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선물
<고마워서그래>의 신두란 대표님을 만났다.
<고마워서그래>는 알레르기 있는 아이를 위해 엄마가 만든 수제 그래놀라를 판매하는 곳이다. 레드플로워디자인의 현승 대표님과 시혜 실장님이 선물하신 그래놀라 덕분에 알았다. 봉지를 뜯고 처음 먹는 순간, 너무 맛있어 멈추지 않고 먹어댔다. 지금은 판매하지 않지만 비건 스콘도 맛있다. 냉동시켜놓고 아침에 하나씩 먹었다. 내가 나를, 누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까지 함께 하는 듯했다. 맛과 정성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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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마워서그래>의 그래놀라를 종종 선물했다. 무엇보다 요즘 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온 손 편지는 따스함 그 자체였다. 이런 분들이 잘 되어야지! 더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두란 대표님을 직접 만난다니!!!!! 정확한 날짜는 잡지 않았지만, 우리가 언젠가 곧 만날 거라는 생각에 설렜다. 날짜가 잡힌 후에는 Y에게, 호제에게, 말랑 할머니에게 며칠에 한 번씩 얘기했다. “나, 고마워서그래 대표님 만난다! 너무 설레.” 만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호제도 함께 설렜다. 호제는 초4 형과 초2 누나를 만난다는 생각에.
드디어 그날이다! 나도 언젠가는 손 편지를 두란 대표님께 드리고 싶었다. 호제와 엽서를 같이 골랐다. 앤서니 브라운 엽서 중에서 선택했다. 난 복서 엽서도 좋으나 호제를 따랐다. 호제는 미니카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를 챙겼다.
<고마워서그래> 매장 앞에 도착했다. 저기 멀리서 두 아이와 대표님이 걸어오셨다. 우리를 발견하고 대표님은 환한 얼굴로 손을 쭉 뻗어 좌우로 힘차게 흔드셨다. 와, 심장에 손이 와닿는 건 이런 느낌일까. 호제와 나는 꾸벅 인사를 드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빠르게 걷고 뛰어왔다며 아이들이 숨을 헉헉거렸다. 아이들끼리 통성명하며 인사를 나눴다.
대표님이 가져온 짐과 기름 택배를 매장에 넣은 후, 보리굴비계의 레이디 가가가 계신 식당으로 이동했다. 식탁에 앉아, 아이들은 손가락 놀이를 했다. 나는 이 만남을 얼마나 고대하며, 설렜는지 얘기했다.
“저 이날을 너무 기다렸어요!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요.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하게도 당신도 그러셨다고 말해주셨다. 지나고 보니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있겠다 싶다. 택배 송장에 붙은 이름으로만 보던 사람이 만나자마자 기승전결도 없이 대뜸 들이댔으니 말이다.
남자아이들의 식사가 먼저 끝났다. 형과 호제가 먼저 <고마워서그래> 매장으로 갔다. 이후 초2 누나가 식사를 끝내고 이동했다. 나와 두란 대표님은 남아 식사를 이어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난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차려진 음식은 정갈했고, 밥과 함께 곁들이는 보리굴비의 간과 반찬, 비지찌개 모두 내 취향에 딱 맞았다. 꼭 다시 오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먹고 또 먹었다. 음식을 먹으며, 서로가 살아왔던 길의 굵직굵직한 키워드를 주고받았다.
밥을 먹고, 감각이 흘러넘치는 카페로 이동했다. 두란 대표님은 커피를, 나는 티를 테이크아웃용으로 주문했다.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호제와 함께 다닐 때면 교복처럼 입는 맨투맨과 바지, 장미꽃이 뒤덮인 캐스 키드슨 배낭을 메고 카페에 앉아 있노라니, 정말 내가 엄마가 됐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카페에 앉아서도 두란 대표님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덕질, 육아, 일상에 대해서.
음료를 들고 <고마워서그래> 매장에 들어갔다. 사랑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형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호제는 긴 테이블에 앉아 누나의 보드게임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와, 애 셋이 모였음에도 이런 리듬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니.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오자, 아이들은 농구공을 들고 뛰어놀러 나갔다. 형은 “내가 농구하는 거 가르쳐 줄게!”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리더십 폭발하는 형이었다.
두란 대표님과 나는 테이블에 앉았다. 차를 마시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살아왔던 얘기, <고마워서그래>의 시작,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끊임없이.
그 사이 아이들은 다시 매장으로 왔다. 아이들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났다. 얼굴 피부 밖으로 땀이 슬며시 올라와 촉촉해 보이기도 했다. 다른 공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호제는 형의 왼쪽 팔에 팔짱을 끼며 함께 나갔다. 흐뭇했다.
누나가 다시 와서 엄마 우리 집에 갈게!라고 외치고 갔다. 두란 대표님은 당황해하셨다. 집 정리가 필요한 상태라고 했다. 호제가 아이들과 집에 가도 되냐며 물었다. 보통의 나라면 곤란하다고, 혹은 아이들한테 같이 가보자고 말했을 법도 하지만, 이날은 집에서 불만 안 쓰면 된다고 말했다. 집에 불 쓰는 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두란 대표님 댁은 내가 봤던 인테리어 사진 중 하나의 집일 테다. 두란 대표님과 나는 같은 곳에서 집 인테리어를 했다. 그럼 위험요소는 그리 많지 않을 거고, 따뜻한 집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무엇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 나눈 두란 대표님의 육아관, 인생관, 그리고 대표님의 아이들을 믿었다. 티 없이 맑은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볼 줄 아는 형과 누나,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조리 있게 전달할 줄 아는 형과 누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형과 누나, 책을 곁에 두고, 함께 어울려 놀 줄 아는 형과 누나를 믿었다.
아이들이 집으로 떠난 뒤, 우리는 또 얘기를 나눴다.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두란 대표님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서로 각자의 불안과 잘하고 싶은 마음을 펼쳐냈다. 대표님은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 되는 정보를 알려주셨다. 책 선물도 주셨다. 그리고 응원까지! 내가 꿈꾸는 일들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리고 꼭 현실로 만들고 싶어졌다. 마법 같은 응원이었다.
나는 두란 대표님의 이야기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대표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었다. 두란 대표님은 본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잘 모르는 듯했다. 자기가 위대한지 모르고 하는 고군분투 이야기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는 듯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내가 두란 대표님께 나눌 수 있는 건 두란 대표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 잘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있는 힘껏 응원하는 것밖에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매장으로 돌아왔다. 기쁨, 만족, 즐거움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집에서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얘기하며, 또 뭐 하고 놀지를 얘기하는 아이들.
두란 대표님이 “아, 너무 좋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도 덩달아 이 순간이, 이 만남이 더! 좋아졌다. 살다 보면, 좋아도 좋다고 덜 표현해야 하는 게 사회생활상 필요하다고 학습할 때가 있다. 이 순간만큼은, 이곳에서만큼은 좋으면 좋다고 마음껏 얘기할 수 있어 좋았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 할 때. 인사를 나누고 매장을 나왔다. 토요일 오후가 다 갔다. 옆에 있는 유명 빵집으로 이동했다. 퇴근을 앞둔 Y에게 전화했다.
“Y, 다 끝났어? 우린 빵집에 갔다가 Y 정리 일찍 끝나면, 우리 픽업 와. 정리할 게 많으면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갈게.”
“아직 정리할 게 많아 택시 타고 가면 좋겠어.”
“엉, 그래.”
호제는 아빠가 안 온다니, 그럼 빵집을 가지 않겠단다. 택시를 부르는데 잘 잡히지 않았다. 택시를 잡고자 아파트 단지로 이동했다. 형과 누나네 집 가는 길이랬다. 형과 누나와 함께 걸었던 길, 하늘이랑 연결되는 그물을 호제가 소개했다. 택시가 안 보였다.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신남이 가라앉지 않은 호제는 내게 역제안을 했다.
“엄마, 내비게이션 켜서 걸어서 가자. 지금 빨리 켜봐.”
“집에? 한 시간 넘게 걸릴걸? 최소 1시간 10분은 걸리겠는데?”
“엄마, 힘들 것 같아? 지금 힘들어?”
“아니!! 걷는 거 좋아. 감기 걸릴 것 같은데. 진짜 할 거야?”
“응, 엄마. 가자! 걸어가자! 신선한 공기도 좀 마시고.”
“그래, 그럼 좀 걸어가 보자. 택시 잡히면 타고.”
걸어가는 동안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노을이 건물 사이로 보였다. 육교 위를 달릴 무렵, 어둠이 점점 짙어졌다. 그만큼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단순해졌다. 검은색으로 바뀌는 빌딩과 그러데이션이 들어간 노을뿐이었다. 호제는 크게 외쳤다.
“자, 엄마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뛰는 거야. 먼저 뛰어!! 어서!!”
“엉?”
“어서!!!”
오른쪽 등에 담이 걸려,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경보보다 조금 빠른 뛰기를 택했다. 호제가 옆으로 쌩 달려 나갔다. 신난 호제는 계속 즐거웠다. 형·누나 집에 갔던 얘기를 시작했다.
“엄마, 오늘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 집에 간 날이야. 형이랑 누나가 들어가자마자 집 정리를 했어. 형·누나네는 추억이 많은 집이었어. 집이 좋아 보였어. 키보드도 있었다?! 자, 빨리 다시 달려!!!!”
추억이 많은 집은 뭘까 잠시 상상했다. 호제 인생의 첫 다른 집 방문이 추억이 많은 집이라 고마웠다. 즐거움이 가득한 경험으로 남아 고마웠다. 이번에는 육교 아래,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호제는 기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헛둘! 헛둘! 헛둘! 헛둘! 군대 가면 이렇게 해?” 호제가 물었다.
“군대 가면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고 해. 전지훈련 가도 해. 어제 만난 펜싱하는 형 기억나지? 그 형도 이런 거 할걸?”
육교 아래를 통과하자 호제는 기뻤는지 걸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기타를 치는 흉내를 몸과 입으로 소리를 내며 외쳤다.
“딩딩디딩딩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창문을 두드리는 달~빛~에~” 탁월한 곡 선택이었다. 도시의 어둠 속에서 달빛, 네온사인빛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옆에서 나는 같이 불렀다.
Y에게 전화가 왔다.
“응? Y, 어디야?”
“난 집 주차장.”
“지금 어디야?”
“여기 정형외과 병원 앞이야.”
“왜 거기 있어????”
“걸어가는 중이야.”
“뭐?????? 와, 미친 거 아냐? 그 거리를!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택시 안 잡히면 나한테 전화를 하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감기에 걸린 걸로 끝나지 않으니까. 당사자인 호제도 말랑 할머니도 나도 모두가 힘들어지니까.
“호제가 끝까지 걸어가고 싶댔어.”
“......와... 또라이들...”
“치킨 시켜놨으니까 집 안에 잘 넣어줘. 안녕.”
Y는 진심으로 놀라거나 너무 당황스러울 때 쓰는 화법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담아 탄성을 낸 뒤, 마음의 소리를 거를 새도 없이 내뱉어 낸다. 이때가 그랬다. 내장 깊숙한 곳곳에서 끌어내는 어이없음과 놀라움이 전화로 넘어왔다.
“태우러 갈까?”
“호제한테 물어볼게.”
“호제야, 아빠 차 탈까?”
호제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앙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괜찮대. 아까 마트 앞 택시 정류장에서 나도 물어봤었어. 계속 걸을 거래. 나름 재밌어.”
“30분은 더 걸어야 해.”
“응. 알아.”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배가 고파졌다. 호제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Y의 전화다.
“어디야?”
“집 앞 편의점 건널목.”
“결국 정말 걸어왔구나.”
따듯한 물에 몸을 녹이고, 호제는 치킨을 먹었다. 배고픈 나는 호제의 치킨 두 조각을 먹고, Y와 저녁 식사를 했다. 자려고 모두 침대에 누웠다. Y가 호제에게 물었다.
“안 힘들었어?”
“발 근육이 좀 아프긴 한데, 정말 재미있었어!”
“운동화가 아니라 부츠라서 발이 아팠을 거야.”
“오늘 만남 어땠어?”라고 Y가 물었다.
호제는 “재밌었어!”라고 꽉 찬 목소리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나도 “정말 재밌었어! 호제랑 길에서 노래도 불렀어.”라고 말했다. 호제와 Y가 재잘대는 소리를 들으며 난 스르륵 잠들었다.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쳤다. 꿈인가 잠시 생각했다. 오른쪽 담이 걸려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고 한 자세로 잤다. 눈을 떴을 때, 나는 투탕카멘 미라처럼 고이 정자세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또라이들....”
“...와... 또라이들....”
이 문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꿈이 아니었구나. 또라이, 또라이가 머릿속에서 퐁퐁 떠올랐다. 최적의 궤도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나 어제 만남에서 큰 선물을 받았네. 어제, 나 잘 살아낸 하루였던 것 같아!라는 뿌듯함이 샘솟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또라이짓을 격렬하게 하기로.
고마워서그래 대표님을 만나기 전, 만나는 동안, 만난 후 돌아오는 길까지 환상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의 연속이었던 <고마워서그래> 대표님과의 만남! 고마워서 그래!