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힘든 애들 맡으려고 이거 시작한 거 아니잖아요. 대안교육도 힘든 애들 도와주기만 하다가 정작 '대안'교육은 못 한 게 큰 문제예요.
얼마 전 비슷한 교육운동을 하는 분들과 회의하던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반가웠다. 힘든 아이들 맡는 게 내 일이 아니라고 누가 대신 결정해줘서 내심 기뻤다. 내년부턴 힘든 애들은 그냥 안 받는 게 좋겠다는 정당성을 세워줬다. 그런데 어딘지 마음이 꺼림칙했다.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은 무슨 의미가 있지? 도움이 필요한 이 아이들은 누가 어떻게 도와야 하지? 하는 의문이 남았다.
ANYSE(Asia Network for Young Social Enterpreneurs). 서울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국제포럼이 4회를 맞이했는데 올해 주제가 바로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만들어내는 미래의 교육이다. 연사들을 보니 대부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누가 내 대신 이렇게 공부할 거리들을 전 아시아에서 찾아와 준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냉큼 등록했다!
첫 시간의 키노트 스피치를 맡은 분은 덴마크에서 카오스필로츠(KaosPilot)이라는 학교를 세운 우페 엘베크씨이다. Frontrunner라는 단체에서 문화활동 프로젝트를 하던 엘베크씨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의 유럽 사회에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카오스필로츠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1991년도에 세워서 2006년까지 교장으로 일했고 그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국제적 사회혁신 운동가로 영역을 넓혀가며 일하고 있다.
그는 카오스필로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건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보다는 그가 그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지게 된 교육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동참하고 있는 '꽃다운친구들'은 아이들에게 뭔가를 교육하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쉼'을 돌려주자는 안식년 운동이기 때문에 '미래의 교육'이라는 주제는 늘 관심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버거운 주제이다. 주로 청소년들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 무엇을 '해야 한다!'라는 내용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저 사람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 멋진 일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뭘 하고 있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엘베크씨는 이런 말을 했다.
HOW CAN WE CREATE SPACES THAT ALLOWS…
EVERYONE TO UNFOLD THEIR LIFE TALENT ON THE HIGHEST MEANINGFUL LEVEL - FOR THE INDIVIDUAL!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쳐내도록(unfold)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교육은 다양한 방법으로 실현될 것이다. 때로는 그 방법론이 서로 대치되는 것처럼 보여서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라는 판단 앞에 서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깊은 차원에서의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아름답게 정의 내릴 수 있다면(유일한 정의일 필요는 없다.) 이 목적에 봉사하는 다양한 교육의 방법들 중 몇 개를 굳이 폐기할 필요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 마음속의 '꽃다운친구들'은 구원받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 속에서 재능을 꽃피워내는 데에 충분한 양질의 쉼이 필요하다는 것은 쉽게 부인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엘베크씨는 나의 스승님이 되었다.
그다음으로는 professional qualification의 4가지 요소를 말해주었다.
1. meaning competence
2. relational competence
3. change competence
4. action competence
기능만 배워서는 안 되고 의미를 해석해내는 능력, 관계적 능력,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나는 1번을 능력으로 정의해내는 그의 meaning competence에 감탄했다! 카오스필로츠에서는 이런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설계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이 배우고 있을까?
꽃친에서 1년을 쉬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에서의 성적과 대학입시에 경도되어 있는 친구가 생각났다. 이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뭐라고 반응할까? 대학입시로 모든 학교생활이 평가받는 시스템이 너무나 강력해서 이미 수많은 아이들 안에 내재화 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저런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은 언제 어디서부터 실현될 수 있을까?
다음으로 스승님께서 남기신 주옥같은 말씀은 이것이다.
leader on the edge
in-between what is known and unknown
안타깝게도 스승님께서 어떤 의미로 이 이야기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건방지게 통역기를 안 끼고 듣다가..) 그러나 edge, in-between은 그냥 내 삶의 모토다. 그것이 스승님과 통한 느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스승님이 내게 주신 도전은 이것이다.
Love of freedom, Freedom to love
자유를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하라.
네! 스승님!! 나는 마음으로 화답했다.
키노트 스피치가 끝나고 "모두를 위한 교육" 세션에서 4명의 연사가 10분씩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정말로 10분 안에 설명했다! 시간 지키는 글로벌 리더들 매우 respect!)
여기서 나는 2가지 충격을 받았다.
1. 정말 이 사람들, 왜 이렇게 힘든 일만 골라서 하냐.
2. 정말 이 여성 리더들, 왜 이렇게 멋있냐.
백발이 성성한 호주 여성 캐스린 리바이가 20여 년간 말레이시아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타니아 스쿨은 말레이시아의 불법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다. 그리고 학교 자체도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다. 불법 이주노동자들은 언제든지 추방당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집에 일손도 달리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는다. 캐스린은 어쩌다가 그 아이들을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쩌다가 그 아이들을 마음에 품게 되어 그 오랜 시간 동안 낯선 땅에서(이제는 고향보다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불법의 딱지를 감수해가며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그냥 저 상황 설명만 들어도 20년 동안 그녀와 그녀의 팀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일을 했다. 운명적으로, 열정적으로, 지속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위해, 그리고 비슷한 처지의 모든 다른 아이들을 위해 수학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 학습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에누마의 이수인 대표. 명성이 자자한데 이제서야 그녀를 멀리서나마 만나보게 되었다. 현재 에누마는 장애 아동의 학습을 넘어서, 학교의 학습을 따라가기 어려운 모든 아이들에 주목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그리고 탄자니아를 비롯하여 학습을 도와줄 인적, 물적 자원이 현저히 부족한 전 세계 아동들의 학습을 돕는 킷킷스쿨(Kit Kit School)을 개발 중이다. 와, 이수인 대표님도 정말 카리스마가 뿜뿜.
이 두 여성의 카리스마는 잠시 뒤에 Q&A 에피소드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태국에서 활동하는 타닌 팀통씨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들었다.. 패쓰..
마지막 일본 청년 야스다 유스케의 사례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학교 이름은 정말 어렵다. 기주키교이쿠주쿠.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나..) 히키코모리로 대변되는 일본 청년들의 무기력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환경의 장벽을 넘는 것보다 내면의 무기력을 넘어서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배우려는 의지, 하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들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많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어두움과 약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정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청소년들도 자원의 부족함보다는 무기력에 시달리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에 참 공감이 되었다. 이 발표를 들으면서도 참 기가 막혔던 것이, 이 사람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풀기 어려운 문제에 매달리지?라는 점이었다. 자기 자신도 한 때 방황하던 청소년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생의 의지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런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말이다.
발표를 마치고 나서 질문 시간이 짧게 이어졌는데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떤 한국 남자분이 "말레이시아의 농장에서 사는 아이들, 아프리카에 사는 아이들에게 왜 학교가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합니까? 교육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동반하지 않습니까? 학교에 가지 않고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얼핏 들으면 아주 본질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자도 흥미로운 질문이라면서 4명의 연사들에게 모두 대답할 기회를 줬다.
첫 번째로 유스케씨가 대답을 했는데 그는 아주 친절하게 '아, 일본은 매우 근대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방 안에 틀어박혀만 있어서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키코모리들에게도 학교가, 교육이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수인씨와 리바이씨는 자비가 없었다. (이 대사들은 나의 기억에 의해 각색되었음을 미리 밝힌다. 이것은 기사가 아니니..)
"도대체 질문하신 분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아프리카에 한 번 가보시기 바란다.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가난의 무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아이들은 기본적인 읽기, 쓰기, 셈하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조차 없다. 그 기회를 주는 것이 왜 필요한지 묻는 것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는 있어도,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배우고 싶어 하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두 여성분은 사자후를 뿜으셨다. 질문을 들으며 잠시나마 '그러게, 꼭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쳐갔던 나를 셀프 채찍질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전근대 사회에 대한 낭만이란 말인가. 나는 초고속 인터넷 망이 깔린 베를린 스타일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이탈리아 스타일 커피를 마시며 맥북으로 인터내셔널 하게 일하는데 너는 그냥 코코넛 오일 농장에서 일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질문자에 대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그 말이 그 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물결은 거세고, 교육에 대한 준비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느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우리들의 인식의 차이는 너무나 커서 갈 길이 참 멀구나 싶었다.
오전 세션을 너무 열심히 들었는지 오후 세션은 영 집중이 되지 않아 슬쩍 포럼장을 빠져나왔다. 오전에 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많이 inspired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후까지 들었으면 이 글도 너무 길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참석한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의외였다. 이렇게 좋은 연사들이 한 번에 모이는 자리인데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듣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았겠다 싶었고, 명색이 사회혁신가국제포럼인데 공식적인 교류의 자리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하도 교류하는 모임이 많다 보니 이제 이렇게 일방적인 발표식의 포럼이 오히려 더 어색한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정보 검색력이 매우 취약한데 이렇게 공부할 거리들을 많이 얻게 되어서 매우 보람되었다! 끝!!
+ 메인 사진은 copy right@ANYSE
ANYSE 웹사이트 : http://www.anyse.asia/
ANYSE 행사 사진 : http://bit.ly/2v3swp8
한겨레 기획연재 : http://h21.hani.co.kr/arti/SERIES/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