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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데이지 Apr 06. 2020

이 시국에 어벤저스란 없다

인문학을 통해 성찰해 본 코로나 사태

마트에 다녀오는 길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 대한민국 확진자 총 만 명.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니까 오천 명 중 한 명이 걸렸단 건데. 이건 정말 엄청난 거야.

운전하던 아빠가 말했다.

S언니는 인간이 너무 잘못을 많이 해서 신이 인구수를 조정하는 거라네?

엄마가 단톡 방 카톡을 보고 말했다.  


타노스가 생각났다. 영화에선 주로 악역들이 인구가 너무 많다고 컴플레인한다.  어벤저스에선 타노가 반지를 끼고 손가락을 까딱해 인류의 반을 사라지게 하고, 킹스맨에선 밸런타인이 핸드폰 칩을 사용해 전 세계를 피바다로 만든다. 그런 악당들로부터 우리의 영웅들이 인류를 지켜낸다. 두 영화 모두 박스오피스에서 큰 흥행을 이뤘다. 그런데 이 대중적인 서사는 지극히 현대적 발상이라는 사실.  


고대 서사에선 선과 악이 정 반대임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죄를 짓고, 그의 대한 벌로 홍수가 인류를 몰살시킨다. 재앙은 한 개인의 악행이 아닌 선한 신의 공의로 나타난다. 현대의 영웅 같은 예외적인 캐릭터가 등장하긴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밤에 추워하는 미개한 인간을 불쌍히 여겨 신의 불을 훔쳐다 준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 되기는커녕, 까마귀에게 영원히 뜯기는 벌을 받는다. 죄의 이름은 HUBRIS: 그리스어로 인간의 주제넘은 거만.  

그리스로마 신화 - 프로메테우스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에서 이처럼 재앙을 대하는 태도가 급격히 변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문학에선 재앙을 겪은 인물들에겐 대사 한 마디 주어지지 않는다. 재앙이 신의 뜻이기 때문에 재앙 앞에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재앙은 인류의 작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현대 문학 속 인물들은 재앙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싸우며, 그 여정 중 뜨거운 우정과 가족애가 쌓이고 영웅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포인트다. I am groot? I am groot.


이 확연한 차이를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된 인문주의/ Humanism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Humanism is an outlook or system of thought attaching prime importance to human rather than divine or supernatural matters. Humanist beliefs stress the potential value and goodness of human beings, emphasize common human needs, and seek solely rational ways of solving human problems.
인문주의란 신적 존재보다는 인간에게 중요성을 두는 철학이다. 인문주의적 가치관은 인류의 잠재적 선함과 인류가 공통으로 갖는 필요를 강조하고 오직 논리적인 문제 해결만을 추구한다.

코로나를 겪는 우리 시대는 인문주의가 대세다. 우리는 대부분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을 갖고,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막지 못하는 일에 분노하고 서로를 탓하기 바쁘다. 그러나 일부러 이웃집 현관문 손잡이에 침을 묻히고 다닌 코로나 환자, 환자들을 굶어 죽게 나 두고 식량을 챙겨 떠난 양로원 스태프를 보면, 인간의 선함을 신뢰하기 쉽지 않다. 병원에서 밤낮으로 환자를 보는 의료진이 있는 반면, 생필품과 식량을 사재기하고 도둑이 들까 봐 총까지 사는 것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 아닌가.


코로나는 인간의 한계를 낱낱이 보여준다. 매일 급증하는 확진자 수를 보고 많은 이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질병에 걸리는 것도 무섭지만, 서로도 무섭다. 이 시국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고대의 겸손과 현대의 사랑을 겸하면 어떨까. 먼저 인류는 지극히 연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차피 한 번은 다 죽고 소중한 사람들과 이별한다. 그러니까 혼자 사려고 발버둥 치는 대신, 인간의 최선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벤저스처럼 코로나를 근절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정과 가족애를 나누며 대사 한마디로 감동을 줄 순 있다. 능력은 부족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인간. 그것이 신도 인정하는 인문주의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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