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 벤치에 누워 바라 본 가을 하늘
자주 듣는 말
'예지님,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 보여요?' '글쎄요, 전 똑같은 것 같은데. 그런가요?'
요즘따라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다. 이상하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저 일하는 장소만 바뀐 것 같은데 얼굴이 폈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러나 한 사람도 아니고 벌써 네다섯 번쯤 들은 이야기이니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추측해 보건대 나에게 자유도가 높은 환경이 잘 맞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그걸 현실에서 어떻게든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싶다, 해야 해! 가 아니라 하고 있다, 만들어 가고 있다는 감각. 그것도 다른 이의 영역이 아닌 내 삶의 영역에서 가장 주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점이다. 일을 하는 방식 자체는 예전과 다르지 않으나 일을 하는 마음이 훨씬 안정되어 그 편안함이 보이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내게 이제 회사나 조직은 더 불안한 환경에 가까워졌다는 게 확실해졌다. 이유야 어찌 됐든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변화를 알아주는 세심한 주변 이들에게도 고마울 뿐.
보고 싶은 사람들
어젠 오랜만에 당도한 연락들이 있었다. 예전 직장 동료가 길에서 나를 본 것 같다며 연락이 왔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매니저님이 도움이 필요하다며 연락이 왔다. 예전엔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다가 다시 만나게 될 일이 생기면 좀 어색해하거나 피하곤 했던 것 같은데, 요즘의 나는 그 공백의 시간을 지나 연락해준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때 혹시 요즘 바쁘진 않을까, 내가 귀찮지는 않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면서 한 마디를 건네는 사람이라 그렇다. 한 분은 내가 즐겁게 일하고 있다니 다행이라며 요즘 근황을 전해주었고, 한 분은 곁에만 있어줘도 힘이 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역시 좋잖아! 보고 싶었던 이들의 반가운 소식 한통에 이렇게 하루가 행복하다니!
관계의 바운더리
어제 인경님과 점심을 먹고 서울숲을 걸으며 이야기하다가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부분이 하나 있다면, 똑같은 강점을 가졌더라도 친해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인경님과 나의 상위 강점 중에는 절친이라는 재능이 있다. 다수와 넓은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소수와 깊은 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더 강하다. 근데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바운더리를 집에 비유해 보자. 누군가는 일단 대문을 열어두고 오가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만, 사실 그 집 안으로 막상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고 막상 들어가더라도 또 다른 보안문을 통과해야 한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대문 앞에서 손님을 세워두고 인터폰으로 화면만 딱 켜서 당신은 누구신지, 뭐 하러 여기에 오셨는지, 불순한 의도는 아닌지 초장부터 날카로운 탐색전을 벌이지만, 일단 신원이 확실해지면 대문부터 집안 방문까지 한 번에 다 열어젖히며 두 팔 벌려 환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모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기 쉽다. 이 집은 문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해서 또 다른 문을 마주하면 당황하기도 하고, 저 문은 주인이 쉽게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거나. 그러면 주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손님과 상처를 주고받는 불상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줄이려면 오가는 이들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 여긴 이런 집이에요. 저는 이런 주인장이랍니다.' 그런 설명도 없이 집 앞에 바리케이드를 쳐두거나, 발을 들인 이를 내치면 그것 또한 상처가 되겠지. 결국 조금 더 솔직해지고 내 이야기를 한 뼘 더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어제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