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 속 빈곤에서 벗어나기
나는 소비지상주의(consumerism)라는 말을 배우기 전부터, 그것이 무엇인지 경험으로 알았다. 부모님이 해외 골프 여행을 갈 때마다, 밤을 보낸 으리으리한 빈집과 눈이 이끄는 대로 몇 시간이고 헤매던 강남역 지하상가가 그것이었다. 소비지상주의는 다른 말로 공허함이었다. 그 부유 속 빈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 내겐 물질주의적 삶의 방식이 익숙하다. 쇼핑과 여행은 즐겁기만 하다. 그런데 왜 동시에 회의를 느낄까?
미국 심리학과 교수, Tim Kasser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추구하려는 목표가 비교적 물질주의를 지향하고 있을 때, 삶의 행복 수준이 낮았다. 반면, 개인적인 성장과 자아 수용(self-acceptance), 소속감과 친밀한 관계 형성, 집단에 힘을 보태는 등의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을 때, 행복 지수가 높았다. 또, 물질적 목표 달성의 성공 여부는 행복지수에 무관하지만, 내재적 목표 달성의 성공 여부는 행복지수와 직결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갖게 되었을까?
연구가 밝혀낸 주된 원인은 두 가지: 사회적 모델링 (social modelling)과 불안감이다. 수많은 광고가 두 가지 요소을 이용하고 있다.
내가 광고회사에서 일했을 때, 가장 히트를 쳤던 광고는 20대 초반을 타겟으로 한 영상이었는데 "매력없는 안경 쓴 신입생은 대학에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위협의 메세지로 시작해서, "이 렌즈를 끼면 포텐이 터지고 모두가 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라는 사회적 모델링으로 끝난다. 너무 익숙한 시나리오 아닌가? 그러나 연구 결과에 비춰보면 이 메세지는 거짓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겉모습을 꾸민다고 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팀 캐서의 말이 맞다. 돈 문제는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사랑이나 자존감의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작용이 일어난다.
톨스토이의 "행복"은 가치관이 달랐던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나이에 결혼한 소냐는 도시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에 반해 계속해서 물질과 인기를 추구한다. 삶의 경험이 많은 남편 세르게이는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가정을 가장 행복한 자리로 인도하려 노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 quiet secluded life in the country, with the possibility of being useful to people to whom it is easy to do good, and who are not accustomed to have it done to them; then work which one hopes may be of some use; then rest, nature, books, music, love for one's neighbor — such is my idea of happiness.
좋은 일을 해주고 싶은,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의 삶. 그리고 쓸모있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쉼, 자연, 독서, 음악, 이웃을 향한 사랑 —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야.
Leo Tolstoy, Family Happiness
톨스토이가 세르게이를 통해 말한 것 처럼 행복은 소박한 것에, 그리고 관계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