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10

늦어도 쓴다. 쓰면 일단 해낸 것이다. 그래도 빨리 쓰면 좋겠지만

by yeji

폭탄 투하, 펑!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어제 하루. 서울로 돌아와서 브랜드 디자인 미팅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아직 브랜드도, 제품도, 사람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참여한 미팅이라서 간단히 현황만 확인하려고 했으니까. 참여한 디자이너님도 이미 알던 분이라서 정말 속 편하게 참석했다.

다 같이 제품 패키지를 살펴볼 때까진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런데 웹사이트 영역으로 넘어가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브랜드 업무를 하다 보면 디자이너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나를 거쳐 간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태도나 실력이 좋은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디자이너 분들을 항상 존경하는 마음이 있고 그들의 작업물에 섣불리 칼을 대는 걸 싫어한다. 어떤 마음으로 디자인을 하는지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번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적합한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의 영역까지 디자이너분들이 손을 대고 있었다. 영어를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해외에 있는 개발자와 통역을 하면서 사이트를 완전히 처음부터 구현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트가 운영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빈틈이 많이 보였다. 집을 지을 때 모듈러 주택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컨테이너에서 시작할 수도 있는데, 넓고 넓은 갯벌에 흙을 한 자루씩 던져서 바닥을 만드는 작업부터 하고 있었다. 상품, 배송, 결제까지도 모두 하나하나 만드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선 어떤 CS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회사의 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빈틈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결국은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끼얹은 찬물 때문에 결국 회의가 중단되었다.

진심으로 이런 상황을 안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멈춰 세워야 하는 상황은 뼈가 아프게 괴롭다. 이미 지출된 예산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눈빛과 지금까지 갯벌 바닥에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으쌰으쌰 함께 애써온 이들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내 역할이 되어야만 할 때, 괴롭지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때 내가 하는 생각은 그래도 빨리 투하하고 수습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자는 것이다. 이 생각에 다들 동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빨리 터놓고 논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집으로 돌아와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도 읽히지 않았다. 애플워치에서 과부하 상태라는 알림이 끊임없이 울렸다. 찝찝한 기분을 안고 체크해야 하는 것들을 점검했다. 그래도 내일의 일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시일이 촉박한 프로젝트가 다음 주엔 어떤 쪽으로라도 결론이 나겠지만 어떤 방향으로 가더라도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폭탄을 던진 사람은 그 뒷수습을 해야 한다. 설령 불발되었더라도 대비할 것들이 정말 많다. 왜 나는 매번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할 수밖에 없는 게 복잡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