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자주 넘어지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같은 길을 가다가도 이상하게 혼자서 잘 넘어졌습니다. 작은 돌부리에도 크게 채여서 펄쩍 뛰거나 계단을 올라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엎어진 적도 많습니다. 어릴 적엔 넘어지면 피가 나고 상처가 생겼다는 아픔보다 부끄러움에 눈물이 맺히곤 했습니다. 무릎과 손엔 딱지와 멍이 끈질기게 남아있었고요.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어서도 자주 넘어졌습니다. 꼭 몸으로 넘어져야만 상처가 생기는 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걸려 넘어질 때면 꼭 푸르딩딩한 멍이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내가 너무 덜렁대서 넘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주의를 더 기울인다고 해서 덜 넘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되려 힘을 준 만큼 더 세게 넘어져버리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치고 가서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였고요.
이번 주엔 두 번이나 대자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미 한번 크게 넘어진 후에 겨우 일어나서 힘을 내려고 하는 순간, 또 걸려 넘어졌을 때 기분이란!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일단 벌떡 일어났습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한참을 떠들었는데도 하루가 끝날 때까지 도저히 기분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유튜브의 한 플레이리스트를 보는데 '넘어질 때마다 무언가 줍고 일어난다(https://youtu.be/J29H58CvxoM?si=B4CObg3rgWfJYeLv)'는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사이에 줍는다는 행동 하나만 들어갔을 뿐인데 뭔가 얻는 것이 있었다니 이번 주엔 그 말을 간절히도 믿고 싶었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부끄러웠고, 시간이 없고 갈 길이 급해서 얼른 일어나기 바빴던 날들이었어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후다닥 일어나 가던 길을 그대로 가는 것이 당연했으니까요. 마치 한번도 넘어진 적이 없는 사람처럼요.
하지만 넘어졌다는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옷에 묻은 흙과 먼지들, 날카롭게 긁힌 상처로요. 손을 씻을 때서야 손에 난 상처가 따갑고 아프기 시작하면 넘어졌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넘어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상처에 약은 안 바르고 그저 가리고 숨기기에 급급했어요. 넘어지면서 바닥에 쏟아버렸던 것들을 급하게 주워 담느라 어딘가 망가지거나 잃어버렸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간 내가 주워 담았던 것들이 뭘까 궁금해져 지금에서야 주머니를 뒤늦게 살펴봅니다. 소지품과 함께 딸려 들어온 돌멩이, 허겁지겁 흙과 먼지를 닦았던 휴지. 수치스러움에 위축되었던 마음과 때론 억울했고 분노했던 순간들도 한 웅큼 만져집니다. 제게도 좋은 것들을 주울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겠죠. 하지만 매번 상황을 모면하기 바빴던 것이 문제였을 겁니다. 정신만 제대로 차렸다면 그 먼지가 묻은 바닥에서도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주웠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넘어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테고 여지없이 당황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빨리 일어날 수 있냐가 아니라 어떻게 일어날 것인지 생각하느라 시간을 써보기로 합니다. '뭐 좀 줍느라고 일어나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 이거 참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저앉아서 일어날 힘이 없을 때 제 자신에게 댈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하던 차였습니다. 태연한 척하는 건 그만하고요.
넘어진다는 것이 꼭 당장 모면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았으면 합니다. 갈 길이 아직 멉니다. 줍는다고 해서 매번 대단할 걸 줍고 싶은 것도 아니고, 넘어졌을 때마다 매번 주저앉아 한없이 시간을 보낼 수도 없을 거예요. 문제를 보면 가만 두지 못하고 해결하는 데 온 신경을 쏟게 되는 마음 탓에 더 그럴 겁니다.
다만 저 문장을 빌려 스스로에게 시간을 더 벌어줄 순 있을 것 같아요. 넘어졌던 자리를 유심히 살피다 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잃어버렸던 뭔가를 되찾게 될 수도 있고요. 이제 제가 기억해야 할 것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쓰는 게 아니라 넘어져서 뭔가 줍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조금의 뻔뻔함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