺼내놓고 내가 이걸 가져갈 것인지 아닌지를 고심해야 한다. 가져간다면 내가 그것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가져가려고 하는지도 떠올려본다. 책을 버리지 못하던 나를 떠올리면, 결국 지금의 주저함이 가져올 엉망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조금 더 결단력 있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