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42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어

by yeji

나쁜 걸 피하는 게 아니라 결국 좋은 걸 만나고 싶어서

화가 날 때면 나는 극도로 말이 없어진다. 속으로 말을 꿀꺽꿀꺽 잘도 삼킨다. 되려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화가 난 상태에서 뱉는 말이 얼마나 독할지 알고 있어서다. 그 말을 상대에게 하느니 화를 삼키는 편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왔다. 반면에 화가 나면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나와 갈등이 생기면 답답해 죽으려고 한다. 너는 왜 말을 안 하냐고, 입을 다물고 말을 안 하는 게 불안하고 두려우니 말 좀 하라고. 그 말은 나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당신을 포기한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오래간만에 화가 난 날이었다. 어제 유선으로 받은 피드백의 여파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일이 아닌 다른 피드백을 받았다. 상대방은 자신이 화가 난 이유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자신의 힘듦을 알아달라는 이야기였다.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법은 자신은 바뀌기 어려우니 내가 이해하고 양해하라는 말이었다. 자신을 이해하라는 말을 너무 당당하게 했다.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말을 듣는 내내 나는 "아, 네."라는 대답 말곤 할 말이 없었다. 미팅이 끝나고 정신은 차렸지만 머릿속에서 빙판 위에 금이 가듯 쩌저적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미 협업사와의 미팅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폭발하고 뒤늦게 사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부디 조심해줬으면 했다. 누구나 발작 버튼이 있다지만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자꾸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었다. 사과를 한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기억한다. 결정된 일을 자꾸 뒤엎으면서 일이 잘 되고 있는지를 육성으로 확인해 주길 바랐다. 그게 진짜 일의 상황을 묻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는 것은 나조차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일이 힘든 것보다도 감정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걸 하기 싫어서 조직에서 나왔던 건데,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어떻게든 나에게 그런 역할을 바라는구나. 내가 그런 걸 하기에 좋아 보이는 걸까, 혹은 내가 그런 기대심리를 심어줬던 걸까. 여전히 어렵다. 평생 어려울 것이다. 매번 더듬거리며 탈출구를 찾을 것이다. 말도 자주 없어지겠지.

그래도 내가 깨지면서 매번 도전하거나 시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렇게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니다 보면 나와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그간의 힘듦이 씻기고, 나는 단번에 에너지를 충전한다. 아이언맨이 토르의 번개를 맞았던 그 순간처럼. 오늘도 되새김질을 한다. 나쁜 사람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포기하지 말 것. 지치지 말고 계속 두드려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