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32

유연하게 자유롭게

by yeji

내가 살고 싶은 집

토스의 새로운 머니북 <더 머니이슈> 출간을 기념하는 리딩 파티에 참여자로 선정되었다. 여러 호스트 중에서도 내가 선택한 분은 별집부동산의 전명희 님. 평소에도 올려주시는 공간 이야기를 잘 보고 있었는데 ,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앞으로 내가 살 집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집에 들어오던 3년 전만 해도 이곳은 그저 잠깐 머물다 가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이동이 쉽거나 적당한 가격의 가구로만 채웠었다. 언제 내 상황이 바뀌어 수원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될지 몰랐으니까 말이다.

요즘은 달라졌다. 평소에 내가 살고 싶은 집이 과연 어떤 집인지에 대해 떠올려본다. 지금 있는 집에서의 불만과 좋아했던 공간에서의 추억이 이리저리 섞여 둥실 떠오른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 동안 홀로 최상의 상태로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눈에도 거슬리지 않고 행동에도 거침이 없는, 나 자신으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자고 생각한다.

설령 내가 서울을 벗어나 무척 번거로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가져가고 싶은 것들을 최우선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저번 주엔 한참을 고민하던 무인양품의 모듈 가구 시리즈를 꽤 많이 주문했다. 올해 초부터 고민했으니 8개월 이상 무인양품을 몇 번이고 들락날락하며 수십 번을 눈으로 재어 봤다. 이 집에서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구를 굳이 선택한 것은 여러 모양으로 바꿔 내가 진짜 오래도록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집에 살다 보니 나를 알게 된다. 가구와 소품의 위치를 꽤 자주 바꾸고, 그때 동선에 맞게 다 꺼내어 정리하는 걸 좋아한다. 조율하는 능력이 일, 사람뿐만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도 쓰이나 보다. 위치도, 쓰임도, 크기도, 종류도 계속해서 최적화하려고 한다. 연말이 되면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모아둔 것들을 한번 다 털어내서 취사 선택하고 버리는 루틴이 있다. 올해도 하겠지만 매년 눈에 보일 때마다 조금씩 사 오는 요리 재료들과 일 년 동안 조용히 늘어난 책들, 여기저기서 받은 굿즈와 지류들을 보고 있으면 언제 이렇게 불어났나 싶다. 아깝긴 해도 먼지 털듯이 다 털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구를 옮겨서 마치 새로운 집 같은 낯선 느낌을 낸다. 그게 나를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예전엔 그저 쉴 수만 있으면 집의 기능은 다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소장님과의 대화에서도 느꼈지만, 나 다운 집은 사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들 수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나를 아는 것이 첫 번째다. 집은 내게 어떤 공간인지, 집을 꼭 소유해야 하는 것인지, 주거비는 얼마나 써야 하고, 나 다운 집을 찾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가 나에 대해서 3년 전보다 꽤 많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좋은 집에 대한 조건의 우선순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제 대화에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지점이었다.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찾은 게 아니라 이미 내가 힌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대화로 그 사실을 깨달았을 뿐.

어제만 해도 없던 크리스마스트리로 화사하게 장식된 프릳츠 장충점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동안 솔직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어쩐지 돈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현재 나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어 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책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미리 걸어본 이들의 조언을 발견할 때마다 눈에 담았다. 당장 몇 달 후에 내가 어디에 살지도 모르겠지만 그 집만큼은 분명히 나를 더 닮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좋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