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쓰는, 고성에 대한 글
이번 주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고성에 있었습니다. 5일 중에 2일은 제가 예약해 두고도 일정을 까먹은 덕분에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고성의 공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고성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교암리의 앞바다입니다. 처음 맹그로브 고성에 도착했을 때 라운지에서 보이는 교암리 앞바다의 모습과 하늘에 뜬 빼곡한 구름에 완전히 마음을 뺏겼습니다. 아직도 그 첫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그날의 그 아침 풍경을 경험한 덕분에 아직도 고성에 갈 수 있는 추진력을 얻어요. 또 그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요. 교암리의 앞바다는 아주 푸른빛을 띠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해무가 파도 위에 겹쳐져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풍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 곱지 않은 모래와 이름 모를 모래사장 위의 잡초와 들꽃 그리고 저마다 다른 종류의 조개껍질들을 만날 수도 있고요, 시간이 날 때면 교암리 앞바다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 독서를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평생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만이 남죠. 교암리 앞바다는 봐도 봐도 계속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나 시간과 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테일입니다. 테일은 맹그로브 고성에서도 차로 15분 정도, 꽤 올라가야 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테일은 옛날엔 가정집으로 썼을 것 같은 구조의 아담한 곳을 사장님들의 취향을 담아 아늑하게 꾸민 공간이고 커피와 디저트를 팝니다. 옛날 집이라 층고가 낮아 고개를 꽤나 숙여야 하고, 자리도 그렇게 많지 않아 불편할 법도 한데 항상 지역 주민들과 소문을 듣고 온 손님들이 가득합니다. 강아지를 좋아하신다고요? 이곳에선 가끔 돌아다니는 테일이도 만날 수 있습니다. 테일이는 제가 볼 때마다 문 앞에서 누군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 주면 쏜살같이 튀어 나가 마당을 산책해요. 테일은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는 곳입니다. 앉아 있다 보면 커피를 로스팅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면서 고소한 원두향이 여기저기 퍼집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로 내려주신 브루잉 커피는 핫, 아이스 구분 없이 모두 정말 맛있어요. 쟁반을 담으면 커피가 담긴 컵과 그릇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님이 테일 포터리라는 곳을 운영하고 계셔서 감각이 남달라요. 이 집에선 아무리 식사를 많이 먹었어도 타르트를 꼭 먹어야 해요. 옥수수 타르트가 맛있는데 가끔 감자타르트도 나온다고 해요. 테일에사는 손님들이 요청하면 바닷가에 나가서 먹을 수 있도록 돗자리와 접이식 상 등이 포함된 피크닉 세트를 준비해 주세요. 저도 아직 이용해 보지는 못했는데 여름이 되면 꼭 바다로 나가서 커피와 타르트를 먹고 싶습니다. 고성에서 카페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저는 테일을 갈 거예요. 함께 간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너무 따뜻하고 좋은 공간입니다.
고성에서 좋아하는 자연 명소 중 하나는 청간정입니다. 청간정은 고성 8경 중 하나로, 옛날에 관리들이 묶어 가던 청간역의 정자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 위에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에 올라가면 아픈 바다 뒤에는 논밭과 산이 펼쳐져 있어 360°로 경관을 즐길 수 있습니다. 예전에 불에 타서 소실된 적이 있지만 다시 재건해서 꽤나 깔끔한 느낌이 납니다. 이상하게 청간정을 처음 봤을 때부터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산과 바다, 들판과 하늘을 다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 그런지 눈을 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종종 혼자서도 시간이 나면 가벼운 마음으로 들리는 곳입니다. 만약 청간정을 갔다가 목이 마르다면 해변가에 난 데크를 걸어 10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는 태시트라는 카페에 가면 됩니다. 참, 태시트에서는 휘낭시에를 꼭 드세요. 시월에 갔을 때는 맹그로브 고성에서 자전거를 빌려 15분 정도만 달리면 금방 태시트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요, 날이 좋다면 꼭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보세요. 오고 가는 길에 바다를 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속초엔 동아서점과 문우당서림이 있지만, 고성엔 작고 강한 북끝서점이 있습니다. 여기 서점 사장님의 큐레이션을 좋아해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는 갈 때마다 바뀌어 있는 그림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이번에도 마음에 쏙 들어 가방에 자리가 없는데도 두권이나 꾸역꾸역 사 왔습니다. 사장님이 좋아하는 테마에 따라 여러 책들이 나뉘어져 있고, 신간들은 제대로 눈길을 받을 수 있게 큰 책상 2개에 나란히 펼쳐져 있습니다. 북끝서점에는 작은 창 앞에 방명록을 쓸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요. 그 방명록이 바닥까지 이어져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감동적입니다. 이 작은 공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니까요. 안에는 책을 읽기 위해 앉을 수 있는 일인용 쇼파가 딱 하나 있는데요. 그 책장엔 사장님이 가장 추천하는 책들이 놓여 있습니다. 아늑한 소파에 앉아서 그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지 않을 수 없게 되어요. 벽면에는 시시때때로 바뀌는 전시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어느 한 장면이라는 곳과 함께 만든 크리스마스 레터프레스 카드가 있었습니다. 저번에도 우연히 전시하던 것을 보았고 그때도 사고 싶었었는데 꽤 비싸서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이번에 또 카드를 전시하고 있길래 큰 맘을 먹고 하나 사 왔어요.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이 카드 하나면 연말 분위기로는 충분할 것 같아요. 보고 또 봐도 정말 예쁩니다. 팁을 드리자면 북끝서점은 근처 유명한 맛집들 사이에 있어서 웨이팅을 할 때 가기에도 좋습니다. 백촌막국수, 고식당, 카레노카레 같은 대기가 긴 집을 갈 때 꼭 들려서 책을 한 권 사보세요.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발견한 맛집이 하나 있습니다. 맹그로브의 매니저님들이 항상 추천하던 곳인데 이번에 처음 가봤어요. 새참칼국수라는 곳인데 메뉴는 딱 세 가지이고 들깨칼국수, 보리비빔밥, 콩국수입니다. (콩국수는 여름 메뉴예요.) 점심 장사만 하는데 오픈하는 시간부터 사람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성에서도 안으로 좀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걸까요? 가보니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많더라고요. 특히 메뉴 덕분에 아이들이 많은 팀도 보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그간 왜 여기를 오지 않았는데 후회가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정말 친절하신데다가 음식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은데 심심하지 않고 간이 잘 맞아서 계속 집어 먹게 되는 곳이에요. 가격도 9000원이라 부담이 없고, 이 가격에도 밥과 반찬이 다 리필이 되기 때문에 정말 좋지요. 여쭤봐도 말끝을 흐리시는 이름 모를 산나물 무침으로 아침 입맛을 돋우고, 들깨인데도 텁텁하지 않고 되려 깔끔한 국물의 칼국수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습니다. 이런 곳을 이제야 가 보다니, 아직도 고성엔 제가 가볼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녁에 술을 한잔 먹고 싶다면 두 곳을 추천드릴게요. 먼저 첫 번째는 무사입니다. 이전에도 무사 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무사는 전통주를 잔술로 파는 곳이에요. 사장님이 직접 지은 오두막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바 좌석으로만 되어있어 모든 손님들이 오손도손 앉아 저녁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여섯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에 늦은 밤에도 기다려서 가볼 만합니다. 저는 이 집에 있는 메뉴 중 광저우 닭껍질 튀김을 좋아해요. 안주로 딱입니다. 이곳에 간다면 같이 앉아있는 분들과 대화를 나눠보셔도 좋겠어요. 그리고 와인을 좋아하신다면 작은 와인바 슬로우댄스를 추천드려요. 슬로우댄스는 작은 가게라 테이블 세 개와 바 자석 몇 개로 이루어져 있어요. 가끔 여기서 밴드 공연도 열리고요, 플리마켓에 나가서 와인을 판매하실 때도 있답니다. 주류는 와인부터 위스키, 하이볼, 생맥주까지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요리가 다 맛있어요. 갈때마다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다 주문해서 먹어 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메뉴 양도 많은 편은 아니라서 이것저것 먹어보기 좋아요. 참, 무알콜 음료도 있어서 운전한 사람이 있어도 걱정 없으니 더 자주 가게 됩니다. 보니까 시즌마다 일부 메뉴를 바꾸시는데, 새로 나온 메뉴는 한 번쯤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고성에서 좋아하는 공간을 이야기하려면 밤을 새워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공간이 좋아지는 이유는 결국 사람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공간에 특유의 분위기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그 공간에 계신 주인 분들이 만들어낸 거니까요. 그 공간을 즐기다 보면 주인 분들이 궁금해지고 왜 이런 가게를 운영하는 지도 궁금해지고 어떤 마음으로 가게를 여셨는 지도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선 안 하던 짓을 고성에선 하게 됩니다. 수다쟁이처럼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보죠. 이런 용기는 고성에서만 나는 것 같기도 해요. 위에 써진 곳 말고도, 제가 아직 못 가본 보물 같은 가게가 너무 많은데 언제쯤 다 가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못 가본 곳들이 있어서 매번 고성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이번엔 어디를 새롭게 가볼까, 하면서요. 고성에서 막 도착 했지만 다음 고성을 언제 가야 할지 벌써 고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