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29

기억을 요리한다는 것

by yeji

기억이라는 착각

기획자의 독서 마지막 모임날. 아침엔 멤버들을 위한 연말 세션 공간을 찾아 정리해 두고, 뒤풀이에 곁들일 와인을 골라 강남으로 출발했다. 여느 때보다는 적은 인원수로 시작했다.

이번 모임은 <기억이라는 착각> 그리고 영감 4부작 중 ‘인식’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책은 읽으면서 특별히 걸리거나 깊게 생각할 것이 없이 읽혔다. 그저 경험치로 알고 있던 것 위에 연구자가 붙이는 이름을 새롭게 덧씌우며 읽었을 뿐이다. 나는 기억 그 자체는 믿지 않는 편이다. 보거나 듣거나 경험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자의적 해석과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느낀 경험이 많은 편이다. 그 덕에 기억한다고 착각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여러 번 겪어왔다. 스스로를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남들이 제대로 기억한다고도 믿진 않는다.

대신 뭘 믿느냐 하면 그 기억을 소화해서 기록해 낸 흔적은 믿는다. 기억이 원재료라면 그걸 어떻게 요리해서 식탁 위로 올릴지는 요리사에게 달려있다. 원재료과 무엇이든 어떻게 플레이팅을 하고 무엇과 곁들여낼지 누구와 먹을지가 훨씬 중요한 순간이 있다. 같은 김치라도 일부러 익히지 않고 올린 것과 충분히 익혀서 올린 것, 묵은지로 만들어 올리는 것은 다르니까. 그 김치를 반찬으로 먹을지, 고기와 익혀서 찜으로 먹을지, 씻어서 들기름에 볶아 먹을 건지도 다르고. 그러니 우리는 다시없을 소중한 재료인 기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리해야만 한다. 소중하다고 그대로 두는 것이 답이 아닐 수 있다. 군내가 나게 쉬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기억을 수정한다는 것이 내게 왜곡이나 정신승리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기억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제일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어제 도영님의 이야기처럼, 원 기억 자체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미 기억할 때부터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제멋대로 편집한 채 받아들인다. 그게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죄책감을 버렸다. 애초에 답이 없다면 그 답은 내가 만들면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다.

어제가 트레바리에서의 마지막 모임이었던 만큼, 우리가 이 날을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또한 생각해 보게 된다. 마무리이자 새로운 도전의 시작점. 우린 앞으로 그 기억을 다 제각각 다르게 보정하고 왜곡할 것이다. 그렇게 저마다의 모양이 된, 모두 다른 20개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의 식탁 위로 잘 올리고 싶다. 내가 이 모임을 하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멤버 들인 만큼, 재밌게 신나게 해보고 싶다. 모두가 요리사가 되는 식탁을 만들어보는 것이 내년의 큰 목표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