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쓰고 또 쓰고
강점으로 나를 읽는 법
작년에 갤럽 강점 검사를 했었다. 퇴사하면 가장 바쁜 사람이 되는 나는 그때도 한창 커피챗 중이었다. 그 커피챗에서 지인 분이 갤럽 강점 검사를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코치님을 연결해 주셨고, 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던 차에 바로 신청하고 상위 5개 강점에 대한 코칭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내가 주변에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바로 '강점 검사 해보셨어요?' 혹은 '강점이 뭐예요?'.
결과지를 받았을 땐 그저 그랬는데 첫 코칭을 받았을 때 그 해석을 듣고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나를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 모르는 부분을 강점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니! 좋다고 생각하는 건 주변에 꼭 추천하는 성격이라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서 강점 검사 한번 해보라는 추천을 꼭 들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척 궁금해하는 상대방은 어떻게든 강점을 꼭 알아내려고 한다.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내 강점과 조합해서 어떻게 시너지가 날지 궁금하니까.
일단 결과지를 받아 들고 가장 이상하게 느꼈던 점은 영향력 테마의 강점들의 분포 상태였다. 영향력은 쉽게 말해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 특히 대중에게 자신을 어필하거나 영업 행위에 강한 분들이 이 테마에 많이 속한다. 상위 1위 강점(최상화)이 바로 이 영향력 테마다. 그런데 나머지 영향력 테마 강점들(사교성, 승부, 커뮤니케이션, 행동 등)이 전부 최하위에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내가 평소에 하던 말 중에 '나는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구나, 번쩍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자주 하던 말이 사실 나의 큰 특징이었던 것이다. (최상화도 사실 영향력보다는 실행력이나 전략적 사고 테마에 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점은 상위 5개 테마가 각 카테고리에서 두루두루 나온 편인데, 상위 10개 강점도 영향력 테마(1개)를 제외하면 모두 두루두루(각 2~4개) 나왔다는 점이다. 상위 15위까지 포함해도 두루두루 나오는 편이다. 내가 어느 땐 이런 인간 같고 저럴 땐 저런 인간 같은 순간들이 있는데, 이게 다중 인격의 발현이 아니라는 게 참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실제 디브리핑에서는 상위 10개 강점을 중심으로 내가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대화를 해보며 어떤 강점 조합을 어떤 상황에 쓰고 있는지 짚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개개별의 강점은 단독으로도 쓰이지만 여러 가지가 모여서 그 사람만의 독특한 점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 강점 조합 중에는 '최상화+개별화'가 있는데, 사람을 볼 때 약점이 아니라 강점을 보고 그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서 배치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최근에 인턴 분들을 교육할 때 딱 이 방식을 썼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이 방식을 적용했던 적이 있다. 담당하던 브랜드 R에서 나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 자리에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코치님은 이걸 포기가 아니라 더 나은 결과(최상화)를 위해서 스스로를 최적의 자리에 배치(개별화)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게 내가 선호하는 방식의 기여라고 했다. 포기라는 말보다 잘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조합 중에 '책임+성취'가 있다. 책임은 과정에 대해 묻는 강점이라면, 성취는 결과에 대해 묻는 강점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을 하는 과정에 최선을 다했는지도, 일이 끝나서 결과적으로 성과가 났는지도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성숙한 조직이 아니라 초기 조직이나 스타트업에 맞는다. 이미 성숙기에 들어선 조직은 성취했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그런 조직에서도 또 새로운 일을 벌이는 팀에 속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브랜드를 찾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자연스럽게 조합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는 나의 별명은 스스로 타오르는 자연 발화형 인간. 이런 사람에게 쉬라고 하면 세상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에너지를 받는 방식이니까.
이전에 알던 것에서 조금 더 이해가 높아진 강점으로는 '책임'이 있다. 책임감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위 강점이 책임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런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책임감이 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이 책임이 상위 2위 강점이다. 그 말은 모든 일에 책임을 다 한다는 뜻이다. 만약 조직에서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 주어지면 일단 어떻게든 해본다. 약속을 했다면 일단 한다. 믿어주면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게 내가 작동하는 기본 방식인 것이다.
스스로 강점인지 헷갈렸던 부분은 '절친(relator)'이 있다. 일단 절친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순위가 높았다. 다수보다는 소수와 깊게 관계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만, 그게 내 강점이 될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리고 절친과 붙어 있던 강점이 바로 '화합'이다. 절친과 화합이 같이 있으면 팀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다. 즉,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별적으로 만나서 설득하고, 모두가 따라올 수 있는 결정을 하기 위해 리소스를 많이 쓰는 편이다. 절친은 '개별화'하고도 붙으면 시너지가 난다. 단순히 친밀한 관계를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동기나 스타일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걸 '수집'까지 한다. (수집도 역시 나의 상위 강점이다.) 며칠 전 썼던 글과 몇 달 전 대화가 생각난다. 나는 왜 궁금한 사람의 곁을 맴도는가. 궁금하면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는가.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보석함에 예쁘게 넣어두고 흐뭇하게 즐기는 이유를 강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신에 강점을 과하게 발휘하면 가장 유의해야 하는 강점의 조합이 되기도 한다. ‘절친+화합+개별화'를 너무 과하게 쓰면 사람에 대한 편견이 생기기 쉽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구별이 명확하며, 팀이 나에게 과하게 의존하는 상황을 유발한다. 내가 항상 관계로 고민하는 이유는 강점을 더 잘 쓰려고 너무 노력했던 탓이다. 나의 관계는 언제나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다. 다만 혼자 기대하고 혼자 무너지지는 말기. 대화하고 털어놓고 나누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만이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나의 기대로 상대를 힘들게 하지 말고 상대의 기대로 나를 무너뜨리지 말며 다만 자연스럽게 곁을 내어주며 가까워지기. 그것이 나의 이번 숙제겠다. 강점을 과하게 쓰면 약점이 된다는 말은 언제나 나에게 얼음장 같은 깨달음을 주고 간다.
강점 디브리핑을 받으면서 이 대화를 계속 계속 곱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서른이 넘었어도 내가 나를 잘 모를 수 있고, 내가 하는 행동에서 나를 더 정확하게 읽게 되기도 한다. 말은 속이는 힘이 강하다. 설령 행동이 그렇지 않아도 뇌를 속일 수 있기에 말보단 언제나 행동에 내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상위 강점 5개의 영향이 꽤 크기 때문에 이번에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10개 강점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의 동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는지를 안다면 나는 나를 더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가 궁금하고, 나를 더 잘 알아가고 싶다.
글을 마치기 전에 다시 맨 윗 문단으로 돌아가본다. 맨 윗 문단에서 밑줄 쳐둔 문장들, 그게 내가 아무렇지 않게 평소에 쓰는 강점 행동이 발현되는 방식이다.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그것이 재능이고 강점이다. 내가 평소 드러내는 반복적인 행동들을 잘 기록해두고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이 다짐 또한 강점 중 분석, 수집이다.)
다만 한동안 내 주변 사람들은 또 강점 이야기를 들으실 준비를 하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