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과의 첫 만남

2023년 7월 5일부터 8일까지

by yeji


고성에 가던 첫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비가 오던 전날 밤과 달리 맑은 날씨여서 다행이다 생각했던 아침.

오랜만에 버스표를 종이로 발권해 아침 7시 버스에 올라타며 설렜던 마음.

속초보다 고성이 더 위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것도 모르던 때.


모든 것은 억울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어요.

여행을 떠나라고 등 떠미는 브랜드를 맡고 있으면서

왜 나는 이렇게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가.

여행의 즐거움을 모르는 이들이

어떻게 그 이야기를 고객들에게 자신 있게 할 수 있을까.

그래, 일을 해도 일단 여행을 가서 하자.

내가 못 가면 팀원들도 가지 못할 테니 나부터 가자.

그 마음이 들었을 때 팀 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정기 워케이션 지원 제도를 만들었고,

당시 서울기업 대상 워케이션 지원사업에서 맹그로브 고성을 발견해 예약해 두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3박 4일이 저를 바꿀 줄은 몰랐습니다.

그저 워케이션으로, 단순히 일의 공간이 바뀌는 단순한 차원으로만 생각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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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에 가기 전날 밤에 꽤 많은 비가 내렸다. 고성에 가는 날은 일찍 일어나 7시 5분 차를 탔다.


제가 주변 분들에게 종종 보여주는 사진이 하나 있습니다.

왜 맹그로브를, 고성을 그렇게 좋아하게 됐어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저는 말보다 이 사진을 보여드려요.


20230705_003234149_iOS.jpg 하늘, 바다와 바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2023년 7월 5일 교암리 바닷가


이 풍경을 봤을 때 첫눈에 반한 느낌이었어요.

너무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었거든요.

맹그로브의 워크라운지는 정문에서 내부가 바로 보이지 않는 구조인데요,

워크라운지에 딱 들어서서 이 통창을 마주하자마자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단 3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구나.

별 거 아닌데 그동안 왜 이렇게 사무실에 갇혀 있었을까?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

(실제로 저는 고성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다음 8월 일정을 바로 예약했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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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일을 하는 오전 내내 정말 어디서 일해도 행복했어요.

맹그로브 고성은 워크라운지는 물론 객실까지 모두 오션뷰를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노트북 화면만 바라보며 일하다가도 고개만 들면 바로 바다가 코 앞이었고,

테라스로만 뛰쳐나가도 바로 파도의 소리를 귀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맹그로브 고성에 머무르던 3박 4일 내내 저는 이 풍경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객실 테라스의 문을 열어두고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으며 일했고,

잠깐 쉴 때 책을 읽다가도 바닷가로 바로 나가서 찬물에 발을 담그고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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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라운지만큼이나 객실도 어쩌면 그리 좋던지요!

더블룸 객실엔 큰 소파와 사이드 테이블, 아르떼미떼 조명과 오피스 체어가 준비되어 있어요.

넓디넓은 책상과 바스락거리는 이불이 정리된 침대까지 혼자 머물기엔 더없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뜻밖에 정말 좋았던 건 책이 있었다는 점이었는데요,

제가 너무 읽고 싶어서 사려고 마음만 먹었던 책이 제 객실에 준비되어 있었어요.

김민철 작가님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

그날 밤을 새우며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첫날의 기억으로 맹그로브 고성에 가면 객실 내 책을 제일 먼저 살펴봅니다.

오늘은 어떤 책이 내 객실에 준비되어 있을까, 설레하면서요.

우연히 만난 그 책이 넓혀줄 세상을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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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 고성에 가면 처음에 소개하는 몇 가지가 있는데요,

4층 객실 위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루프탑에서 일출과 일몰을 경험해 보세요.

테이블과 의자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여럿이 모이기도 좋아요.

워크라운지 안쪽에는 명상을 위한 방도 있답니다.

교암리 바닷가를 액자처럼 볼 수 있는 곳인데, 일출시간에 들어가면 가장 좋아요.

혼자 앉아서 명상을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어요.

정면 유리창에 붙은 노자의 말은 언제 가도 마음에 꾸욱 새기게 됩니다.

그 밖에도 커피, 차, 식빵, 잼과 각종 조리도구까지 구비된 캔틴은 물론이고,

편안한 안마의자와 맹그로브에서 직접 제작한 워시 제품들로

하루의 고단함을 풀고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루틴도 추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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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에 처음 갔었을 때는 매니저님들께서 추천해 주시던 식당에 갔었는데요,

가장 먼저 먹었던 건 '고식당'의 해물철판볶음이었어요.

저는 일하다가 늦게 점심을 먹는 경우가 많고, 1인도 받아주셔서 부담 없이 갑니다.

따뜻한 두부와 양파를 소스에 적셔 먹는 애피타이저부터 내어주시고,

곧이어 미나리, 양파, 버섯과 해물을 매콤한 고식당만의 장으로 볶아서 내어주시는데요,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이후에도 여러 번 방문했답니다.

(이땐 몰랐었지만 이 집은 한치튀김과 생맥주를 꼭 먹어야 하는 집이에요!)


두 번째 식당은 칼제비 그리고 파전이 맛있는 '수제비집'입니다.

가끔은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지만, 또 회전율이 좋아 금방 자리가 나기도 해요.

수제비, 칼국수, 칼제비에 시원한 육수와 칼칼한 육수가 있어서 취향대로 먹기도 좋아요.

허기질 때 울퉁불퉁한 수제비와 무생채, 김치를 곁들여 먹다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예요.

인원이 많다면 파전을 드셔야 하는데, 크기에 한 번 바삭한 식감에 두 번 놀라게 됩니다.


세 번째 식당은 '교암막국수'집이에요.

사실 고성에서 가장 유명한 막국수 식당은 바로 '백촌막국수'입니다.

여름이면 웨이팅이 말도 못 하게 많기 때문에, 처음 갔을 때 도전하기 무서웠던 생각이 나요.

그래서 차라리 근처에 있는 다른 막국수 집으로 혼자 자전거를 타고 가봤는데요,

그곳이 바로 교암막국수입니다.

교암막국수와 백촌막국수의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수육의 조리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백촌은 편육이라는 이름을 쓰지만 사실상 수육이고요, 두께감이 있어 씹는 맛이 있어요.

교암의 수육은 백촌에 비해서 쫀득한 느낌이 나고 얇은 것이 특징이에요.

그리고 백촌의 막국수는 물과 비빔뿐이지만, 교암은 들깨 막국수 같은 버전도 있네요.

워낙 백촌막국수가 유명하다 보니 다들 백촌을 가보지만 저는 교암도 좋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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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갔을 땐 맹그로브에 있으면서도 일을 많이 하느라 밖에 거의 돌아다니질 못했습니다.

같은 동네에 있는 카페나 서점이나 와인샵도 한번 못 가고 대신

그저 오늘, 내일 해야 할 일들로 빼곡한 달력과 노트북 화면을 찍어두었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에 시간을 내어줬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밤에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요,

바다에 나가고 싶으면 바로 달려 나갔고요.

평소에는 기절하듯이 잠자고 일어나 출근하느라 보지 못했던 일출을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것들로 다시 관심을 돌릴 수 있었어요.

잊고 살던 감각들을 일깨우고 나에게 보다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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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그로브에서 3박 4일을 지내는 동안 뭔가 대단한 것을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때에 일어나고, 먹고, 읽고, 자는 것뿐이었는데

그때의 저는 그 자연스러움도 하나 지키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일을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서 일 외의 모든 걸 내려놓고 살던 때였기에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쌓이고 있었어요.

고성에서의 시간이 제게 준 것은 나를 돌아볼 용기였던 것 같아요.


나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닌지,

책임져도 되지 않을 것까지 무리하게 애쓰는 건 아닌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

그 질문에 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의 인생은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유한한 시간 안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맹그로브에서 만난 인연들이 저의 작은 마음과 세계를 크게 키워줬어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고성에 갑니다.


당장 다음 주에도 고성에 가는데,

이번에는 지금 제 주변에서 가장 일을 열심히 하는 어린 동료분과 함께 갑니다.

저 못지않게 많은 일을 하지만, 마치 2023년의 저처럼 쉬는 법을 모르는 분이셔서

제가 경험했던 고성을 이 분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 분에게도 고성이 남길 발자취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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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김민철 작가님의 책에서 이런 구절을 찍어두었더라고요.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옳게 만든다.

여전히 이 말에 공감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고성이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네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