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34

책임은 왜 여전히 중요한가

by yeji

책임감

나의 강점 2위는 책임이다. 내가 약속한 것, 내뱉은 말, 나의 영역에 속해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지킨다는 것이다. 다만 책임감이 높아도 책임 강점이 하위에 속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분들은 본인은 하기 싫은 일에 속하는 것들마저 책임지지는 않는다고 한다. 안 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일단 하기 싫은 일들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해놓고 대책을 세운다. 아예 못 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안된다고 했겠지만, 내가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2주를 꼬박 대기한 발주, 오늘까지는 들어오기로 약속하고 넣은 발주가 결국 늦어진다는 소리를 통보받았다. 이미 화요일부터 담당자들에게 이슈가 없는지 체크했던 부분이었고, 최고 책임자는 수요일 저녁에도 내게 이슈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목요일 아침에 급하게 전화가 와서 발주가 미뤄진다는 통보를 들었다. 그건 나와 논의하자는 의도가 아니었다. 제작을 한 두 번만 해본 건 아니기에, 제작 업체 혹은 공장들이 늘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야 큰 수량이고 금액이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최소 발주 수량에 겨우 맞춘 발주 건은 비상상황에서 가장 먼저 밀린다. 슬프게도 업계에서는 발주가 들어간 후 갑이 공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통을 안 한 건 명확한 그들의 잘못이 맞다. 그러나 발주에 책임이 있었던 담당자가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내게 통화로 제작을 해보신 적이 있냐며 물었다. 있다고 하자, 그럼 아시겠지만 난리 친다고 해서 안 되는 발주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아, 난리 치는 게 나고, 발주가 안 되는 건 제작할 때 당연한 일인데 왜 이러냐는 말이구나. 앞으로는 이렇게 일정을 빠듯하게 잡지 말라며 조언도 해주었다. 자기도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아쉽다고 했다. 웃긴 것은 그들과 우리가 같은 자리에서 협의했고 같이 발주를 했다는 것이었다. 담당자 생각에 그 발주가 빠듯해서 밀릴 것이 확신되는 상황이었다면 그걸 우리에게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나는 이슈가 없는 걸 체크하고 그 이후 일정을 모두 그에 맞추어 넣어놨다. 당장 토요일 행사에 쓰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제품이 출시되는 데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 아쉬운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 조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직 밖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생각보다 많다. 오히려 조직에 있을 때는 자리로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며 압박이라도 넣을 수 있는데, 밖에선 그게 더 힘들다. 업무에 대해 책임이 있어야 하는 이들은 오히려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준 내가 하나하나 체크를 하는 일이 많다. 일이 밀리는 것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책임감이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와서 당연하다는 태도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다음번의 일은 그들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그들과 다시는 만나지 않는 걸 선택할 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커뮤니케이션만 잘해도 상당한 점수를 따고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은 클라이언트나 대표자, 담당자의 불안감을 없애줄 수 있는 제1요소다.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유하는 것, 그리고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풀린다. 담당자의 책임감은 커뮤니케이션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책임감이 주는 고통은 잠깐이다. 결국 그 책임감은 과정에 다 묻어나고,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설령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좋은 감정은 확실히 남길 수 있다. 사람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는 가장 기본적인 것, 그것이 결국 우리를 가장 크게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