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해 보이는 것이 실은 사소하지만은 않을 지도요.
당신은 집을 이사한 경험이 있나요?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자신이 살 곳을 정한 적이 있다면 그 첫 경험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짧든 길든 살아갈 지역과 집을 고른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돈도, 품도, 시간도 많이 들고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어렵게 선택을 했다가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흔치 않게 일어나기도 하지요. 그러니 이사를 한다거나 이주를 한다는 이들에게는 무한한 응원이 필요할 거예요. 그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많은 어려움이 있거나 있을 예정이니까요.
올해 여름, 7월에 한남동 TWL에서 열린 Oars의 팝업 전시 <<동쪽에서>>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오어즈는 강원도 강릉에서도 교동에 위치한 갤러리이자 편집숍입니다. Oars는 노를 멈추고 수평으로 유지하라는 구령인데요, 삶을 배를 타고 항해하는 여정이라고 비유하며 강릉의 일상과 풍경을 담은 그림과 물건을 만듭니다. 저는 매거진B의 로컬 팝업 전시에서 처음 알게 되었던 브랜드인데, 오어즈를 알게 된 그날부터 오어즈의 바다 포스터를 책상 앞에 붙여두고 있기도 합니다. 재작년 강릉으로 워케이션을 갔을 때 오프라인 공간에 가보고 더욱 좋아하게 된 기억도 있고요.
종종 팝업이나 전시를 하시긴 하지만 서울에서 열린 작품 전시는 꽤 오랜만이라, 금요일 저녁에 일을 일찍 마치고 한남동 언덕을 넘어 험준한 언덕에 위치한 샵을 부지런히 찾아갔습니다. 평소 잘 볼 수 없는 큰 화폭의 그림들과 새로운 작품들이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더라고요. 남산이 보이는 고즈넉한 배경을 뒤로 하고, 작가님의 시선에서 재해석된 강릉의 풍경이 서울 한복판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거기서 작품마다 붙어있는 소개글을 꼼꼼히 읽어보다가 작가님이 왜 강릉에 이주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강릉에 이주하기로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경포호수였습니다. 탁 트인 전경과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은 제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그날은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여름밤이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호숫가를 걷는데 나무들 사이로 붉고 동그란 달이 떠올랐습니다. 그 고요한 듯 신비한 풍경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여름밤 산책(경포호수)> 해설에서
강릉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가 경포호수 때문이었다는 말, 이해가 잘 되시나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글을 읽자마자 무한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고성을 마음에 담게 된 계기도 다름 아닌 교암리의 바다와 파도, 그리고 일출 때문이었거든요. 거기서 위로받았던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 때문에 저는 고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마음이 넘쳐흘러 이주까지 생각하게 되었죠. 작가님도 같은 경험을 하셨다는 생각에 제 안에서 이주를 너무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나에 대한 의문이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는 이사 하나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마당에, 지역을 아예 바꿀 결심을 하면서 겨우 그것 때문이냐고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요. 제가 이주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곧 잊힐, 너무나 별 것 아닌 무언가라고요. 하지만 첫눈에 반하지 않아도 천천히 밀물처럼 스며드는 사랑이 있습니다. 별 것이 아닌 것이 별 것이 될 때까지 제 안에서 얼마나 많은 물결이 밀려왔을까요. 썰물로 빠져나갈 수는 있어도, 밀물이 오기 전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에요.
'<<동쪽에서>>는 작가가 오랜 터전이던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이주한 뒤, 낯선 동쪽에서 마주한 감정과 풍경에서부터 출발합니다. (...) 동쪽에서의 삶은 한때 복잡하고 피로하게 느껴졌던 서울을 조금씩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전시 소개에서
제게도 앞으로 예정된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일단 서울에서의 집도, 저의 커리어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가족과의 시간도 모두 다시 조율해야 할 거예요. 고성에서의 삶은 제 생각과는 확연히 다를 겁니다. 그 지역에서 살아간다는 건 제 생각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일이 될 테죠. 어쩌면 몇 달도 안되어 다시 돌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포기를 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좋아하는 삶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모르는 세계로 성큼 가까이 가본 저의 이야기와 시간들은 제게 다르게 쓰일 겁니다. 오어즈의 이야기처럼, 고성에서의 삶이 저의 이전 시간과 삶을 다시 보게 해 주리라고 믿어요. 바다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고자 했던 시기의 저에게 다정한 눈으로 무한한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스스로가 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