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본격적으로 브랜드에 몸을 담기 시작한 것이 2019년이었으니, 어느새 브랜드 매니저로 일을 한 지도 7년 차가 되었습니다. 그저 하루를, 한 달을, 1년을 살아냈는데 뒤돌아보니 제게 이런 시간이 쌓여 있다는 것이 참으로 새삼스럽습니다.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그간 거쳐온 브랜드가 다섯 손가락에 꽉 채워지는데, 이 브랜드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아주 작은 규모의 스몰브랜드였다는 것이죠. 전부는 아니지만 3년 이내의 초기 브랜드가 대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다루는 품목은 꽤 다양했지만 물성이 있어서 손에 만져지는 제품만 선택했습니다. 무형의 콘텐츠나 서비스는 선택한 적이 없었네요.
그 모든 브랜드에서 제가 한 역할을 요약하면 동일했습니다. 브랜드 매니저. 하지만 사람들은 브랜드 매니저라고 하면 다 다른 모습을 떠올립니다. 아니, 잘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요. 그도 그럴 것이 브랜드마다 브랜드 매니저에게 주어지는 일이 천차만별 다르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브랜드 매니저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사용되는 직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제가 대체 뭘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혹은 브랜드 매니저란 직무에 대해 궁금하는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특징을 간추려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경력은 상관없습니다.
둘, 무엇이든 해내야 합니다. 안 해본 영역일지라도요.
셋, 브랜드와 내가 동시에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매니저는 진입 장벽이 높지 않습니다. 덕분에 완전히 관련 경력이 없었던 저도 브랜드 매니저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었어요. 물론 2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브랜드 매니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전히 신입 브랜드 매니저를 뽑는 경우가 여전히 눈에 띕니다. 왜일까요? 오히려 잘 몰라야만 몰라서 어찌어찌해낼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매니저로 본인의 일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악의 없는 충고를 받기도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다 할래?' '제너럴리스트 말고 스페셜리스트를 해야지.' 하지만 저는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엔 제너럴리스트만이 해낼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고요. 꼭 하나를 좁게 파고드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요.
브랜드 매니저는 상황에 따라 평생 해보지 않은 그 어떤 영역의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필코 해내야만 하는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잘 맞는 편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저를 소개할 때 브랜드 매니저를 쉽게 설명하고 싶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디자인 빼고 다 하는 잡부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디자인 영역의 일도 해내고 있군요... 해야 한다면 해내야만 합니다.) 제품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홍보하고, 판매하고, 고객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리브랜딩을 하거나, 협업을 하거나, 내부 팀을 세팅하고, 손익을 계산하거나, 각종 서류를 관리하고 세금을 처리하는 것마저도 저의 일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매니저라는 존재는 어찌 보면 작은 대표와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브랜드 매니저는 브랜드와 함께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브랜드 매니저가 성장하는 것이 먼저인지, 브랜드가 성장하는 것이 먼저인지 따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나 분명한 것은 둘은 함께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제품이나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성장합니다. 도전하는 만큼 얻게 되고, 실행하는 만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단 그 성장이 매번 매출로만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고, 다른 측면에서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팀과 함께 그 의미를 정의해 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숫자 이상으로 지금 중요한 무언가를 얻어내는 과정에 있다면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것도 브랜드 매니저의 일입니다.
저는 브랜드 매니저가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일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브랜드 매니저가 되고 싶었던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지금까지 뚜벅뚜벅 걸어올 수 있었던 걸까요? 오랜 시간 이렇다 할 이유를 찾지 못하다가, 작년 8월 갤럽강점검사에서 그 힌트를 찾았습니다. 좋은 코치님께 저의 강점인 최상화-책임-분석-정리(조정)-개별화를 해석받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때 저는 왜 어떤 조직에 들어가도 결국 비슷한 형태로 일을 하게 되는지 궁금해하던 차였어요. 생기는 문제 또한 비슷하다 보니, 브랜드 매니저에 적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차였고요.
하지만 제가 받은 대답은, 그것이 제 강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었어요. 책임감이 바탕이 된 실행력, 최상화와 책임이 붙어 있을 때 나타나는 워커홀릭 기질,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도 여러 이해관계자와 빠르게 조정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성, 제품을 사는 고객을 궁금해하고 어떻게든 분석해 보려는 집요함, 제가 있을 자리를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개별화까지 무엇 하나 쓰이지 않는 부분이 없었어요. 브랜드 매니저로서 일하는 것이 만족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든 강점이 직무에 최적화된 인간이었으니까요.
그 하나를 알게 되면서 브랜드 매니저로서 일하는 저의 모습에 대해서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나는 왜 이런 것까지 신경 쓸까?'에서 '내가 이것까지 보이는구나'로, '여러 프로젝트를 이렇게 한 번에 돌려도 괜찮은가?'에서 '이게 나에게 잘 맞는 방식이구나'로요. 반대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알고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문제에 가까웠으니까요. 항상 조바심이 나고 더 잘하고 싶은 나, 말입니다.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까지 책임지려고 하지 않게 되었고, 소통하는 모든 사람마다 신경 써서 맞춰주려고 했던 부분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 내가 스몰브랜드를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실마리도 찾았습니다. 개별화 강점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개성을 이해하고 그것에 흥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일반화된 특징보다는 개개인의 차이점을 중요시하고,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강점을 관찰해 최고의 강점을 이끌어낸다고 하죠. 그러기 위해서 배짱이 필요하거나 위험을 감수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브랜드라고 생각해 보면 제가 스몰브랜드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스몰브랜드의 고유함, 그들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하는 제게 스몰브랜드라는 세계를 만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를요.
고성에 가면 제가 꼭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도 스몰브랜드를 모으는 일이 있습니다. 스몰브랜드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모아서 그걸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들, 그래서 그 스몰브랜드가 더 오래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해보고 싶습니다. 여러 스몰브랜드가 모여있는 곳에 다른 좋은 스몰브랜드 또한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판이 커지다 보면 고성 자체가 지금보다 훨씬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스몰 브랜드의 사장님들이 매일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을 벌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브랜드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이 필요한데, 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떨까 상상하게 됩니다. 행복한 상상을요.
브랜드 매니저로 산다는 것은 꽤 피곤하고 퍽 힘든 일입니다. 많은 일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처리하면서도 중요한 일은 놓치지 않아야 하고, 가끔은 브랜드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작은 일들을 해야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동시에 작은 브랜드가 세상에 알려지게 하는 모든 일을 해볼 수 있고, 유연하게 대처하며 내 방식을 시도해 볼 수도 있어요. 브랜드를 사랑하는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고 성장하는 브랜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감격스러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매니저로 산다는 것은 제게 마치 삶을 살아내는 일처럼 쉽지는 않아도 뛰어들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