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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지 Dec 22. 2023

결국에는 사람이다

선생님 편


• 지도자: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
• 코치: 1. 지도하여 가르침. 2. 운동 경기의 정신ㆍ기술ㆍ전술 따위를 선수들에게 지도하고 훈련하는 일.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


“이번에야 알았어. 펜싱클럽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까지 호제가 펜싱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지금 선생님들 같은 성정이 아니었다면, 난 아주 적극적으로 호제를 펜싱클럽에 못 다니게 했을 거야. 펜싱클럽이 단 한 곳만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안을 찾아봤을 거야.


엄마,

결국 사람이었어.“


말랑 할머니는 ”너라면 그렇지.“라며 나의 말을 받았다.




대회에 나가면 다양한 유형의 선생님을 만난다. 단체전 대회에서 유난히 서로 다른 코칭 유형이 뚜렷이 눈에 들어왔다.


“단체전“이라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단체전의 결과가 클럽의 능력치라고 생각했던 걸까. 단체전이라는 특성상 집단정체성이 강해져서 평소의 코칭보다 과해진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어떤 일에는 나의 짐작이 차마 가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기에 이유를 알아채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선생님이  매우 다급해 보였다. 한 선생님이 경기 중인 초등학교 2-4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옆에 다가가 상체가 앞으로 튀어나갈 것 같이 쭈욱 뺀 뒤, 화가 난 듯, 짜증이 난 듯 손을 흔들고 소리치며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기 중인 아이가 급하기보다, 선생님이 급해 보였다.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부모나 선생이 먼저 조바심이 난다면, 좋은 성과로 이어지기 쉽지 않다. 초반은 가능할지언정 지속성에서는 의문이다. 결국 플레이어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의 주도권을 당사자가 쥐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호제가 다니는 펜싱클럽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우여곡절 성장을 인내로 동행하신다. 조바심 나는 부모를 진정시키고, 아이의 미세한 나아감을 기뻐하신다. 젊은 분들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은 순간이 여럿이었다.


스펀지 펜싱 칼로 연습하는 호제와 화정 선생님


인내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무리 심적 거리 두기를 해도, 선생과 제자 관계에서 제자에게 화가 날 때도 분명 있을 거다. 특히 철없는, 규칙을 배워가는 어린아이일 때 그런 순간이 꽤 있을 텐데 이런 특성을 수업에 또 활용한다.


펜싱 시켜달라고 조르고 졸라 시작한 6세의 펜싱은 장난과 신남의 연속이었다. 수업을 지켜보노라면, 신나고 장난치고 싶은 호제의 태도에 내 속이 욱 욱 거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곤 했다. ‘호제, 이리 와봐!’ 소리가 입에 맴돌았으나, 선생님과 호제의 시간이니 참고 또 참았다.


수업이 끝나면, 그제야 화정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아니, 이걸 어떻게 참으셨어요. 야단치셔도 돼요. 와, 저는 열이 아래에서부터 올라와서. 와. 정말 너무 대단하십니다.“


어린아이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무언가에 마음을 붙이고, 재밌어하는 경험을 덕분에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선생님들이 유하지만은 않다. 태도가 올바르지 못하면 무섭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야단치는 기준이 한결같다. 이런 일관성으로 육아하면 강한 신뢰 속에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6세 호제는 펜싱클럽에서 본 선생님들의 코칭을 따라 하곤 했었다. 그중 꽤 반복했던 건 제완 선생님의 우렁찬 멘트였다.


“뒤뚱뒤뚱거리지 말고, 생각해! 생각!”


평소에 말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 제완 선생님은 레슨을 시작하면 변신한다. 로봇 변신! 하는 것 마냥. 우렁찬 목소리로 펜싱클럽을 가득 메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단전에서 올라오는 듯한 음성으로 외친다.


“집중해! 집중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다가 또 잘하면 잘했다고 우렁차게 외친다.

“잘했어요. 오!!!!!! 잘했어!! “


호제는 제완 선생님께 칭찬받은 날에 “엄마, 제완 선생님이 오!!!라고 나 칭찬해 줬어. “라고 말하곤 했다. 오!! 한 마디에 호제는 뿌듯함을 느끼곤 했다.






승리에 혈안이 되어 연습 경기에서 똑같은 자세만으로 승리한 호제에게 요셉 원장님은 따끔하게 말씀하셨다.


“호제! 오늘 배운 거 했어? 까르트 했어? 지난 대회 때 후레쉬만 했지? 경기에 이겨도 선생님은 오늘 호제가 잘했다고 할 수 없어. 지더라도 배운 걸 해야 해. 그때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어. 알겠지?!“


호제가 끄덕였다. 내 속이 어찌나 시원했는지. 집에 가서 원장님 말씀 기억하냐고 물었다. 호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난다고 했다. 다음에는 지더라도 배운 걸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졌다.


무조건 잘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잘한 건 잘했다고, 보완할 건 냉철하게 분석해서 얘기해 주는 선생님들. 부모가 있든 없든 큰 소리로 할 말은 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괜히 더 위안이 된다.



호제가 그린 요셉 원장님 vs.6세 호제. 호제 불이 켜져 호제의 승리!
현실은 193cm vs. 120cm




선생님들의 성찰하는 모습에 나도 배운다. 성찰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나의 부족한 점, 잘 못한 점을 인정해야 가능한 일이라 많이들 피한다. 에너지 또한 많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대회 때 미진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하나씩 개선한다. 어떤 대회에서는 모든 지점 선생님들이 완장을 차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지점에 관계없이 여쭈라고 하거나.


규정을 미쳐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제가 더 코칭해줬어야 했는데 등등 어쩜 이렇게 스스로의 행동을 비판적이고 솔직하게 볼 수 있을까 싶은 지점을 종종 만난다. 가끔은 ‘엇, 이렇게 말씀하셔서 혹여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 상처를 입진 않으실까’ 싶은 노파심이 생기기도 했다. 세상물에 찌든 이의 괜한 걱정이길. 혹여나 이상한 사람을 만나 마음의 상처를 입더라도 함께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간하는 경험치로 승화시킬 분들이다.


나를 돌아보고, 개선할 점을 찾아 노력하는 모습. 호제도 보고 배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도전정신은 말할 것도 없다. 단체전 엘리트부에 요셉 원장님, 다른 지점 다윗 원장님, 현우 코치님이 팀을 이뤄 출전했다.



윤!정!조! 결승전 우승 직후


엘리트부 단체전을 일정이 맞아 호제, 나, Y가 함께 보러 갔다. 경기를 보러 온 학부모와 수강생이 꽤 됐다. 성인부 회원들도 있었다.


학부모와 수강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기를 뛰어야 했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경기장이 떠나가라 응원 소리를 질렀다. 문득 바꿔 생각해 보니 부담감이 훅 올라온다. 어후. 선생님들은 끝내 우승을 거며 쥐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관중석으로 올라온 요셉 원장님은 호제 키 높이에 맞춰 무릎을 구부리고 말했다.


“호제야, 선생님 약속 지켰지?!

호제도 다음에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단체전을 보고 온 한 초등학생은 단체전에서 선생님들이 했던 자세를 연습 경기 때 잠깐이지만 따라 하고 있었다.






선생님, 코치, 지도자 그 무엇이라 부르건, 전문영역만 배우는 게 아니다. 결국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태도와 문화를 배운다.


아쉬움이 남는 대회에 “초등 저학년 에페, 제가 이끌고 가겠습니다!”라며 힘든 걸 앎에도 불구하고 도전한 화정 선생님.


사브르 메달 딴 친구들이 꽤 되어 너무 축하드린다고 인사를 건네면 “아이들이 잘한 건데요.”라고 0.0001초 만에 겸손하게 답하는 제완 선생님.


시합 전 팡트, 후레쉬 연습을 시키며 “너를 믿어! 너를 의심하지 마!”라며 자기 확신을 갖게 만드는 요셉 원장님.


그리고 호제를 반갑게 맞아주고, 잘했다고 오고 가며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타 지점 선생님들까지.


호제는 심신이 건강한 선생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되어가는 중이다.



결국에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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