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37

은은한 죄책감과 글쓰기 근육

by yeji

되는 대로 하지만 계속 쌓기

월요일의 급박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당장 모레부터 고성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안 순간, 미친 듯이 일을 쳐내기 시작했다. 월요일 저녁 R에서 함께 일했던 정은님과의 약속, 화요일 저녁 성북구에서의 녹싸님 강연을 들으러 가는 일정도 잡아두었기에 무한정 야근하며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수요일부터는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었다. 일할 수 있는 시간 동안은 집중해서 일하고, 저녁 약속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남은 잔업을 처리했다.

그 이틀간 글쓰기를 못했다. 아니, 안 했다고 해야 더 맞겠다. 이틀간 매일 쓰기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은은하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바쁘게 일했다. 어떻게든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누워서 소재를 생각하다가 깜빡 잠들기도 했다. 웃긴 건 포기를 할 거면 시원하게 못한다고 GG를 치고 마음의 짐이라도 덜어야 하는데, 못난 강박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은근하게 괴롭히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학창 시절 일기도 제때 못 썼던 나에게, 내 생각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평생의 숙제이고 짐이었다. 대단한 소재가 있어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멋진 글을 써낼 능력도 내게 없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러다가 무슨 저녁 약속 잡듯이 어느 날 갑자기 매일 쓰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주변의 쓰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쓸모없는 단 한 줄이라도 매일 뭔가를 써내지 않으면 앞으로 진짜 쓰고 싶을 때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근육이 하루아침에 울룩불룩 붙을 수 없는 것처럼, 글을 쓰는 근육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매일 아침에 팔 벌려 뛰기라도 조금씩 조금씩 해둬야 체력이 비축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날은 일에 대한 단상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눈에 띈 키워드에 대하여 아무 말이라도 주절거리며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고성에 와서 기다렸던 시간 중 하나는 폴인에서 진행한 박찬용 에디터의 세미나였다. 책과 전시에 이어 세미나까지 들어보면 나도 내 삶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꺼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별 것 아니었다. 에디터님의 힌트는, 자신의 경험을 재료로 콘텐츠화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멈추지 않고 시간을 쌓으며 계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본인의 비전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다양한 포맷을 시도하려고 할 때 과정은 그냥 '되는대로' 하라고 한다. 마치 반쯤 포기한 듯한 이 태도가 오히려 길게 갈 수 있었던 에디터님만의 비법이구나,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앞으로 글쓰기를 못한다고 해서 은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겠다. 대신 그 사이에 더 재미있는 이슈가 나타나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글을 쓸 때면 더 솔직하게 더 신나게 글을 쓰고 싶다. 죄책감을 추진력으로 삼지 않고, 이런 마음을 추진력 삼아 나아가면 더 오래 더 길게 되는 대로 쌓을 수 있지 않을까. 길게도 바라지 않는다. 일단 12월부터 되는 대로 계속 쌓아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