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냐 묻는다면?

by yeji

제게는 무려 전권을 다 읽은 잡지가 있습니다. 바로 올해로 10년 차가 된 공간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의 1-6호 시리즈입니다. 그중에서도 6호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냐 묻는다면?'은 5호에 이어 6년 만에 출시된 최신호로, 올해 3월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공간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 6호 '서울을 떠난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냐 묻는다면?'

서울에서 경제 활동 평균 5년, 서울을 떠난 지 약 4년 내외, 오픈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과 인터뷰했다. 서울을 떠난 이유는 무엇인지, 돈은 얼마나 모아 놓고 떠났는지, 먹고살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는지, 집은 어떻게 구했는지, 기대와 가장 달랐던 점과 걱정보다 괜찮았던 점은 무엇인지, 정서적인 만족에 변화가 있는지, 서울이 참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는지, 같은 노력이면 서울에서 하는 편이 기회가 더 많지 않았을지 따져본다. 서울을 떠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나?


작년 조퇴계 편집장님을 뵈었을 때 한창 원고를 마무리하고 계셨는데 그 책이 올해 결실을 맺고 세상으로 나와 많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6호에 대한 관심이 꾸준한 덕분에, 저번 8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 무아레서점에서 조퇴계 편집장님이 이야기하시는 '공간은 일을 바꿀 수 있을까?' 북토크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 북토크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지가 있다'는 답변이었어요. 로컬에서의 수익이 과연 지속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여지라는 건 가능성이나 희망을 뜻합니다. 로컬에서 매출이 원하는 기대 수준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이 서울보다 클 수 있다는 의미였어요. 같은 매출이어도 고정비나 운영비에 대한 부담이 덜 하기 때문에 버티려고 한다면 더 오래 버틸 수도 있고, 버티지 않으려면 과감히 접고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서울이라면? 선택의 여지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 이후에도 북토크에서는 여지가 있다는 말이 종종 언급되었어요.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살고 싶은 동네와 집을 내 형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말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동네와 집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안에 둘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겐 썩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서울 안에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내가 가진 돈을 저울질해 보다가 원하지 않았던 곳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곳에서 시작하기도 하죠.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동네와 집이 나의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꿔놓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잠깐의 북토크에서도 곱씹을 것이 많았지만, 브로드컬리 6호가 제 눈에 보일 때마다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을 따라 읽다 보면 나는 지금 정말로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따져 묻게 되었어요. 일을 하기 위해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도 내년 6월이면 4년을 채웁니다. 그간 직장도 성수에서 안국을 거쳐 지금은 강남으로 바뀌었고, 자취를 시작하던 해 태어났던 조카 새봄이는 내년이면 벌써 유치원에 가야 할 정도로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는 집에 대해서 4년 동안 꾸준하게 만족스러웠던 것은 단 하나, 2호선 역과 수원으로 가는 1112번 버스 정류장이 교차되는 지점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취를 시작할 때 조카를 보러 매주 금요일이면 수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죠. 위치는 여전히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5평이 채 안 되는 작은 평수와 이 방의 고질적인 곰팡이 문제, 매년 치솟는 오피스텔 관리비 같은 것들은 처음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버티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위치마저도 메리트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서울 본가에 더 자주 올라오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한 마디로,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살기 위해 버티는 곳이 되었습니다.


올해 여러 사람과 일을 겪어내던 과정 속에 가장 크게 달라진 생각은 살고 싶은 곳에서 살자는 결심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모으고 나서 살아야지, 업을 바꾸고 나서 살아야지라는 결심이 제게 핑계를 주지 않도록요.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속초가 KTX가 들어오는 3년 뒤에 가서 살겠다고 대답하던 방어적인 대답 대신 준비가 덜 되었어도 일단 가서 살면서 부딪쳐보려고요, 저도 제가 뭘 할지 잘 모르겠어요. 살아봐야 알 것 같아요.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브로드컬리 6호의 오피스제주의 박성은, 박현주 대표님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탈서울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공유오피스를 열었다고 합니다. 두 대표님은 이주 과정은 낯설지 않았고, 직업적인 기회는 더 열려있다고 평가했어요. 이미 서울에 살 때에도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이주하며 살고 있었고, 그 이주과정은 오히려 제주도에 이주하는 과정이 낯설지 않도록 만들어주었다고 했죠. 서울이라고 해서 무제한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제주라고 해서 기회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기에 기회는 어디에도 있다고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과 두려움의 한 꺼풀이 벗겨진 느낌이었습니다.


서울이 아니어도 된다면, 서울이 아닐 수 있다면 제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습니다. 책에 나온 인터뷰이들이 그러하듯이, 연고가 있거나 자주 다니던 곳이면 살아갈 곳으로 고려하기에 충분했죠. 제게는 고성이었습니다. 매년 10회 이상을 방문하면서 나의 도망처이자 안식처로 여겼던 고성에서의 삶을 기대하게 했습니다. 이미 고성은 저의 삶을 많이 바꿨지만, 앞으로 더 많이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고성으로의 이주를 조금 더 빠르게 꿈꾸게 된 이유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업을 고성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지, 저는 어떤 형태로 일하게 될 수 있을지도요. 어떤 지역에 살며 누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누군가는 그 연차에 서울에서 열심히 일하면 연봉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미 고성을 알게 된 사람이라 그 이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대책이 없다고 비웃어도 괜찮을 거예요. 대신 저는 그것을 여지가 많다고 말하며, 앞으로 많은 가능성과 희망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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